|
태조 왕건 <제 200회> -최종회
씬 일리천 (석양)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애술이 공격을 명하며 소리치고 있다. 해는 막 강 언덕으로 숨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애술 이놈들아, 말이 들리지 않느냐? 공격하라고 하였다. 공격 말이다. 어서 공격하라, 어서... 제 1 마군은 무얼 하느냐? 앞으로 나아가라. 장창부대와 궁수부대는 무얼 하느냐? 앞으로 가라. 공격하라.. 공격하란 말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말을 탄 기병들은 우왕좌왕 소리치고 있다. “황제 폐하다. 황제다.” 그렇게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크게 전투대형을 벌리고 있는 장창, 궁수부대도 마찬가지다. 웅성거리며 전열이 흩어지고 있다. 부장이 와서 소리친다.
부장 장군, 보시오소서, 황제의 깃발이 틀림없사옵니다. 그래서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애술 이미 우리들의 황제가 아니다.
부장 하지만 군사들은 그렇게 보지 않사옵니다. 공격은 틀렸사옵니다. 군사들이 황제 폐하를 어찌 할 수가 있단 말이옵니까?
애술 아니다, 지금은 황제가 아니다. 우리의 적이다.
부장 보시오소서. 우리 명령이 통하지 않사옵니다.
부장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마군, 장창, 궁수부대들의 이름을 부르며 공격하라고 악을 쓰지만 군사들은 나아가지 않는다.
애술 어찌 한단 말이냐, 이 일을 어찌해....? 공격하라 이놈들아 공격해, 공격해..............
견훤의 웃음소리들은 계속 들려온다. 애술의 군사들은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씬 그곳 후미 신검의 진영
신검이 멀리 앞 쪽 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 애술 들의 군대를 보고 있다. 그리고 영문을 몰라 하고 있다. 능환, 능애, 신덕, 양검, 용검 형제들이 함께 있는 본군이다.
신검 해가 떨어졌는데 도대체 왜들 저러고 있다는 말이오? 왜 공격을 못하고 저리 우왕좌왕 한단 말이오?
능환 ...... (보며 그저 할 말이 없다.)
능애 뭔가 일이 잘못 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군사들이 군령을 따르지 않는 것 같사옵니다.
신검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군령을 따르지 않다니요?
신덕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사옵니다. 부장은 듣거라,
부장 예, 장군
신덕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구나, 가서 알아 보너라, 빨리 공격하라 하라.
부장 예, 장군
양검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상하옵니다.
용검 무얼 꾸물거리느냐, 부장은 어서 가라. 어서
부장이 대답하며 말을 몰아 달려나간다. 능환이 그예 중얼거린다.
능환 저어기, 폐하께서 나와 계시오이다. 저어기, 수기를 보시오소서, 폐하의 수기예요,
그들 모두 경악하며 본다. 그리고 할 말들을 잃는다. 아득히 핏빛 노을의 석양을 등지고 견훤의 수기가 나부끼고 있다. 신검은 비로소 아득한 충격을 느낀다.
신검 아버님이.....고려군으로 여기에 나오셨단 말인가....아버님이..?
신덕 폐하, 저어기..... 저 아득히 보이는 분이.....태상황제가 아니시옵니까?
양검 맞사옵니다. 아버님이시옵니다.
신검 오오...... 오오............?
신검은 미처 말을 하지 못한다. 그곳 멀리 강 너머 언덕에 보일 듯 말 듯 견훤의 그 모습이 어른거린다.
씬 그곳 (밤)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있다. 견훤들이 보고 있다. 애술군들이 저만큼 강 건너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유금필이 견훤 뒤에서 보고 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좌우에서 박술희, 염상, 박수문, 수경, 홍유, 배현경들이 보고 있다.
유금필 상부어른, 예상대로 백제군이 동요하고 있사옵니다. 보시오소서. 갈팡질팡이옵니다.
견훤 (끄떡인다) 아직은 공격을 하지 마시게.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유금필 예, 상부 어른,
견훤 저들의 선봉이 무너지는 것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나서 좌우 군이 나아가 예봉을 꺾어야 할 것일세. 그 다음에는 자네의 본군이 나가고...
유금필 예, 상부어른.
그들은 그렇게 적진을 보고 있다. 애술이 독전하는 것이 보인다.
씬 그곳
애술이 소리치고 있다. 여전히 군사들은 소요가 크다. 말을 달리며 채찍을 휘두르는 애술과 부장들을 보며 이리 저리 피하기만 할뿐이다.
애술 가지 못할까, 가라, 공격해야 한다. 공격하라. 공격해. (재촉하다가 부장들에게) 아니 되겠다. 이제부터 명령을 아니 듣는 군사들은 모두 베어라, 다 베어라. 이놈들아 공격해라, 아니면 벨 것이다, 공격해라.
그리고 애술은 정말로 군사들을 베기 시작한다. 부장들도 공격해라를 외치며 칼을 휘두른다. 한 쪽에서는 군사들이 죽어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죽지 않으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군사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채찍을 때리고 검을 휘두르면서......애술이 비로소 약간의 안도를 내쉰다.
애술 그러면 그렇지, 저자는 황제가 아니다. 가라, 가서 싸워라.
그들 그렇게 물이 거의 마른 강을 넘는다. 그런데 막 강 중간을 건너던 애술은 다시 놀란다. 점차 견훤의 모습이 보여오는가 했는데 앞서 가던 군사들이 또 머뭇거리다가는 앞뒤 눈치를 보다가 무기를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군사 황제폐하이시다. 우리를 기다리신다.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다. 군사들은 그렇게 무기를 버리며 달려가 사이를 두고 엎드린다. 그리고 함께 가던 부장들도 말에서 내려 무릎들을 꿇는다. 고려군들이 보고 있다. 견훤의 소리가 들린다.
견훤 하하하, 나의 군사들이여, 백성들이여, 어서 오라. 두려워 말고 오라. 어서 오라. 무기를 버리는 자는 모두 살려줄 것이다. 버려라, 다 버려라.
거의 그림과 같다. 군사들은 마치 썰물처럼 도미노 현상을 이르키며 엎드리기 시작한다. 애술과 그의 측근들은 강 중심에 그렇게 섰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란과 소요가 계속 된다. 신덕이 보내서 오던 부장이 뒤에서 보고 있다가 질린 모습으로 말을 되돌려 급히 되돌아간다.
부장 장군, 피하시오소서, 이미 군사들이 제정신이 아니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측근 부장이 소리치며 도망들 친다. 애술도 보다가 아니 되겠다 판단하고는 말머리를 돌린다. 그때다, 견훤이 완전히 상황을 파악하였고 유금필에게 끄덕인다.
유금필 자, 이 때다, 좌우군은 공격하라, 적의 예봉을 꺾어라
유금필의 지시가 떨어지자 군사들이 수기를 흔든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좌우에서 보고 있던 박술희와 염상과 홍유, 배현경들의 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애술은 더욱 당황하여 말고삐를 나꾸어 잡았지만 이번에는 그만 말이 나뒹군다. 군사들이 그를 에워싼다. 박술희가 달려간다. 멈추어 본다.
박술희 (다가오며) 핫하하, 애술이 아닌가, 오랜만이로구나.
애술 박술희........?
홍유 (지나치며) 이미 적의 선봉이 무너졌다. 전군 공격하라.
배현경 (역시 지나치며)공격하라.
군사들은 애술을 지나쳐 그렇게 신검의 본군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 와중에서 애술에게 박술희가 손을 내민다. 애술은 보고만 있다. 박술희가 말에서 내려 일으킨다.
박술희 애술이, 그대의 백제는 오늘 그 운명이 끝났다.
애술 ...............
박술희 그대의 옛 주인이 저어기 기다리신다.
애술이 본다. 군사들이 까맣게 몰려가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씬 왕건의 진영
왕건이 있는 높은 고지에서는 대낮과도 같은 달빛 아래 전황이 잘 파악되고 잇다. 공격하는 고려군들이 잘 보인다. 끄떡이는 왕건
왕건 엄청난 일일세. 견훤 상부께서 백제군을 다 몰아내고 계시네. 오오, 놀라운 일이야....
복지겸 그러게 말이옵니다. 대단하시옵니다. 상부어른 혼자서 저 많은 백제군을 호령 하나로 밀어내고 계시옵니다.
윤신달 적의 예봉을 꺾으신 것이옵니다. 엄청난 일이옵니다
그들 그렇게 보고 있고......
씬 신검의 군영
그들 쪽에서도 우왕좌왕하며 군대가 후퇴하고 있는 것들이 보이고 있다. 부장이 보고하고 있다.
부장 싸워보지도 않고 군사들이 대거 투항하고 있사옵니다. 애술장군이 생포 되었사옵고 고려군이 이 쪽으로 몰려들고 있사옵니다.
신덕 폐하, 사태가 매우 심각하옵니다. 일단 진을 뒤로 물리시오소서.
신검 우리는 십만 대군이요, 무얼 두려워한단 말이요? 막으라 하시오. 제 일선이 무너졌으면 제 이 선이 있질 않소? 막으라 하시오, 막으라 하시오.
양검 첫 전투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사옵니다. 군사들이 무더기로 무너지고 있사옵니다.
용검 이럴 수가....이럴 수가......?
혼전이다. 수만의 군사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난투극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백제군의 열세가 확연해 보인다.
씬 그곳
대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각 장수들의 면면이 지나쳐 간다. 고려 쪽은 홍유와 배현경, 박수문 형제, 염상, 왕충들이고 신검 쪽은 김총, 상귀, 상애들이 군사들과 함께 막고 있다. 그러나 이미 백제군은 약세를 보인 뒤였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면서 무기를 버리는 군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배현경 무기를 버려라, 너희들의 황제가 뒤에 계신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홍유 투항하라, 무기를 버려라.
염상 투항하는 자는 살려 준다.
상귀들도 당황하여 소리친다.
상귀 싸워라, 무기를 버리지 마라.
김총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파달 싸워라, 물러서지 마라.
그러나 소용이 없다. 군사들이 물결처럼 뒤로 물러나고 있다.
씬 신검의 군영
백제군의 패배가 너무도 확연해 보인다. 신덕이 다급하다.
신덕 폐하, 본군을 뒤로 물리시오소서, 아니 되겠사옵니다. 군의 재정비가 필요하옵니다.
신검 말도 아니 되오, 우리는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소이다. 후퇴라니요? 말도 아니 되오.
능환 신덕 장군의 말대로 하시오소서. 이미 예봉이 꺾였사옵니다.
신검 아니오, 이제 시작이요, 이제....
능환 물러나셔야 하옵니다. 우리가 걱정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사옵니다. 군사들의 인심이 우리를 떠나고 있었사옵니다.
신검 무슨 말씀이요, 그것이....? 그럴 리 없소이다. 애술장군이 선봉을 잘못선 것이요. 아우들아,
두형제 예, 폐하,
신검 가라, 가서 고려군을 막으라, 물러나서는 아니된다. 어서
두형제 예, 폐하....부장들은 따르라.
부장들이 대답하고 나선다. 형제들이 전선으로 달려 나간다.신검이 절규한다.
신검 우리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소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물러날 수는 없소이다.
그러나 능환은 대답이 없다. 절망적 표정으로 전투장을 본다.
씬 그곳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다. 백제군이 계속해 무너지고 있다. 달려나오던 형제들이 기가 막히다. 일방적 패배인 것이다. 여기 저기 어둠 속에서 부장들이 도망쳐 오고 있다.
양검 어디로 가는 것이냐? 싸워라.
부장1 사방이 다 무너지고 있사옵니다. 싸울 수가 없사옵니다.
용검 싸울 수가 없다니...그게 무슨 말이냐?
부장2 군사들이 모두 항복하고 있사옵니다. 일선의 장수들도 모두 노 황제께 무릎을 꿇고 있사옵니다.
양검 뭐라?
그러다가 그들은 놀란다. 유금필군의 외인부대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다.
용검 형님 저어기....유금필이옵니다. 외인부대들이옵니다.
양검 유금필이.....? 아니 되겠구나, 돌아가자.
형제들이 말머리를 돌린다. 그 한 쪽에서 상애가 배현경의 칼에, 상귀가 유금필의 칼에 베어져 나뒹구는 것을 보았다.
유금필 거기 가는 것이 백제의 태자들이 아니냐? 게섯거라, 게 섯거라. 태자들을 잡으라.
용검 형님, 어서 도망 갑시다, 유금필이예요.
형제들이 도망치고 그 곳 일대는 고려군 일색이 된다. 뒤늦게 파달은 빠져나갔는데 김총만이 나오다가 홍유를 만났다. 그리고 접전을 벌린다. 그리고 검이 부러진다. 도망칠 곳도 없다. 그렇게 포위된다.
홍유 핫하하하.... 김총이 아닌가? 이미 애술장군도 무릎을 꿇었다. 검을 버려라.
김총이 보다가 검을 버리고 눈을 감는다. 함성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씬 신검의 군영
신검과 형제들, 능환과 능애, 신덕이 도주하고 있다. 수많은 군사들이 함께 몰려가고 있다.
신덕 폐하를 뫼시어라. 다음 전선으로 후퇴한다. 전선을 재정비하라. 장수들은 전선을 정비하라.
신검 이건 너무 심하지 않는가, 뭐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양검 아버님 때문이옵니다. 모두가 아버님 깃발을 보고 무릎을 꿇고 있사옵니다.
능환 그렇사옵니다. 태상황제 때문이시옵니다. 우리가 걱정했던 일이옵니다, 폐하. 그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사옵니다.
능애 결국 저 어른이 백제를 고려에 바치고 있는 것이옵니다. 오오, 손수 세우신 이 제국을 스스로 다 무너트리시는 것이옵니다.
신검 어서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몰려 도망쳐 간다. 사라져 가면.....
씬 그 전장터
밝은 달빛 아래 드러나는 전황은 참담하다. 끝도 없는 포로들이 줄지어 끌려가고 있고 환호성으로 온 강가가 들끓고 있다. 시체들이 곳곳에 산을 이루고 있다. 박수문들이 정비하고 있다.
박수문 포로들을 정리하라, 시체들을 치워라.
그 와중에서 왕건이 견훤과 신료들과 함께 오고 있다. 각 장수들이 오는 왕건을 맞고 있다. 유금필, 박술희, 홍유, 배현경, 복지겸, 염상, 박수문, 박수경, 윤신달, 왕충, 최지몽들이다. 거기 애술과 김총이 꿇려 있다. 견훤이 그들을 본다.
견훤 애술이가 아니냐? 너는 김총이고....
그들 예, 폐하.
견훤 가엾게들 되었구나. 어쩌다가 신검이 밑에서 이 고생들인고...? 내가 알기로는 너희 둘은 반란에 가담을 아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게로구나. 쯧쯧쯧....
애술 죽여주시오소서, 폐하.
김총 용서하여 주시오소서, 폐하.
견훤 이보시오, 황제..?
왕건 예, 상부어른.
견훤 죄가 없는 자들이오. 용서해주시구려.
왕건 일어들 나오. 상부께서 용서하라 하시는구려.
그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들이 일어선다. 왕건이 백제 쪽을 보며 말한다.
왕건 이래서 인심이란 무서운 것이오. 떳떳치 못한 정변을 가지고 아무리 혁명이라고 우긴들 소용없는 것이오. 군사들이 상부어른의 수기를 보고 모두 무릎을 꿇어버렸어요. 이 전투는 우리가 이긴 것입니다. 별 싸움 없이 이긴 것이에요. 이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인심이라는 것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에요.
그렇게 끄덕이는 왕건과 견훤의 모습과 숙연한 제장들의 면면에서...
해설 왕건이 말하고 있는 인심의 향배. 그렇다. 천년전의 그 때나 지금이나 인심이 곧 천심이고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것은 고금의 진리였던 것이다. 당시의 일을 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제의 좌장군 효봉과 덕술, 애술, 명길 등과 군사들이 고려의 군세가 큰 것을 보고 투구를 벗고 창을 버리고 견훤이 타고 있는 말 앞에 와서 항복하였다. 이에 적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다시 왕이 적을 향하여 삼군을 일으켜 크게 나아가 공격하니 적장 흔강, 견달, 은술, 금식 등 삼천 이백을 사로잡고 오천 이백의 목을 베었다. 적들은 창끝을 돌려 저희들끼리 서로 공격하였고 결국은 도망쳐 황산군까지 이르렀다.’ 라고 하였다. 백제군의 혼란과 사기가 어떠했는가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씬 고려군 진영
야전회의가 열리고 있다. 애술, 김총도 참여해 있다. 각 장수들이 모두 참여해 있다.
왕건 백제군이 퇴각을 하였소이다. 많은 군사가 무너졌다 하나 아직도 수만의 군사가 함께 가고 있소이다. 대체 다음 전략지는 어디로 하였소이까?
애술 만약에 일리천에서 결판이 나지 않으면 다음 전투지는 황산벌로 되어 있었사옵니다.
김총 하오나 백제의 장수 중 그 누구도 황산까지 후퇴하리라는 것을 생각해본 장수는 없었사옵니다.
유금필 황산으로 가는 길은 백제군보다 우리 고려 쪽이 더 가깝사옵니다. 우회하여 지름길로 간다면 저들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배현경 그러하옵니다. 먼저 가서 저들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옵니다.
홍유 신들이 가겠사옵니다.
왕건 어차피 마지막 정리를 해야할 전투올시다. 고려와 백제의 마지막 전투예요. 금필아우?
유금필 예, 폐하.
왕건 아우가 거느린 일만의 외인부대를 앞세우게. 그 다음으로 각 장수들이 말을 탄 기병 오만을 인솔하여 신속하게 황산으로 이동해가게. 허면 저들을 앞지를 수 있을 것이야.
장수들 예, 폐하.
왕건 오만 명의 기병이면 이미 사기를 잃은 저들 오만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내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야. 그 선두를 금필아우가 서게. 지금 바로 가게. 촌각을 아껴야 하네.
유금필 예, 폐하. 즉시 가겠사옵니다. 제장들, 가십시다.
장수들 예.
유금필 부장들은 즉시 출병할 준비를 하라. 황산으로 간다. 오만의 기병을 각자 정비하라.
부장들이 대답한다. 그들 그렇게 회의장을 부산하게 빠져나간다. 군대를 정비하라고 여기저기서 소리치고 있다. 그 한켠에 왕건과 최지몽, 복지겸만이 남아 있다. 왕건이 눈을 감고 처연하게 앉아 있는 견훤을 본다. 아주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왕건 상부어른, 이제 내일이면 다 끝이 날 것이옵니다. 들어가 군막에서 좀 쉬시오소서. 많이 힘이 드시옵니까?
견훤 그렇소이다. 이놈의 등창이 한동안 손을 보지 않았더니.... 뼈를 상하게 하고 오장육부로 기어드는 모양이오.
왕건 전의를 부르겠사옵니다.
견훤 아니오. 이미 늦었소이다. 그리고.... 전투 중에는 되도록 전의를 부르는 법이 아니지요. 이대로 함께 하겠소이다. 곧 황산으로 갈 것이 아니오?
왕건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견훤 나는 자식들을 보고자 하였소이다. 내 자식들의 마지막 말이올시다. 백제의 마지막 말이올시다.
왕건 ............. (차마 더 할 말이 없다)
씬 강 길
유금필과 제장들이 오만의 기병대를 이끌고 가고 있다. 강 전체가 말로 뒤덮여 달려가고 있다. 그들은 곧 강변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고 있다. 장관이다. 오만 필의 마군, 즉 기병대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에서....
씬 황산 가는 길
어둠 속이다. 끝없는 산길을 신검의 군대가 가고 있다. 처참한 패주의 길이다.
신덕 새벽이면 황산에 닿을 것이옵니다, 폐하. 그곳에서 군사를 다시 정비하시오소서.
신검 도대체 우리를 따르는 군대는 얼마나 되오...?
능애 이미 절반 이상이 죽거나 포로가 되거나 와해되었사옵니다.
양검 아버님 때문이옵니다. 아버님이 아니라 원수이옵니다.
용검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십만의 대병이 싸우지도 못하고 초반에 무너져버렸사옵니다.
능환 ............ (한숨만 쉰다)
신검 이찬께서는 왜 말씀이 없으시오?
능환 신이 드릴 말씀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다 신의 잘못이옵니다.
신검 어찌 이찬의 잘못이라고 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박복한 탓이지요. 믿기지가 않소이다. 아버님 앞에 군사들이 다 무릎을 꿇어버렸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소이다. 지금도....
파달 그래도 오만의 군사가 아직 남았사옵니다. 황산으로 가면 군사를 재정비하고 배수의 진을 쳐 한번 해 볼만하옵니다.
양검 그러하옵니다. 황산에 가서 다시 정비하시오소서.
신검 황산이라....? 어쩌다가 하필 황산이란 말인고...?
양검 왜 그러시옵니까? 황산이 어떠해서 그러하옵니까?
신검 몰라서 묻는 것이냐? 옛 백제의 계백 장군이 전사한 곳이 바로 황산이 아니냐?
모두들 ......... (그제서야 그렇구나 하는)
신검 아버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계백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나당 연합군 오만이 쳐들어왔을 때 계백 장군에게는 군사가 오천 뿐이었지... 장군께서는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출병하시기 전에 처자를 모두 죽여 적의 노비가 되는 것을 막게 하셨다. 이미 질 것을 예감하신 것이다.
신덕 하오나 폐하, 그때 계백 장군은 말씀하셨사옵니다. ‘옛날의 구천이라는 장수는 오천의 군사로써 오나라의 칠십 만 대군을 쳐부순 적이 있다. 오늘 마땅히 힘을 다하여 최후의 결판을 내자’고 말이옵니다. 그리하여 김유신이 이끄는 오만의 군사를 무려 네 차례나 격파하였사옵니다.
신검 허나 결국은 졌소이다. 신라의 장군 품일의 아들인 관창은 당시 열 여섯이었는데 이 소년이 앞서 싸우며 목숨을 버림으로써 신라군의 사기를 올리게 하였고 결국은 옛 백제가 멸망되었던 것이외다. 바로 이 황산에서 말입니다.
모두들 .............
신검 계백 같은 장수도 관창 같은 소년도 없었소이다. 모두가 다 아버님 깃발을 보고 무릎을 꿇은 군사들뿐이올시다. 그리고 옛 백제가 패망했던 그 황산에 우리가 가고 있소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이상하지 않소이까?
능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오소서. 분명 그곳에서 다시 전세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신검은 더 이상 댓구가 없다.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가고 있다.
씬 황산 (새벽)
아득히 산과 구릉 사이로 여명이 밝고 있다. 고려의 오만 기병이 산 능선을 타고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시야 아래로 백제의 대군이 가고 있다. 황산벌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유금필과 장수들이 보며 끄덕이고 있다. 포위망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
씬 그곳
백제군이 황산벌로 까맣게 몰려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소리들이 들려온다.
소리 영채를 세워라. 진을 세워라.... 마군은 경계를 서라... 좌우 동서로 둔을 쳐라. 서둘러라... 장애물을 세워라... 고려군이 올 것이다. 서둘러라...
부장들이 그렇게 군사들 사이를 지나치며 부산한데 군사들은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한쪽에서 신검이 능환, 능애들과 함께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다.
신검 벌써 날이 밝고 있구려. 여기가 황산이란 말이오? 참으로 벌이 넓고 크구려.
능환 그러하옵니다.
신검 군사들이 이미 사기가 죽었소이다. 마지못해 움직이고들 있어요.
양검 그러게 말이옵니다. 오는 도중에도 대열을 이탈해 도망친 군사들이 이만에 가깝다 하옵니다.
신검 ..............
파달 (가까이 오며) 폐하, 큰일났사옵니다.
능애 무슨 소린가? 큰일이라니...?
파달 이미 고려의 오만 기병이 우리보다 앞서 와서 매복을 치고 있었사옵니다. 우리는 포위되었사옵니다, 폐하.
신덕 뭐라.....? 고려의 기병 오만이 우리를 포위해..?
파달 그러하옵니다.
신검 고려병이 먼저 와 있었다고....? 기병들이... 오만이나...?
파달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검 우리 군사는.... 삼만도 채 아니 남았는데 저들은 기병이 오만이나 된다는 말인가? 기병이...?
아무도 말이 없다. 졌다. 진 것이다. 바람소리만 들리고 있다. 그들의 시야로 멀리 산을 둘러 기치창검이 사방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포위된 것이다. 신검의 얼굴이 처절하게 일그러진다.
씬 고려군 진영 (낮)
견훤과 왕건이 뒤늦게 유금필의 군영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금필이 왕건에게 의자를 권한다. 견훤에게도.... 두 사람은 그곳에 앉아 멀리 산아래 황산벌을 본다. 영채들이 들어서 있고 백제의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인다.
유금필 폐하, 이 전장은 끝이 난 것 같사옵니다. 적군은 이미 지난 밤 사이로 채 삼만도 아니 남았고 그나마 부상병과 늙은 병사들뿐이옵니다.
왕건 기다려보세.
홍유 차라리 우리 기병으로 쓸고 내려가 끝을 내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왕건 이미 이긴 전투일세. 저들의 목숨도 다 소중한 것이야. 기다려보세.
견훤 .............
씬 동 황산 신검의 군영 외경
군사들은 곳곳에 항복을 기다리며 무리를 지어 있다. 부장들도 장수들도 마찬가지다. 바람소리만 그 벌판을 쓸어가고 있다.
씬 동 군영 안
신검을 비롯해 제장들이 모여있다. 양검, 용검, 능환, 능애, 신덕, 파달들이다. 그리고 부장들이 함께 해 있다.
신덕 폐하, 고려군이 우리를 포위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기병 오만에 보군이 다시 오만을 더하여 저들은 십만 대군이옵니다.
신검 ..............
양검 폐하, 황산 싸움은 어려워 보이옵니다.
용검 퇴로 또한 다 끊겼사옵니다. 전원 싸우다가 죽던 지 아니면 항복밖에 길이 없사옵니다.
능환 .............. (눈을 감고 있다)
능애 항복을 하다니요...? 차라리 싸우다 죽겠사옵니다.
파달 싸우기가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신덕 폐하, 어찌하오리까? 영을 주시오소서.
신검은 대답이 없다. 그저 그렇게 입을 닫고 있다.
능환 폐하, 졌사옵니다.
모두들 ................?
능환 사실 일리천 전투는 우리 백제국으로서도 마지막 모험을 건 최후의 선택이었사옵니다. 군사들의 사기와 백성들의 인심을
신은 알고 있었사옵니다. 신검 ..............?
능환 허나 그대로 무너지기보다는 마지막 안간힘이라도 써보기 위해 나섰던 것이옵니다. 모두가 신의 잘못이옵니다. 보다 일찍 저 고려에 가 계시는 태상황폐하의 목을 베었어야했사옵니다. 금산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때 목을 베고 정권을 장악하고 바로 군사를 일으켰어야 했사옵니다. 허나 다 지난 일이옵니다. 이번 전투는 끝났사옵니다.
신검 ........ (눈을 감고 있다)
능환 허허허.... 다 끝났사옵니다, 폐하.
능애 허면 이제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이찬..? 끝이 났으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능환 더 이상 불쌍한 군사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목숨을 구걸하여 살 사람은 살아야 하고 또 죽어야
할 사람은 죽어야겠지요. 신덕 허면... 항복이옵니까, 이찬어른?
능환 폐하께서 결정을 하시겠지요.
능애 항복이라니요..? 그럴 수는 없소이다. 백제가 문을 닫는 일이올시다.
양검 숙부님, 이미 전투에 졌사옵니다. 백제도 없는 것이옵니다.
용검 폐하, 어찌하실 요량이시옵니까? 항복이옵니까, 아니면 전원 옥쇄이옵니까?
신검은 대답이 없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 정적이다. 모두들 본다. 그들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참 후에 신검은 중얼거린다.
신검 나라고 어찌 그리 눈치가 없었겠소이까? 나의 군사들이 우리가 노망이 들었다고 하는 저 아버님께 무더기로 달려가 무릎을 꿇을 때 이미 우리 백제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을 보았소이다.
모두들 폐하....
신검 (눈물 글썽이며) 항복하십시다.
양검 폐하..... 어찌하오리까, 폐하..?
신검 이겼으면 이긴 대로 또 졌으면 진 대로 의연해야 한다. 백제국 황제로서 명한다. 항복하는 것이다. 나라를 들어바치는 것이다. 고려 군영으로 사신을 보내라. 아니, 숙부께서 가 알리시오. 우리가 뒤따를 것이오.
능애 폐하....?
신검 이만한 일을 처리하실 분은 숙부님뿐이십니다. 종군해온 모든 문무신료들을 다 모이라 하시오. 장수와 군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구를 벗으라 하시오. 항복의식을 준비하오.
신덕 (통곡하며) 폐하.... 폐하........
모두들 폐하... 폐하.........
신검 오오... 아버님.... (절규) 아버님......!
신검의 그 입술을 깨무는 아프고도 처절한 표정에서....
씬 황산벌
바람소리만이 요란하다. 온통 침묵이다. 먼 벌판을 가로질러 흰기를 앞세우고 능애가 부장 몇 명을 거느리고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사이를 두고 신검, 양검, 용검, 능환, 신덕 등과 수십 명의 신료 제장들이 따르고 있다.
씬 그곳 고려군 진영
그들의 모습이 계속해 살아나며 다가오고 있다. 그 모습이 점차 확연해 진다. 이들도 침묵이다. 장중한 모습들이다.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견훤이 떨며 보고 있다. 제장들 모두의 면면이 스쳐간다. 왕건도 초조한 듯 보고 있다. 역사적 순간이 아닌가?
씬 다시 신검들이 오는 곳
신검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 앞을 서서 저만큼 능애가 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드디어 왕건, 견훤이 있는 곳과 사이를 두고 선다. 능애들이 말에서 내려 군례를 드린다. 신검들도 사이를 두고 그 뒤에 섰다.
씬 그곳
왕건과 견훤들이 보고 있다. 능애가 엎드려 고한다.
능애 폐하, 신 능애이옵니다. 우리 백제국은 오늘 고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였사옵니다. 뒤에 백제국의 신황제께서 무리를 이끄시고 항복을 청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오소서.
견훤 (떨며 보다가) 네가... 전권사신이냐?
능애 예, 폐하. 신들의 항복을 윤허하시오소서.
견훤 허락을 하고 아니 하고는 고려국의 황제가 하신다. 나도 이미 이곳에서는 객이니라....
왕건 (끄덕이며)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항복을 청하여 왔다 하니 어찌 가납하지 않겠는가? 항복을 허락하노라.
유금필 항복을 허락한다 하시오. 그대들의 황제와 신료들을 오라 하시오.
능애 예...
능애가 뒷걸음질 쳐 물러간다. 그리고 옆으로 선다. 신검과 그 형제들과 능환, 신덕, 파달 그리고 장수들이 수십 명 뒤를 이어 함께 와 선다. 신검과 견훤의 시선이 교차된다. 그리고 다시 왕건을 보는 신검. 고려국의 장수들도 숨을 죽이고 본다. 신검이 서서히 무릎을 꿇는다.
신검 백제국의 신황제 신검 고려국의 폐하께 항복을 청하옵니다. 아울러 나라를 들어 바치니 허락하시오소서.
견훤 ..............
왕건 ............ (사이) 그대, 백제국 황제의 항복을 윤허하노라. 항복을 윤허하노라.
신검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 참담한 갈등의 표정에서)
신검들은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다. 왕건이 말없이 보고 있다. 그리고 왕건은 견훤을 본다. 견훤은 신검을 본다. 그들의 표정에서 견훤이 보고 있다가 갑자기 벽력처럼 소리친다.
견훤 고려의 황제께서는 무얼하시오..? 이미 적국의 수괴들이 무릎을 꿇었소이다. 당연히 죄를 물어야 하실 것이오.
모두들 .................?
능애 나라를 들어바친 황제시옵니다. 죄란 가당치 않사옵니다.
견훤 닥치지 못할까...? 들어서 바친 것이 아니라 실패하여 항복한 것이다.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양검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이미 나라를 다 바쳤사옵니다. 은혜를 베푸시오소서.
능환 ............... (눈을 감고 있고)
용검 은혜를 베푸시오소서. 이미 다 끝이 났사옵니다, 폐하.
왕건 ............... (견훤을 본다)
견훤 그래도 백제 황실의 태자들이 아니냐? 내가 보고 있는데 더럽게 목숨을 구걸한다는 말이냐? 죽이시오, 황제.
두 형제 아바마마....?
견훤 죽이시오, 황제.
왕건 .............
견훤 백제국을 훔친 놈들이올시다. 나의 제국을 훔쳐 잃게 한 놈들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우선 저 신검이 놈부터 죽이라 명하시오.
신덕 어찌되었거나 백제국의 황제였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나라를 바치고 있사옵니다. 죽음을 내리신다면 가혹한 일이옵니다.
최지몽 폐하,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항복을 청하여 온 황제를 당장 죽이는 예는 없사옵니다.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래도 백제국의 황제였사옵니다. 후백제의 인심을 다스리는데도 영향을 미칠 것이옵니다.
왕건 상부어른...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견훤 말도 아니 되오. 나라를 훔친 도적이라 하였소이다. 제 형제붙이를 죽인 놈이올시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도 훔친 놈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왕건 ........ (어쩌지를 못하고 갈등한다) 상부어른...?
견훤 죽이시오.....
왕건 상부어른... 지금 이곳에서 결심할 일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제게 좀 말미를 주시오소서. 우리 제장들은 들으라.
장수들 예, 폐하.
왕건 상부어른의 말씀이 맞다. 저들은 나라를 들어바친 것이 아니라 전투에 져서 항복한 것이다. 따라서 죄를 따져 물을 것이다. 먼저 백제국의 황실을 어지럽히고 군신간의 도리를 해쳤으며 나라를 망치게 한 역신 능환을 이 자리에서 참형에 처하라.
장수들 예, 폐하.
유금필 역신 능환이라는 자를 끌어내라.
능환 하하하..... 폐하, (견훤에게) 실은 보다 일찍 목숨을 끊을 수 있었사옵니다. 허나 폐하를 뵙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옵니다. 대 백제국을 세우신 분은 폐하시옵니다. 스스로 문을 닫으신 이도 폐하시옵니다. 신은 백제를 지키려고 폐하를 배신하였사오나 결국 이렇게 되었사옵니다. 오늘 뵙고자 했던 것은 한 나라의 문을 닫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옵니다. 만수무강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
유금필 어서 끌고 가 목을 베라.
부장들이 대답하며 능환을 끌고 간다. 끌려가며 능환의 웃음소리가 계속된다. 형제들은 보고 있다. 신덕도....
왕건 또한 능환이라는 자와 함께 역모에 가담했던 장군 능애, 신덕, 파달을 끌고 가 다 참하여라.
신덕 하하하.... 죽음이 두려울 것은 없소이다. 허나 나도 장수였소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는데 덧없이 죽게 되었으니 억울하오이다. 하하하...
능애 (견훤에게) 폐하... 만수무강하시오소서. 다 백제를 보전하려고 했던 일이옵니다.
유금필 끌고 가 베어라.
파달 (끌려가며) 놓아라, 내 발로 갈 것이다.
그들 그렇게 끌려간다. 그 한쪽에서 이미 기합소리와 함께 능환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꿇려진다. 능애, 신덕, 파달들이 베어진다. 살기가 감돈다. 형제들은 다시 애걸한다.
양검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왕건 백제국의 황제는 살려두라. 그리고 양검, 용검 두 형제는 진주로 귀양보내도록 하라.
두 형제 망극하옵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벌컥) 귀양이라니...? 저놈들을 살려둔다는 말이오, 황제...? 신검이를 용서하다니요...? 저놈들을..... 저 도적놈들을..... 저 놈들을 용서.......?
하다가 견훤은 억 소리를 지르며 비틀하면서 무너져 내린다. 왕건이 부축한다. 그러나 견훤은 의식을 잃어간다.
견훤 아니되오, 황제... 아니되오... 죽이시오... 죽이시.........오....
왕건 무엇들 하느냐? 어서 상부어른을 뫼시어라. 어서....
배현경 어서 뫼시어라.
홍유 어서 뫼시어라...
염상 뫼시어라....
소란이다. 그리고 난리들이다. 신검 형제들이 보고 있다. 왕건이 허공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신검도 눈을 감는다. 형제들은 안도의 빛이다.
왕건 이들을 끌고 가라.
유금필 저들을 끌고 가라.
그렇게 신검이 일으켜지고 형제들이 끌려간다. 신검과 왕건은 서로를 보고 있다. 신검도 홍유, 배현경들에 의해 한쪽으로 인도되어 간다. 백제의 신료들도 일제히 그렇게 끌려간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왕건이 돌연 박술희에게 명한다.
왕건 박술희 장군은 들으라.
박술희 예, 폐하.
왕건 어차피 저들은 저희 나라를 망친 죄인들이다. 잠시 나의 판단이 흐렸었다. 뒤쫓아가 모두 베어라.
박술희 모두 말이옵니까?
왕건 그렇다. 황제 신검과 그 아우들인 양검, 용검을 모두 베어라. 상부어른의 한을 달래줄 필요가 있다.
박술희 예, 폐하. 부장들은 가자.
부장들이 대답한다. 박술희들이 그렇게 사라진다. 왕건이 보고 있다. 그 표정에서...
해설 신검 형제들의 최후. 실록을 보면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적고 있다. ‘왕이 드디어 명령을 내려 능환을 처단하고 양검과 용검을 진주로 귀양보냈다가 얼마 후에 죽였다. 신검은 그가 아비의 자리를 참람하게 차지한 것이 남의 위협에 의한 것이어서 죄가 두 아우보다는 경하다 하여 특별히 죽이지 않고 벼슬을 주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후 신검의 기록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양검과 용검을 먼저 처형된 후 따로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씬 황산사 외경 (밤)
군사들이 지키고 있다.
견훤 (소리) 어찌... 되었느냐....?
씬 동 산사 안
견훤이 숨을 넘기고 있다. 의원들이 포기한 듯 한쪽에 앉아 있다. 김행선, 추언규, 왕규가 함께 해 있다. 견훤이 묻고 있다.
견훤 어찌... 어찌 되었는가....? 신검이는....? 양검이, 용검이는...?
김행선 모두.... 상부어른의 뜻대로 되었사옵니다.
견훤 내... 뜻대로....?
김행선 예, 상부어른. 모두 처형되었사옵니다.
견훤 .............. (끄덕인다) 황제는...?
김행선 옛 백제국의 황도로 들어가시어 백성들을 위무하고 계시옵니다. 곧 돌아오실 것이옵니다.
견훤 황도로...? 황도로....? 그래.... 완산주가 그립구나.... 완산주가...
김행선들이 놀라서 본다. 막 숨을 거두고 있다.
김행선들 상부어른....? 상부어른.....?
견훤 완산주가...... 완산주가..... 그립구나............
견훤이 그렇게 운명한다. 그 모습에서...
해설 견훤의 죽음. 견훤은 후백제가 황산에서 멸망할 당시 그곳에서 쓰러져 인근 절간으로 옮겨졌다가 수일만에 등창이 터져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칠십이었는데 삼국유사는 그가 죽은 날을 서기 936년 9월 8일로 적고 있으나 그 정확성은 의문이 있다. 어쨌든 견훤은 이렇게 죽었다. 그야말로 후삼국 시대 파란만장했던 한 영웅의 비참한 최후였던 것이다. 일설에는 견훤이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고 지금의 전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의 묘는 지금의 논산시 한 야산에 묻혀 멀리 전주를 보고 있다.
씬 인서트 (논산의 견훤 무덤)
씬 백제 완산주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어느 곳
황후 박씨가 목을 메고 늘어져 있다. 내관, 상궁들이 이리저리 몰려가고 있다. 이상궁이 그 옆에서 울고 있다.
씬 동 황궁 마당
왕건이 들고 있다. 백제의 신료들이 모두 맞고 있다. 영순의 표정도 보인다. 왕건이 올라가 정전 뜰에 마련된 옥좌에 앉는다.
왕건 옛 백제의 대소신료들은 들으라.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이제 그대들은 나의 백성들이며 나의 신료들이다. 또한 이곳 옛 백제의 황도는 짐의 영토가 되었다. 백성들 또한 짐의 백성들이다. 나의 백성들을 핍박하지 말라. 백성들을 위로하라. 이제 삼한은 하나이다. 삼한은 하나임을 천하에 공표하노라.
모두들 예, 폐하.
왕건은 그렇게 황궁을 돌아본다. 길게 디졸브되면서...
씬 고려 황도 거리
왕건이 입성하고 있다. 백성들의 환호는 대단하다. 손을 흔들며 그렇게 입성한다. 황궁 앞에는 두 황후와 스무 명이 넘는 부인들이 그리고 대소신료들이 모두 나와 영접하고 있다. 왕건이 손을 흔들며 가고 있다. 백성들의 환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환호에 묻혀가는 왕건의 표정에서....
오씨 폐하, 통일대업을 완수하셨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유씨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김행선들 감축드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모두 고맙소이다. 그렇소이다. 삼한은 통일되었소이다. 우리들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대업을 이루었소이다. 우리 고려가 이제 삼한의 주인이 되었소이다.
모두들 만세.... 만세...... 대 고려국 만세...... 황제폐하 만세......
그 열광 그리고 만세를 받는 왕건의 표정에서 해설로 이어지며 모든 과거의 화면들이 종합되어 편집된다.
해설 삼한의 통일. 드디어 왕건은 신검을 황산벌에서 무찌르고 백제의 황궁을 접수하고 백성들을 위무하면서 그 통일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고려 황도로 개선한다. 이때가 단기 3269년 서기로는 936년 9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통일을 기념하여 당시 신검에게 항복을 받았던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그곳에 개태사를 세웠다. 태조왕건과 후삼국 시대... 이제 만 2년을 달려온 이 드라마는 이쯤에서 막을 내리면서 다시 한번 당시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후삼국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후삼국은 후백제와 후고구려, 신라 삼국을 일컫는다. 그중 후백제는 상주의 농민출신인 견훤이 서기 892년에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를 도읍지로 하여 옛 백제를 부흥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창업한 나라이다. 견훤은 신라군에 들어가 서남해 방면에서 전공을 세우고 비장으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국정이 문란하여 각지에 도둑이 창궐하였는데, 견훤은 기회를 포착하여 군사를 일으켰고 무진주에 쳐들어가 이를 점령하였으며 계속 완산주까지 이르러 나라를 건국하였던 것이다. 이후, 그는 중국의 오(?)?월(越)과 통교를 하는 한편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고 신라의 서라벌을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였는가 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세웠고 왕건과는 수없이 많은 전투를 계속하며 삼한의 패권을 다투었었다. 허나 그는 결국 자신의 집안을 다스리는데는 실패하였다. 여러 아들 중 배다른 아들 금강을 유독 사랑하여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이를 눈치 챈 신검 등 본처 소생의 아들들이 난을 일으키니 금강은 그 난에 희생되어 죽었고 신검이 새 황제에 올랐다. 그리고 견훤 자신은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고려로 탈출하여 건너가 삼한 통일의 선봉에 서서 스스로 세운 나라의 문을 닫게 했던 것이다.
또한, 후고구려는 신라 왕실의 서자인 세달사의 중 궁예가 세운 나라로서 그 도읍을 송악에 정하고 국호를 후고구려라 하였다.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이라 고쳤다가 도읍을 철원으로 옮겼으며 그후 911년 다시 국호를 태봉이라 고쳤다. 그러나 국가의 체재가 정비되고 국력이 강해지자 궁예는 횡포를 거듭하다가 918년 신숭겸 등 4기장이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고 지금의 개성인 송악에 그 도읍을 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라는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국세를 만회할 길이 없어 결국 나라를 바쳐 고려에 투항하였다. 이렇게 해서 후삼국시대는 50여년의 전란을 겪으면서 정확하게 견훤이 제일 먼저 왕조를 세운 그 해를 기점으로 하여 45년만에 태조왕건의 주도하에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왕건의 삼한통일. 비록 천년전의 역사이지만 오늘처럼 분단된 우리의 현실로써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외세의 관여가 없이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민족의 자존심이 그것이다. 통일 국가 고려, 이때부터 제국의 역사는 새롭게 씌어지며 세계 속에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기게 된다. 고려, 세계인들은 그 고려를 코리아라 부른다. 태조왕건이 이때 세운 이름이었고 세계 속의 역사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출연한 주요인물들의 면면이 스쳐간다. 그리고 자막에 ‘그 동안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의 글이 오른다.
스텝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종회 끝>
첫댓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즐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