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뚜기 국물이 맛있다.
솜다리 엄명숙
대한도 지나고 추위가 살짝 누그러지기 시작하니까 몸이 헛헛한게 보양식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집에 다 있으니까 우리집의 인구밀도가 높아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점심에 닭국을 끓여 먹으려고 어제 사다놓은 토종닭을 냉장고에서 내놓았지만 끓여 본적이 없어서 인터넷을 보았다. 삼계탕을 끓이는 방법과 비슷했다.
먼저 닭을 씻어서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팔팔 끓인 다음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붓고 마늘과 생강을 조금 넣고 오래 끓였더니 뽀얀 국물이 우러나왔다. 그래서 닭을 건져내어 뼈와 살을 분리해 살은 찢어서 참기름과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놓았다.
그런 다음에 남은 국물에 무를 조금 썰어넣고 소금 간을 해서 간을 맞추어 놓았다. 뚝배기에 국물을 덜어서 한소금 더 끓여서 무쳐 놓은 닭살과 썰어놓은 대파를 듬뿍넣어 상을 차리니 근사한 점심 식탁이 되었다. 여기에 다른 반찬은 필요없고 깍뚜기 하나면 땡이다.
애들이 나중에 대접받고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심정으로 깍뚜기도 먹던 반찬통이 아닌 예쁜 그릇에 담아 내었다. 나 혼자 먹었다면 밥솥에다 숟가락 하나와 먹다남은 반찬 하나면 되지만 귀찮더라도 애들은 엄마의 상전이었다.
애들은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 주고 나는 뚝배기가 모자라서 차디찬 사기 대접에 닭국을 먹었다. 애들은 닭국이 아니라 무국이라고 엄마를 놀려대지만 나는 닭곰국이라고 외친다. 어찌되었든 커가는 애들이라 잘도 먹는다. 뽀얀 닭국물에 시원하고 빨간 깍뚜기를 얹어서. 내가 깍뚜기를 먹지 않고 깍뚜기 국물만 먹는 것을 보더니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엄마는 깍뚜기 국물을 먹어?"
"맛있어서 먹지."
"정말로 맛있어서 먹어, 아니면 아까워서 먹어?"
"응, 정말로 맛있어서 먹지. 새콤하게 익은 국물이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한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애들이 나를 쳐다본다.
나도 삼십대 때 만해도 깍뚜기 보다 깍뚜기 국물을, 김치보다 김치 국물을 더 맛있게 먹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곰국이나 콩나물국에 깍뚜기 국물을 넣어서 먹는 어른들을 보면 개밥 드시는 것 같고, 궁상떨면서 아까워서 그러시나보다 했다. 오십이 가까워진 지금의 나는 이제 엄마를 이해한다. 깍뚜기 국물은 아까워서 먹기도 하지만 맛있기도 하다는 것을.
2009. 1. 28
점심을 맛있게 먹고나서.
첫댓글 저도 김치며 깎뚜기 국물을 엄청 좋아합니다. 김치도 물김치를 더 좋아 합니다. 군침도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렸을때는 전혀 먹지않았던 된장이며 짭조름한 젖갈 같은것이 구미가 당기는걸보면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변하는가 봅니다. 전에는 정말로 깍두기 국물맛이 맛있다는걸 이해 못했는데 약간 발효된 깍두기 국물맛은 일품이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관이 달라지듯이 우리의 입맛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나 봅니다.깍두기 맛을 제대로 안다는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뒤를 돌아볼줄아는 안목과 넉넉한 삶의 여유가 있다는것입니다.시간이 흘러야만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리가 새콤한 깍두기 국물에 고스란히 베어 있습니다. 흑백속의 영화처럼 어릴때의 저의 모습이 상영 되는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감사 합니다.
잘 숙성된 깍두기 국물과 깊어진 중년의 여인이 된 솜다리님의 고운 생활을 글로 보여 주시어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은 떨어지고 감각도 줄어들지만 깊어지는 장맛 같은 그 마음만은 내 어머니를 닮아가지요.
솜다리님이 이렇게 깍두기를 잘 담근다는 말인가요? 깍두기에 오손도손한 가족애를 보여 주셨군요. 저는 먹어보지 않아도 군침이 도네요.
옛날 깍두기국물이나 지금 깍두기국물이나 똑같은 국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깍두기 국물이 맛이 있다는 것은 그윽하게 깊어가는 인생의 참맛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깍두기국물이 맛이 있을 때부터 솜다리님의 글은 새로이 깊게 표현됩니다. 김치처럼 숙성되어가는 한 사람을 봅니다.
깍두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으면 끝내주지요. 정겨운 글 속에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