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와 제천에 걸쳐 있는 월악산 국립공원은 화강암 통판을 뒤집어 씌운 듯 영봉을 비롯하여 송계게곡
좌우에 있는 여러 암봉들이 희뿌연 빛깔로 인해 그 신비스런 자태가 더욱 묘한 기운을 자아 낸다.
운무 속에 그 늠름한 모습이 신비스런 영봉은 덕주사에 잠시 다니러 오셨던 오대산 상원사 탄허스님께서
영봉에 달이 뜨고 이 달이 물에 비치면 30년 후에 여왕이 통치를 하게 되고 그 3~4년 후에 통일의
물꼬가 트인다는 내용의 예언을 하고 1985년에 월악산 주위로 충주댐이 완공되어 정말로 달이 뜨면
충주호에 비치게 되었고 그 삼십년 후 그러니깐 2015년 박 근혜 대통령이 집권을 하게 되면서 월악산
영봉과 탄허 스님의 예언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탄허 스님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이자 유학자인 아버님의 영향으로 일찌거니 유교를 접하고 이어
당시 김제 일대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민족 자생종교인 보천교와 차천자교가 운영하던 학교를 다녀 도교 또한
유교와 더불어 거의 천재성에 가까운 재능으로 섭렵을 하다 당시 조선 최고의 선승이셨던 오대산 한암 선사와
몇 차례 서신을 주고 받고 진리에 대한 갈망을 풀고자 상원사로 들어 가서 끝내는 한암 선사의 제자가 되면서
승려가 되었지만 불교의 학승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유,불,선에 통달하게 된다. 일례로
국문학의 대가이자 자칭 국보라고 하다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동국대에서 강의가 있을 적엔 동보(동국대 보물)
라면서 드센 자부심을 나타 내던 무애 양 주동 박사께서 탄허 스님의 장자 강의를 듣고 와서 하셨던 말씀이
죽은 장자가 돌아 와서 장자 강의를 하여도 탄허 스님 만은 못 하다는 것이였고 도교의 영향인지 일본 열도
침몰설과 미국과 베트남 전의 결과 등 여러 예언을 많이 하셨는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영봉 여자 대통령
예언 보다 자신의 죽음 즉 입적에 관한 내용이다. 세인들의 귀에 잘 알려진 내용이 아니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물론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습니다.
탄허 스님은 1983년에 세속 71세로 입적을 하셨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분이 자신이 입적할 날과 시를
에언하고 그 예언한 시와 약 10시간의 차이를 보이며 입적하신 걸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 스님이
입적하시기 정확하진 않지만 약 5~6년 전에 우연히 병원에서 검진을 받다가 불치의 병을 판정 받고 오래지
않아 돌아 가실 거라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주위의 제자들이 울고 불면서 수술을 권유하고 내일의 일을
걱정하자 이 스님의 말씀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면서 한사코 병원 진료를 거부 하시면서
1983년 몇월 며칠 몇시에 자신이 입적할 것이란 예언을 하게 되자 이를 들은 어느 신문사의 가깝게 지내던
기자분이 찾아 와서 지금 당장 돌아 가실 분이 몇년 뒤 어느 날 돌아 가신다는 예언을 했다가 병원 말대로
금방 돌아 가시면 지금껏 쌓아 오셨던 명망이 말이 아니니 지금 당장 취소하시라고 했지만 별 다른 말씀이
없이 참으로 신묘하게도 자신이 말씀하신 그해 그날에 입적을 하시게 되는데 탄허 스님의 은사 스님인
한암 선사는 앉은 채로 입적을 하시는 좌탈입망을 하셨고 그 사진을 월정사에 가 보면 누구라도 볼 수가
있는데 제가 불교에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이 바로 죽음을 자신의 의지로 맞이 하는 이 부분 때문이다.
장군이든 천하장사든 죽음 앞에서의 인간은 미력하고 초라하기 그지 없다. 어떤 스님은 행선 중에
다시 말해서 걷다가 나무 밑에서 선 채로 입적을 하시는 분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또 어떤 스님은 다른
분들이 죄다 앉아서 혹은 선 채로 돌아 가시니 자신은 좀 특이하게 입적을 하시겠다면서 물구나무 서기 한 채로
돌아 가셨던 스님도 계시다고 합니다.
하봉 중봉을 경유하는 에이팀을 수산리에서 뿌려 드리고 우리 삐이팀은 영봉을 직등케 되는 송계리에서 하차를
하게 된다. 하봉 중봉 코스는 한번도 못 가 본 곳이여서 꼬옥 따라 가고 싶지만 느림 걸음에 몸살인지 포진인지
먼가 와서 온 몸이 욱신 거리는 통에 할 수 없이 삐이팀에 합류를 하였는데 대박이 터진다.
느림보 리무진에 맨 늦게 하차를 하니 난 관세음보살이 하현 하신 줄로만 알았다.
텔미님의 화려한 귀환이닷. 이 분은 삼천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빼여난 미모에 사진빨 또한 끝내 준다.
이런 분을 포토 제닉 이라고 하는데 가까이 다가 가니 선뜻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신다. 두 손으로 황감히
부여 잡고 어쩐 일로 이리도 오랜 만에 느림보에 몸을 나투셨냐고 하니 일년에 반수 이상은 해외에 나가
계셨다고 하신다. 영화 제목이 먼데 해외 로케촬영을 그리도 오래 하셨냐고 하니 집 나간 파출부 라고 하셔서
그 미모엔 애마 부인이나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에로틱 혹은 로맨틱한 영화가 어울리지 않느냐고 하니
사실은 세 분 따님이 모두 해외에서 살고 교대 교대로 손주들을 출산 하시는 통에 바라지 하느라고 따님들의
집에 가서 파출부 노릇을 했다는 것인데 이런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는 따님과 손주들은 참으로 복이 많은
분들이란 생각이 든다. 제가 볼 적엔
이 텔미님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손꾸락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살 분이고 더욱이 고매한 인품은
산행 후 뒷풀이에서 그 진가를 발휘 한다. 그 섬섬옥수로 테이블 마다 직접 반찬과 안주들을 써어빙 해 주시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 주제비에 느림보 산악회원이 아니였으면 어디 가서 저룬 귀부인의 써어빙을 감히...
어느 해 여름 가뭄과 폭염으로 몹시도 무덥던 날 우리 느림보는 영양 수비계곡에서 울진 방향으로 흐르는
왕피천으로 계곡산행을 간 적이 있었고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텔미님이 친구분 이신 카타리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보여 다가 가서 이런 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며 아주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유머를 해 보았다.
자연보호 란게 먼지 아십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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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X를 연마하여 X지를 보호하자는 가정을 지키고져 하는 남정네들의 처절한 절규라고 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머 이룬 개뼊따구 같은 인간이 있냐는 표정인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썰렁한 개그를 한 제가 혹시 민망할까
하여 생긋이 웃으시면서 자신도 아주 건전하고 잼남 유모어를 한마디 하신다. 깨갱.
송게삼거리 안부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강 대장님과 보천님은 베낭은 그 자리에 두고 영봉을 올르고 나머지는
제법 썰렁한 기운에 바람막이를 입으면서 덕주사 방향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철계단을 많이 놓아서 인지
몇 년 전에 왔을 때완 달리 하산길이 다소 생소하다. 좌우로 마치 군사들이 열병한 것과 같은 히뿌연 암봉들을
바라보면서 이제 그만 쉬어! 했더니만 그제서야 암봉들이 긴장을 푼다.
덕주사 마애불을 친견하고 계곡으로 내려 왔으나 물 한방울 보이질 않는다. 가뭄이 심한 모양인데 우리나라는
오래 전 부터 물부족이 올 것이라고 많은 토목학자들이 얘기를 해서 보나 땜을 많이 막은 어느 대통령은
녹조다 머다 물이 썩는다 하면서 아예 생태계를 파괴한 인물로 맹글어 버린다.
덕주사 가까이 오니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 동양의 알프스란 글귀가 보인다. 보은의 구병산 처럼 충북알프스란
말은 그런대로 감내를 하겠는데 월악산이 아름다운 산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이지만 동양의 알프스란 말은
아무래도 돼지 발꼬락에 진주반지를 끼운 듯한 기분이다.
월악산 일대는 멸망한 신라의 마의 태자와 덕주 공주와 관련된 많은 설화가 있는데 마애불을 조성하고 석축을
쌓는 것과 같은 토목공사는 포클레인 같은 기계가 없는 당시로선 엄청난 인려과 돈 그리고 시간이 소요 된다.
신라 안압지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던 신라 왕조를 급습한 후백제 견훤은 중국의 항우처럼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다 궁궐에 들어 가서 약탈과 함께 후궁들을 비롯한 여인네들을 겁탈 하게 되어 대다수의 신라인들이
왕건의 휘하로 들어 가게 되는데 이런 견훤이 덕주 공주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불사를 하도록 내비 둘
일도 없고 쫒겨 가는 덕주 공주가 그 많은 인원과 돈을 끌어 모을 방법 또한 전무한 일이다. 일례를 들면
조선시대에 왕족이 죽으면 장례기간이 우리처럼 삼일장이다 오일장이 아니고 최소한 삼개월 이상이 걸린다.
왕릉 하나를 축조하고 석물을 설치하는데 그마마한 시간이 걸리고 동원인원도 오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면
푹 푹 찌는 여름철이면 시신이 부패하도록 방치를 하냐구요? 왕 송장은 썩으면 절때로 아니 되기 때문에
서빙고나 동빙고에서 얼음을 가져 오고 시신을 대나무로 만든 평상 위에 올리고 난 뒤에 그 주위를 에스키모들의
얼음집인 이글루 처럼 맹글어서 시신을 동태처럼 맹그러 버린다고 합니다.
하산을 하여 송계계곡에 오니 맑은 물이 흐른다. 보는 눈이 많아 붕알탕은 몬하고 대충 손발을 씻고 나니
맑은 바람과 함께 싱그러운 기운이 여간 아니다. 텔미님이 손수 써어빙 해 주시는 오징어 무침과 열무김치를
입안 가득 넣으니 오늘 하루는 온통 내 세상인 듯한 기분이다. 오십대에 앓았던 대상 포진이 아닌 가 하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먹던 타이레놀을 약사님의 권유대로 이부브로펜으러 바꾸고 나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것이 많이 없어 져서 갠신히 일어 나서 산행기를 올려 봅니다.
다음 주 금대봉에서 야생화와 함께 우리 또 즐거운 하루를 맹긍어 보십시다.
분당 탄천변 자연보호 선두주자 돌삐 드립니다.
첨언 : 서울 자곡동에 가면 탄허 스님 기념박물관이 있습니다. 거의 신필에 가까운 스님의 많으
첫댓글 몸컨디션이 좋지않아 산행기를 이제사 올렸군요
돌삐님 글 읽으러 몇번이나 카페를 들락날락 했는지
아시는지요
빨리 쾌차하기를 빕니다
바위같으신 돌삐님이 몸 컨디션이 안 좋으시다니
믿너지지가 않지만
사람이늙어가는건 사실이지요.
마음이 따라가 주지를 않으니 몸이 늙어가는걸 시인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얼른 쾌차하셔서 금대봉에선 꽃을 찾는 나비처럼 사뿐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수서역 근처에 있는 탄허박물관 함께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