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도꾜, 가스미 가세끼의 관청가에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다.
외무성 차관실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남자의 머리도 눈과 같은 색이다.
외무성 차관이 된 사카모도.
의자를 돌리자 책상 위 신문
‘자기부상열차 상용시험 성공’ 이라는 제목.
비서를 호출하는 사카모도.
부동자세로 서는 근육질의 다부진 30대 사내.
“거기 앉게
턱으로 맞은 편 응접소파를 가르키자 사양하지 않고 앉는다.
사무관 정도의 하급직이면 자리를 권해도 일단 사양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 사나이, 아베 긴따로는 거침이 없다.
“자네 십년 전에 있었던 베링 프로젝트 건에 대해 알고 있나?
담담하게 말하지만 가슴에 그때의 패배는 치욕적인 멍울로 남아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사카모도의 역린임을 아는 아베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베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사카모도.
“베링 파일을 모두 열람하게. 그래서 프로젝트를 막을 방법을 강구하게.
******************
“대학의 자주성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총장님.
센다이의 동북대학 총장실에서 사카모도와 마주한 소오노 총장은 이제
70이 넘은 고령이다. 소재공학부를 발전시킨 공로로 본부보직에 발탁되었던
그는 2년 전에 총장으로 선임되어 지금까지 재임 중이었다.
“일본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환 태평양의 중심입니다.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었지요. 그런데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는 위기가 닥친 겁니다.
소오노 총장은 감싸쥔 녹차 잔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차맛을 음미하 듯 잠시 침묵을 지키던 노 교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베링 프로젝트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오랜 관료 생활로 몸에 밴 관록이 드러난다. 국익을 지킨다는 충정이 넘쳐났고 일본인이라면 감히 반대할 수 없으리라는 서슬 푸른 기개마저 엿보인다.
“우리 대학과 극동 연구소간의 30년 가까운 협조관계는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소오노 총장의 어조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나오고 있다.
이미 개발이 끝나 시작품 제작에 들어간 초전도체의 기술협력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자기부상 열차용 초전도체 개발을 통해 동북대학의 소재공학부 역시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극동연구소는 은인이나 다름 없다.
1977년부터 이어진 개발 프로젝트들은 극동 연구소의 지원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사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들이닥친 사까모도의 협력중단 요청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개발은 이미 끝났습니다. 지금은 시생산 단계라 저희가 더 이상 기술 협력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상태라서요.
창백해진 소오노 총장의 말에 사카모도는 씨익 웃었다.
“그 문제라면 우리 직원이 조금 알고 있습니다.
뒤에 있던 아베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총장님께 직접 말씀드리지.
아베가 일어섰다.
“외무성 차관실에 근무하는 아베 긴따로입니다.
제가 현지에 갔다가 아직 일부는 미완성 단계라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건 초전도체로 제작하는 레일의 접속 부분에 관한 얘긴데
총장님께서 아랫사람들에게 물어보시면 바로 아실 사항으로 생각합니다.
소오노 총장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카모도 역시 그 점을 알았다.
다만 빠져나갈 길을 남겨 체면을 살려주는 배려에서 모른 척 할 뿐이었다.
초전도체 협력관계가 종료되었음을 통보하는 동북대의 팩스가 날아든 것은
2007년 3월이었다. 극동연구소와 동북 대학의 기술협약기간은 25년.
이후 7년마다 연장하기로 되어있고 그 첫 연장기간의 마지막 해가 금년이다.
추가 연장을 하지 않는다는 동북 대학의 팩스.
자치주가 발족하면서 하 정수와 함께 이 소장이 은퇴한 극동 연구소는
진 현구 소장이 맡고 있었다.
느닷 없는 팩스에 기가 막힌 진 현구는 바로 소오노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장께서는 사임하셨고 지금은 여행 중이라는 비서의 답변.
뭔가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감을 잡은 진 현구 소장은
즉각 간부회의를 소집해 점검했다.
그리고 개발이 마무리되지 않은 초전도체 레일의 접속부에 대한 보고를 받자
발을 굴렀다.
접속부가 불안정한 자기부상열차는 사고부상事故負傷 열차다!
건설 현장관리에 여념이 없던 캄차카의 베링 사업단에도 비상이 걸렸다.
현장에 보안을 지시한 하 정수 사업단장이 서울로 날아와 보니 김 청자 책임연구원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환갑을 넘었는데도 흰 머리 하나 없는 그녀는 독신으로 살아서인지
드센 기질은 여전해 젊은 연구원들은 그 앞에 가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설설 기곤했다.
30년전 이 소장과 함께 동북 대학과의 인연을 개척했던 그녀로 서는 누구보다도 더 큰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하 정수 단장이 고정하시라 달래는 형편이었다.
동북대학에 파견 나가있던 연구원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했고
짐을 싸 귀국하라는 훈령을 받은 감차카 현장의 도호꾸측 인력들 역시
어리둥절해 있다.
영문부터 알아야 대책이 나올 상황이었다.
겨우 연락이 닿은 동북 대학 소재공학 부장 와다나베 교수는
면목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극동 연구소측의 방문을 꺼리는 눈치다.
30년 인연이 팩스 한 장으로 끝낼만큼 가벼운 것이냐는 말에
방문을 허락한 그는 만날 장소로 대학이 아닌 호텔을 지정했다.
센다이 시내의 조용한 요정에서 동수와 마주한 와다나베는
부쩍 늙고 지친 얼굴이다. 불과 2년 전 캄차카를 방문했을 때
활력에 넘치던 그를 기억하는 동수가 보기에 나이 탓만은 아닌 듯 했다.
녹차를 마시며 말없이 앉아있던 와다나베의 눈에 비통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말씀하신대로 팩스 한 장으로 헤어질 수는 없는 사이라 생각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와다나베는 느닷없이 다다미에 두 손을 짚더니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당황한 동수는 맞절을 했다.
“왜 이러십니까? 교수님,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해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러시지 말고 차분히 들려주십시오.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듯 녹차를 마시며 침묵을 지킨다.
이윽고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뜨거운 녹차 한 잔을 다 비우고 난 후였다.
“총장께서는 자신의 뜻이라며 금년 말로 협력중단을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학교에 나오지 않으셨는데 일 주일 후 사표를 보내오셨지요.
두문불출하시면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계십니다.
동수는 묵묵히 와다나베를 응시했다.
“국익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협력중단을 종용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고민하시다 혼자 책임지기로 하신 겁니다.
선생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저도 이 자리에 나올 입장은 아니지요.
"그러나 대학과 일본 과학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밝혀야 했고
극동 연구소에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려야 한다 싶어서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와다나베는 다시 다다미 바닥에 이마를 비비고 있었다.
그의 태도에서 동수는 그가 감시받고 있으며 자기와 만나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는 점을 감지했다.
멍한 기분이다.
말없이 도꾸리를 들어 와다나베의 잔과 자기 잔을 채웠다.
요정 문을 닫을 때까지 그들은 통음했고 몸을 못 가누는
두 사람을 부축해 택시에 태우느라고 요정 아가씨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서울과 캄차카 간에 화상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 쪽은 진 소장과 유 이근 책임,
캄차카 쪽은 동수가 주재하는 기술개발 대책회의.
시스템을 총괄하는 유 이근이 화면에 나왔다.
“상황을 정리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초전도체 소재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 가지만 빼고는 필드Test도 마무리 되었지요.
아시다시피 레일 이음매의 소재와 기구물입니다.
초전도 레일은 전선인 동시에 하중을 버티는 철 구조물입니다.
그리고 120m마다 레일 이음매가 들어가야 하지요.
문제는 이 부분이
전기의 전도 효율성을 유지하면 강도가 떨어지고
강도를 보강하면 전도 효율성이 떨어져
개발 난이도가 높은 과제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이 기술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에 있습니다.
공동개발해온 파견 연구팀에서 지금까지의 개발 경과를 말씀해 주시지요.
화면에 캄차카 쪽 30대 중반의 연구원이 나타났다.
“도호쿠 측에서 이 부분 개발을 제일 뒤로 돌려놓은 것은
필요한 시기가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이유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한 실험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발 장소를 현지가 아닌 일본으로 한 것은
고강도의 정밀금형 제작이 자주 필요한데
그런 협력을 받을만한 업체들은 일본 국내의 금형업체들뿐이라서 였지요.
동북 대학이 정상급 소재공학기술로 평가받게 된 것은
소장 자료가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2차대전 이전부터 축적되어온
금속가공기술은 물론
지난 30여년에 걸쳐 컴퓨터로 분석해온 방대한 금속구조 해석 자료가 축적된 곳이 바로 동북대학입니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받은 것은 결과였지 그 결과를 만드는 로우 데이터(기초 자료)나 방법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초전도 물질을 만드는 방법의 기본이 시행착오적 실험을 반복하면서
아주 조금 씩 조금 씩 나가는 식이거든요.
지금까지 실패해온 데이터가 없으면 원점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게 우리가 당면한 문제점입니다.
“그럼 그 데이터만 가져오면 되는 건가?
팔짱을 낀 진 현구 소장이 나타났다.
“일부가 해결될 뿐이지요.
이음매 부분은 강도가 높은 부품이라 금형업체부터 개발해야 합니다.
일본 업체들이 우리와 협조하지 못하도록 족쇄가 채워져 있다면
다른 업체라도 찾아내야지요.
“그게 전붑니까?
“예, 그 두 가지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저희끼리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럼 대책으로 들어가 보지.
진 소장의 말에 유 이근이 나타났다.
“금형 문제는 스위스의 라인더스 쪽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오우케이, 데이터는? 누가 할래?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의논해보면 수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흘쯤 뒤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면에 수군대는 연구원들의 모습.
인터넷, 해킹이라는 단어가 가끔씩 들려온다.
팔짱을 끼고 여두목 같이 버티고 있는 김 청자, 씨익 웃는 모습.
***************
도호쿠 대학의 협력 중단으로 쓴 맛을 본 자치주는 교훈을 얻었다.
틀림없이 도호쿠 측은 믿을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보다 상위집단인 일본정부의 압력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왜 미리 생각지 못했던가? 때늦은 후회가 동수의 가슴을 쳤다.
상대의 인간적 성실성에만 의존하다가는 뜻하지 않은 사태를 당할 수도 있음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배웠다.
그는 김 기수와 빅 죠지를 통해 정보계통 경험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탈북자들 속에는 다양한 인재들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사람이 있다는 김 기수의 연락을 받은 동수는
그가 일하는 캄차카 공구로 직접 찾아갔다.
일의 성격상 소문을 경계해야 했지만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관찰 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정 지문이라는 그 사내는 평범한 얼굴의 30대 중반이었다.
수송대 하사관 경력을 살려 덤프트럭을 몰고 있는 그는 작업 효율을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잘 내는 직원으로 인사 기록부에 평가되어 있었지만 신상이나 동료관계에서 특이점은 없었다.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탈북자에 불과한 그를 왜 추천했는지 의아해하는 동수에게 김 기수가 말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조선 사정은 말이 아니더랬어요.
탈북자들도 늘었지만 그 뒤를 쫓는 개떼도 많아졌습네다.
그 와중에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는 거의 저 동무 덕분입네다.
러시아 당국의 움직임이나 중국 쪽 사정, 그리구 북 조선 동향을 파악해
미리미리 대비책을 세울 수 있었던 거이 전부 저 동무 공이야요.
어떻게 그런 소식을 아는지는 몰라두 아무튼 이르쿠츠크 출신 치고
저 동무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네다.“
동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먼발치에서 움직이는 덤프트럭의 사내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평범해 보일 뿐 어느 구석에도 특이해 보이는 점이 없었다.
여하튼 일단은 만나볼 흥미가 생겼다.
그날 저녁, 김 기수, 정 지문들과 식사를 하면서 동수는 캄차카 현장을 둘러보러온 자치주 행정담당 직원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정 지문은 나직나직한 말투로 캄차카 생활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자치주 직원에 대한 인사치레인지 진심인지를 가늠키 어려운 차분한 태도였다.
동수는 짐짓 최근의 북한 동향으로 화제를 돌렸다.
“보도를 보니 북한은 요즘 다시 어려운 모양이던데요.
1994년 이후의 대기근으로부터 회복되고 있던 북한은 2006년부터 잇따라 들이닥친 홍수에 겹쳐 쌀과 옥수수 등 식량가격이 상승하는 바람에 고전 중이었다.
96년 이래 수십만 명이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탈출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 당국의 체포 및 강제북송을 피해 숨어살고 있으며 국경지대에선 북한 여성들의 인신매매가 지속되고 있었다.
탈북자들은 중국의 단속을 피해 캄보디아, 라오스, 몽골, 태국, 베트남 등으로 재탈출, 한국이나 일본, 미국으로의 망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정 지문은 짧게 답변했다가 이내 덧 붙였다.
“여기서는 TV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서리,
자기가 어디서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를 애써 설명하려드는
그에게서는 아직 풀지 않은 긴장이 느껴진다. 안쓰러워진 동수가 말 했다.
“자치주에서는 안전이 보장됩니다. 무슬림 순찰대도 있고,
정 지문도 동의했다.
“그렇지요. 솔직히 전에는 거리를 지나기도 불안했습니다.
모두 낮선 사람들인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와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아차 하면 요덕 행인데.
요덕 수용소라는 말에 김 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작년에 헤럴드 트리뷴은 17년 전, 북한을 탈출했다 러시아에서 잡혀 송환되었던 7명의 탈북자들의 소식을 실었다. 1990년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했다가 러시아에서 체포되어 TV에 보도된 그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조국으로의 송환이 두렵다고 했다. 그중 두 사람이 다시 탈출해 이르쿠츠크로 숨어들어 요덕 수용소의 참상을 털어놓았다 했다.
정 지문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옮겼다.
“러시아 인들이 자기네를 중국에 넘기기까지도
한국정부나 UN 이 구해줄 줄로만 믿었답니다.
북한으로 송환된 일곱 중 다섯 명이 수용소에서 고생했는데 굶주리는 북한 기준으로도 너무 적어 입에 풀칠 밖에 안 되는 급식을 주며 15시간 노동을 했다고 했다.
일곱 명 중 홍일점인 방 영실 씨는 2000년 7월에 이송되어왔는데 몇 달 동안 악명 높은 보위부의 고문을 받아 요덕에 왔을 때는 이미 몸이 졸아들어 개 크기만 했었고 2개월 후에 사망했다고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14살의 소년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방황하는 북한 아이들과 같이 난민 캠프를 전전하다가 2002년에 러시아 로 왔다. 북한을 떠났을 때 중국의 한 교회에 7명이 모였었다고 한다. 거기서 한 남한 사람이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로 먼저 가야한다면서 돈 6000위안($770)을 주었다.
1999년 11월에 일행은 철조망 세 개를 뚫고 러시아로 건너갔다.
일행은 어느 농가에 들어가 빵과 저린 배추를 구걸하던 중 러시아 국경 경비대가 개를 앞세우고 들이 닥쳤다. 그들의 체포 사실은 러시아 TV에서 보도되었다.
정 지문은 김 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누구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연구 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나치들의 혹독한 유태인 사냥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듯 그들 역시 어떤 방법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동수는 베링 자치주나 탈북자들이나 같은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살 길을 강구하지 않으면 해꾸지 당해도 호소할 곳조차 없는 곳이 냉정한 국제 사회였다. 동수는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2008년 1월, 경비 사관학교 내에 정보팀이 신설되었다.
팀원은 다섯 명이었는데 정 지문을 포함한 한국계 세 명과 빅 죠지가 수배해준 미국인 두 명이었다.
그들은 베링 자치주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경계대상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작업이었다. 정의된 일차 경계 대상은 미국, 러시아 였다. 그 외의 간접 경계대상은 베링 철도와 연결되는 대륙 철도망의 통과국들이었다. 대륙 철도망에 문제가 생기면 베링 철도 역시 동맥 경화증에 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작업은 지킬 대상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자치주가 보유한 자기부상열차와 북극권에서의 토목기술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었기에 호시탐탐 이를 노리는 손길이 어디서 뻗쳐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스위스의 라인더스 사나 동북대학처럼 분명한 파트너만이 아니라 이들과 연계되는 수십 개의 협력업체를 통해서 언제라도 유출될 수 있었다.
다음 일은 정보 수집망 구축작업이었다. 정보의 홍수라고도 할 수 있는 21세기에는 애써 수집하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사방에 넘쳐났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정보를 제때에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따라 서 정보의 수집 못지않게 분석 정리에 고급인력이 필요했다.
경계 대상들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조사대상 정보들이 분류되 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미국이나 러시아, 또는 어떠한 국가가 적대 행위를 한다해도 견제 수단이 없다는 점이 었다. 군대가 없는 베링 자치주는 무슬림 순찰대와 경비사관 학교가 유일한 준군사조직이었고 빅 죠지를 비릇한 주민들의 자경단들이 무슬림 순찰대를 보조해 경찰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사 정규군이 있다 하더라도 강대국 상대로는 무의미했다. 자치주 지도부와 극동 연구소는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의 기본 요소인 힘이 없는 것이었다.
“힘이 군사력만은 아니지요. 석유 자원도 얼마든지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경제력이나 다른 방면으로 생각 을 넓혀봅시다.”
진 현구 소장의 말에 김 청자가 동조했다.
“맞아요. 자원, 식량, 외교력, 인맥 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세대동안 중동이 대접받은 것은 군사력 하고는 전혀 무관했잖아요? 일단 유사시에 미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한번 열거해봅시다.
김 청자의 제안에 막연하게 겉돌던 대화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회의실 구석의 화이트보드를 끌고 온 정 지문이 청색 마카로 적기 시작했다.
‘식량, 석유, 베링 소년단 인맥, 한국과의 안전보장조약,
자치주의 자원 개발권, 몽골리안 루트 국가들의 외교 파워, ---’
“와아--, 적어놓고 보니 우리도 쓸만한 카드가 꽤 많네.
김 청자가 감탄했다.
정 지문은 쓱쓱 표를 그리더니 가로 칸에는 경계 대상이나 보호 대상을, 세로 칸에는 활용 가능한 요소들을 죽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가로 칸의 러시아와 세로 카의 외교력, 식량이 교차하는 칸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이런 식으로 정리해가면 일단은 위기대응 전략의 틀이 되지 않을까요?
동수는 감탄했다.
정 지문이 순발력 있게 그려낸 전략 매트릭스 도표는 가능한 모든 요소를 빈틈없이 커버하는 작업 수단 이었다. 내용을 심화시키면 틀림없이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였다.
2010년 11월 캄챠카 휴양소, 벽 난로를 갖춘 커다란 1층 홀 에는 오늘을 위한 서빙 테이블이 벽을 따라 죽 차려져 있다. 이틀 후 있을 시 운전을 기념하는 베링 사업단의 자축 파티 였다.
아직은 손님들이 도착하지 않은 이른 오후,
전날 도착해 여기서 묵은 이환과 김청자가 벽난로 앞에 앉아 잡담 중이다.
"난 여기만 오면 느긋해져, 다른 데서는 느낄 수 없는 한가한 느낌.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데 익숙하다가 이런 사치는 정말 이지---흐흥~~.
벽난로의 장작을 부젓가락으로 쑤석이던 김청자가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목을 가르릉 댄다.
"한 잔 하실래요?
동수가 레미 마틴 병을 들어보인다.
"응, 줘. 사치를 제대로 즐기려면 낮부터 꼬냑 잔을 핥아야 제격 이지.
잔에 소금도 발라 줘.
진한 갈색 액체가 1/3쯤 채워진 둥근 잔을 받아든 그녀는 코를 잔에 박고 냄새부터 맡는다.
"아, 이 향기---! 생각나니? 하바에서 바이칼까지 가는 시베리아 철도에서 눈물 나는 얘기 들으면서 꼬냑 깨나 비웠었지.
"맞아요. 누님, 그땐 정말 마시지 않고는 못견딜 기분이었지요.
그 친구도 이젠 중 늙은이가 다 됐더라--.
김 청자가 씨익 웃더니 짓궂은 한 마디를 보탠다
“원래부터 모지방은 좀 늙어 보였잖아. 이따가 온다던데.
한 모금씩 마신 둘은 동토에서의 천진스러운 청춘을 얘기하던 겉늙은 청년 김 기수를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다. 이따금씩 벽난로 속에서 장작이 탁탁 튀는 소리만이 통나무 집의 아늑한 정적을 더욱 깊게 했다.
"그때 샀던 샤프란 아직 갖고 계세요?
"하바에서 산 거? 지형이가 뺏어간 게 언젠데.
고게 모자가 탐난 게 아니라 즈이 아버지하고 내가 같은 털모자 쓰고
무드 잡는다고 샘내서 그래. 그거 알았어?
"헛, 무드 좀 내면 안 되나? 그 녀석---!
"불륜의 관계래.
그래도 이렇게 너하고 있으니까 참 좋다아---."
김청자는 벽난로의 장작을 쑤적 거리는 동수의 등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이런 로맨틱한 분위기를 트집 잡아 이따금씩 심술을 부리는
지형이도 사실은 그들의 우정을 보석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집 앞에서 정지하는 스노우모빌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고모, 아빠랑 또 무드 잡는 중이지?
문도 열리기 전에 활기찬 맑은 목소리가 짜릉 짜릉 들려온다.
동수가 문을 열자 얼굴이 빨갛게 언 지형과 윤 영희, 김 일기 들이
스노우모빌의 짐을 푸는 중이다.
러시아식 털모자가 눈에 익다. 김 청자가 뺏겼다는 바로 그 샤프란이었다.
이제 30대 초반에 접어들었지만 모직 코트에 털모자를 쓴 지형의 모습은
러시아 소설에서 빠져나온 나따샤처럼 생기발랄하다.
짐을 나눠든 동수가 들어서니 김 청자가 허리에 손을 짚 고 방 가운데 떡 버티고 있다.
"지형이 너, 언니라 그러라고 도대체 몇 번 얘기해야 알아듣겠니, 앙?
"에이, 말도 안돼. 아빠 누나가 어떻게 언니예요?
"내가 진짜 누나냔 말야 앙? 누나뻘이다 이거지. 안 그래?
사람들은 낄낄 댔다.
김청자의 억지소리와 그에 맞서는 지형의 항의는 만나면 으레 치르는 인사다.
"영희씨, 어서 와요. 근데 두 사람 국수는 언제 먹게 돼?
진즉에 쌀은 익어서 밥 된지 옛날일텐데?
윤 영희가 귀까지 새빨개진다.
일우 건설의 과장인 김 일기는 극동연구소 연구원 윤 영희와 1년째
사귀는 중이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주변에서 다 알고 있다.
"싫어요. 김 부장님, 자꾸 그런 말씀하시면---.
"헛, 내가 뭐 못할 말 했나. 자치주 인구정책 발언인데.
빨리 2세들 머릿 수를 늘려야지.
"여전히 원기왕성 하십니다. 우리 왕 부장님은.
김 일기가 끼어든다. 김 청자의 직위는 극동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었는데
그냥 왕 부장이라고들 부른다. 늦게 온 셋은 벽난로 앞으로 의자를 들고 와 둘러앉았다. 찻잔과 간식이 실린 카트를 밀고 온 안나가 김을 뿜는 싸모와르 손잡이를 주방용 곰돌이 장갑으로 싸쥐고 따른다. 따뜻해진 머그잔을 손바닥으로 깜싼 윤 영희가 안나에게 알은 체 한다. 사람들은 뜨거운 차를 불며 철 이른 X마스 트리의 장식을 감상했다.
“오다가 엄청난 새 떼를 봤어요. 겨울이면 남쪽으로들
죄 이사 가는 줄 알았는데 아직 남은 새들이 많던데요.
벽난로 앞에서 손바닥을 비비던 김 일기가 김 청자에게 말했다.
“그래, 겨울 경치 중에서 새들이 그중 볼만 하지.
대개 갈매기 종류야.
동수와 둘이 있을 때와는 달리 갑자기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된
김청자의 시큰둥한 반응. 하지만 지형은 반색한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귀국한 그녀는 이번 겨울을 마음껏 놀 작정이었다.
“아빠, 시 운전 끝나면 우리 사냥가요.
기러기도 잡고 나따샤처럼 춤도 추고 놀자. 우리,
으응 아빠 응...
지형은 사냥을 마친 로스또브 네 식구들이 친척 아저씨 집의
흥겨운 모임에서 민속춤을 추는 장면을 연상하고 있었다.
발랄라이까 반주에 맞춰 추는 나따샤 댄스...
러시아 민중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장면.
“글쎄, 누님이 별로 내키지 않아 하시잖아?
동수는 청자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지형에게 덜미를 잡힌
그의 얼굴에는 벌써 기러기 사냥 쪽으로 쏠린 눈치가 완연하다.
김 일기와 윤 영희는 당연히 한 편이고 압력에 밀린 동수까지 동의하자
김청자도 도리 없이 기러기 사냥을 나설 판이었다.
“이거 짝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털이 두텁고 지구력은 좋지만 순발력이 떨어지는 썰매 개는 사냥에는 맞지 않다.
신바람을 낸 지형이가 내일 마을에서 사냥개를 알아보겠다며 종알댄다.
저녁이 되면서 이 마을에서 연말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업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극동 연구소 직원과 일우 건설 사람들, 김 기수를 비릇한 탈북자 그룹과 각국 이민자들의 지원 사무국 사람들, 그리고 윤 석로가 끌고온 고령자 그룹들 이었다. 5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떠들썩한 밤이 시작되었다.
2010년 5월 3일,
오늘은 4년 전의 간이 시운전에 이어 베링 철도 중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카멘스코예 구간에서 본격적인 2차 시운전을 하는 날이다. 출발 지점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다.
차량 두 대로 실시하는 시운전 탑승자는 동수를 포함한 3명이었는데 조종은 동수가 맡을 예정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내정되어 있었는데 캄차카의 교관들로부터 조종을 배운 동수는 자기가 ‘선장 출신이니까’라고 우겨서 된 일이었다.
그래서 원래의 조종사는 기록과 계기점검을 맡기로 했다.
이번 시운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동수로서는 차마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없었고 그 속내는 이심전심으로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지난 4년간 해킹까지 벌이면서 개발한 초전도 레일의
이음매를 사용한 궤도의 본 시험이었기에 사업단 간부들은 물론
진 현구 소장과 김 청자를 비릇한 서울의 연구소 간부들까지
모두 참관하러 도착해 있었다.
안전복과 헬멧을 착용한 동수와 시운전 요원들이 홈에서 나타나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고 꽃다발을 든 지형이 달려나와 동수를 포옹했다.
멋진 털모자의 늘씬한 미녀가 포옹하자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성원을 보냈고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지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열차 트랩으로 올라갔다. 진 현구가 꽃다발을 든 동수에게 악수를 청했고
감개무량한 표정의 유 이근이 그 옆에 서 있었다.
하 정수를 따라 제네바에 처음 도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50대의 장년이 된 그 아들이 완성된 자기부상 열차
시운전에 나서고 있었다.
김 청자도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열차의 유선형 앞 부분을 보고 있다.
열차 문이 스르르 닫히고 경고등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조종석의 동수가 군중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하는 순간 계기가 점등을 시작했다.
열차는 미끄러지듯 홈을 빠져나가더니 삽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카멘스코예 역 구내의 상황실로 우루루 몰려 들어갔다.
상황실의 화면에는 조종석에서와 같은 조망이 나타나는 스크린이 있었고
스크린 앞에는 지금 달리는 열차와 같은 배치의 각종 계기가
숫자를 표시하며 작동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동수와 시운전 탑승자들의 대화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만 하면 상태가 좋지?
“예, 4년 전에 탔을 때보다 가속이 훨씬 빠른데요.
“10분 내에 최고 속도까지 도달해야 정상인데 지금 3분 지났어. 올 크루 스탠 바이
“아이아이 써어
“카운트. 다운
“아이아이 써어
출발 3분만에 열차의 속도는 시속 200km에 도달해 있었다.
7분이 되자 속도는 350km에 이르렀고 빠르게 바꾸어가던 디지털 속도계는 8분이 되자 470km를 표시했다.
곧 꿈의 500km를 돌파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으며 환성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
스피커가 터지는 듯한 파열음과 뭐라고 외쳐대는 동수의 고함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치직 대는 잡음만 토해내는 스피커.
계기반에서 의미없는 숫자들이 멋대로 명멸하고 있다.
얼어붙은 한 순간이 지나자 하얗게 된 사람들을 밀치며 김 청자가 헬리콥터를 외쳤다.
응급 구호반이 탄 헬리콥터가 이륙하기도 전에
사업단 간부들과 연구원들이 분승한 두 대의 찦차가 먼저 출발하고 있었다.
찦차에 탄 김 청자는 그제서야 동수의 고함소리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고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스피커가 터져라 외쳤던 소리는 무슬림 전사들의 돌격 구호였다.
“알라아아아아아후 아끄바아아아아아아르!
하 동수는 죽었다. 즉사였다.
두 번째 칸에 타고 있던 나머지 두 사람도 부상은 입었지만 다행히 살 것 같았다.
사업단 측은 보도를 막아보려 했지만 그건 막아질 성격의 사건이 아니었다.
신문과 TV에는 궤도 옆구리를 빠져나와 지상에 거꾸로 박힌 유선형 열차의
처참하게 찌그러진 사진과 함께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떠서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떨어져서도 달리던 기세 그대로 앞으로 내달았지요. 달릴 때는 몰랐는데
엄청난 속도였다는 걸 바닥에 떨어져서야 알았습니다.
글쎄 바퀴도 없는 열차가 레일에 마찰해가면서 순식간에
몇 km 씩이나 달려가더라구요. 하지만 그게 똑바로 갈 리가 없었지요.
조금 가다가 곧 옆으로 방향이 틀어지면서 궤도 밖으로 튀어나와 추락했지요.
단장님께선 아마 그때 부상을 입으셨을 겁니다.
추락원인은 사고부분 궤도의 전원 차단이었고
차단 원인은 자체 개발한 레일 이음매 부분이었다.
갑자기 전원이 끊기자 부력을 잃은 열차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궤도에 내려앉았고 그 뒤는 생존자들의 얘기대로 였다.
넋을 잃은 사업단 직원들과 연구소 직원들은 진 현구 소장의 지시에 따라
사고 수습반과 장례 준비팀으로 나누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 이근은 유해 곁을 떨어지려 하지 않는 지형과 김 청자를 달래
휴양소로 데리고 왔다. 불과 이틀 전까지 자축 파티로 떠들썩했던 휴양소는
소리죽인 흐느낌만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슬픔에 짓눌려 있었다.
부친의 서재로 갔던 지형이 잠시 후 퉁퉁 부은 눈으로 CD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사람들을 불러 모은 그녀가 컴퓨터를 켜자 동수가 나타났다.
“여러분과 이런 식으로 만나 유감이군요.
이걸 보신다면 저는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요.
만약을 생각해 남기는 건데 녹화가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
잠시 끊어졌던 영상은 이내 다시 이어졌다.
“잘 되네--, 저도 제법 하는 모양입니다. 청자 누나,
그럼 지금부터 남길 말을 하겠습니다.
차기 사업단장은 진 소장께서 맡아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저보다 연배되시는 분께 주제넘는 부탁을 드려 죄송스럽지만
함께 한 30년 세월을 믿고 부탁드리니 부디 살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일우건설의 대주주는 지형이지만 사업단을 이끌기는 아직 어리지요.
역시 잘 이끌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동북 대학에다 화풀이는 마세요.
지난 4년 동안에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차피
그 쪽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현명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묻어주세요.
서울보다 캄차카가 더 정들었고 자치주가 잘 되는 것도 보고 싶습니다.
서울의 집 사람도 이쪽으로 옮겨 나란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시키는 대로 성당에 나가는 건데
지형아,
덤터기 쒸우고 가 미안하구나.
모든 건 진 현구 단장님 하고 청자 누나, 그리고 연구소 식구들과 의논해라.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너는 13억 무슬림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해라.
우리 자치주에서는 모든 사람이 일족의 시조이고
우리 일거수 일투족에 따라 새로운 종족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점을 명심해라.
아빠는 늘 네가 자랑스러웠단다.
동수가 죽음을 예감하며 시운전을 자청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지형과 청자는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고 누구도 그녀들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동수를 애도하는 사람들 이 차츰 모여들면서 CD는 몇 번씩이나 거듭 돌려졌다.
김 기수와 윤 석로가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들어오더니
화면의 동수를 향해 두 번의 큰 절을 올렸다.
그들과 탈북자들에게 동수는 친구이자 형님이고 은인이었다.
카멘스코예의 장례식장으로 세계 각국에서 조문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은 시골 비행장에 불과한 카멘스코예 공항으로 자가용 비행기와
임시 편성된 셔틀 여객기가 계속 날아들자 관제탑은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문세와 윤 석로, 극동 연구소의 중견 연구원 들이 상주와 장례위원으로
손님을 맞았고 김 청자와 지형이 빈소를 지켰다.
조문 온 빅 죠지와 거구의 사내들이 우루루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자
서울과 알라스카에서 온 정부 관리들이 질린 표정으로 슬슬 자리를 피했다.
다음 날은 벤 유수프가 가족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무슬림 이민자 대표들이 가족과 함께 그들을 영접 했다.
그들은 동수의 마지막 외침
“알라아아아아아후 아끄바아아아아아아르! 의 녹음을 듣고 또 들으며 울었다.
함께 있던 무슬림 여인들이 입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통곡,
무슬림식 호곡이 한동안 이어졌다.
“아랄랄라라랄라 루루루 우후후후...
동북대학 조문단이 도착하자 사람들은 얼굴이 굳어지면서 분위기가 험상궂어졌다.
사절단을 대표해 분향한 와다나베는 초줴한 얼굴로 청자와 지형에게
큰 절을 했고 마주 엎드린 두 여인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어두운 얼굴로 구석에 앉아 침통한 표정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와다나베는
다과를 날라 온 김 청자에게 장례식 끝나면 꼭 한 번 찾아달라 부탁했다.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 센다이 사람의 전형인 와다나베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와다나베의 개인적인 협조로 초전도 레일의 이음매 부분이 완성된 것은
사고가 있은 지 3년 뒤인 201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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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와 시베리아를 잇는 베링 철도가 착공 30년째인 2025년에 완성되었다.
선박과 항공에만 의존하던 미주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
철도로 연결되면서 환태평양 경제권의 구도를 바꿀 초석이 마련되었다.
섬나라에 대한 대륙국가들의 비교우위가 나타나는 구조가 성립된 것이다.
베링 철도는 개통 5년 만에 환태평양 지역 물류의 30%를 소화 해냈다.
자치주 공단들의 생산과 유통방식은 CIM시스템이다.
CIM은 각 지역에서 판매되는 물량이 실시간으로 제조업체에 입력되어
그만큼만 생산공급 하는 체제. 도요타의 JIT 방식과 흡사하다.
재고부담을 줄여 원가절감으로 이어지는 이 시스템 덕분에
자치주 상품들은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 경쟁력을 자랑했다.
자치주 상품들은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시장으로 퍼져나갔다.
자기부상열차가 가동된 지 불과 10년만인 2035년에 베링 자치주는
교역량이 세계 10위권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신제품 개발이나 생산 기술은 북극권을 둘러싸고 띠 모양으로 길게 펼쳐진
연구소들 간의 공조 체제로 진행되었다.
미주 지역의 연구 결과는 일과가 끝나면서 낮과 밤이 반대인
극동 지역 연구소의 해당 부서로 인계되어 릴레이식으로 계속되는 24 시간
업무체제였기 때문에 베링 자치주의 연구개발 속도는 타 지역의 2배를 능가했다.
베링 철도 건설과정에서 축적된 기술 --자기 부상 열차, 현수교, 해저터널 건설,, 극지 토목건축, 건축 소재 개발 등 -- 분야에서 이미 첨단을 달리던 베링 자치주의 기술수준은
24시간 연구 체제 덕분에 기술업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베링 철도의 X자형 받침대를 통과하는 것은 자기부상 열차만이 아니었다.
광 케이불과 송전선이 있었고 가스와 원유 송출 파이프 라인 역시 손님의 하나였다.
2031년에 베링 자치주는 한 반도를 통과하는 2차 확장공사를 위한 협의를
남북한 당국에 제안했다.
베링철도의 등장으로 중동은 교통의 변방에서 일약 중심지로 변했다.
베링 철도로 유입된 남북 미주의 물동량이 유럽과 아프리카로 가면서 거치는
중 앙아시아와 중동은 대륙 철도의 수혜자였다.
발 빠른 국가들은 베링철도를 자국 철도망과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을
이미 수년전부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부상열차 기술전수를 목적으로
베링 자치주에 몰려들었고 덕분에 자치주 기술국은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카멘스코예의 호텔들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늘 객실이 부족했다.
대륙철도의 탄생과 발맞추어 새로운 관광시장도 열렸다.
터키에서 출발해 교통 오지였던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로 이어지는
철도망 통과지역은 12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유목제국의 세력권과 일치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아기 엉덩이에 푸른 멍으로 나타나는
몽골 반점을 가진 민족들이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몽골리안 벨트로
불리면서 관광코스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유목제국의 발자취는 신 노마드 시대로 일컬어지는 21세기의 관광객을
유혹했고 성지순례 못지않은 인기코스로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남부 아나톨리아의 태양은 5월쯤이면 더 이상 오! 쏠레미오의 감미로운 햇살이 아니다. 지중해를 보듬던 자애로운 얼굴은 사라지고 이글대는 폭염을 쏟아 붓는 폭군으로 변한다.
아직은 백열의 태양이 작열하기 이른 아침나절, 카파도키아 고원이 내려다보이는 숙소 발코니에서 작은 원탁을 마주한 두 남자가 물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은 잘랄이 입을 열었다.
“아마드, 무엇이 미래의 꿈보다 더 소중하겠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가족과 우리 부족에게 꿈을 주는 일이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밤색의 구레나룻이 탐스러운 다른 남자가 응수한다.
“그야 그렇지만 아나톨리아는 산맥이---, ”
길게 연기를 내뿜은 잘랄이 이마와 왼쪽 가슴에 손을 대며 다독 이듯 말했다.
“너무 걱정 말게. 아마드,
흑해 항로를 중앙아시아 초원과 연결 하면 훌륭한 관광 루트가 될 거야.
이들은 터키에서 시작할 몽골리안 루트 운영을 토의하는 중이었다.
이슬람권을 기점으로 삼아 극동의 환태평양 경제권까지 연결시키는 관광루트 구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수익성이 낮아 주변국들의 동조를 얻지 못해왔다.
그러나 베링 자치주가 등장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변방에서 일약 중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베링 철도를 통해 유입된 남북 미주대륙의 물동량은 러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로 흘러갔다. 때문에 새롭게 탄생한 대륙간 물류망의 중앙에 위치한 중앙아시아와 중동은 베링 철도의 수혜자였다. 이미 발빠른 중동 국가들은 기존 철도망을 베링 철도와 연결시켜 대륙 철도망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대륙간 교통망은 관광유치에 도움이 된다.
새롭게 구상되는 철도망은 12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유목제국의 세력권과 일치하기 때문에 철도통과지역들은 몽골리안 벨트로 불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장검경전이 몰고온 감격이 이슬람권을 휩쓸면서
사라센시대의 영광을 되찾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중동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연결되면서 관광산업에 활발한 투자가 시작되었고 몽골리안 루트 관광이 이슈로 떠올랐다.
터키에서 태평양 연안으로 이어질 몽골리안 벨트를 따라가는 루트에는 관광객을 유혹하는 무수한 자원들이 살아 숨쉰다.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영욕이 깃든 동서양의 교차로 터키에서 중앙 아시아 제국과 하서 회랑의 실크로드로 연결 되고, 다시 만리장성 북녁의 아득한 초원과 사막, 그리고 툰드라를 지나 돈황 석굴로 이어져 열하일기로 한국인과 친숙한 내 몽골의 오르도스까지 이어진다.
이윽고 만주와 연해주로 오면 서 한반도 내륙운하 관광으로 마무리될 몽골리안 벨트에는 여건만 정비되면 성지순례 못지않은 인기코스로 자리매김 하면서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몰릴 것으로 기대되었다.
여행이나 관광지에서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들이 아는 지식의 발상지나 역사의 현장을 보고 싶어 한다.
러시아 혁명의 열정에 심취해 청춘시절을 보낸 사람은
혁명의 현장을 보려할 것이며 열하일기의 독자는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 산해관과 북경을 거쳐 이에 초원과 사막일 뿐인 하북성의 열하로 가려 할 것이다.
여행은 역사의 드라마를 따라 움직인다.
몽골리안 벨트는 그러한 욕구에 부응할 것이었다.
관광공사의 회의실에서 문화부 장관에게 21세기의 관광 진흥 전략을 보고하고 있었다.
“한국의 관광산업 발전전략은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에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중동 쪽에서는 이미 대륙 철도망을 이용한 몽골리안 관광루트 개발을
검토 중 입니다. 이 루트를 한국으로 연결하면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 한인과 몽골리안의 유전자는 현격하게 다릅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투르크 족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제국의
유목민족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20~30% 수준의 몽골리안 유전자가
발견되지만 중국 한인들은 그 수준이 5% 미만이라는 겁니다.
이를 근거로 몽골리안의 유전자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역사기행 루트를 개발해 선보이고 싶습니다.
몽골리안 루트는 관광 진흥뿐 만이 아니라 외교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북방유목민족을 포함한 소수 민족사와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언제나 단 한 가지, 진실입니다.
몽골리안 벨트의 여행자들에게 동북공정 고발을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들 지식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왜곡 없는 역사 현장을 보고 가는 것 뿐 입니다.
한국을 몽골리안 루트의 종착점으로 부각시키려면
그만한 매력을 갖춘 관광시설이 필요합니다. 수년 전에 물류개선의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추진이 보류되었던 내륙운하 건설을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베네치아나 소주로 그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것은
역사적 유물보다는 수상도시라는 점 때문입니다.
한반도 내륙운하를 흘러가는 크루즈 관광이야말로 몽골리안 루트 관광의
대미를 장식하는 매력이 되어 관광객을 유치할 것으로 믿습니다.
대륙 철도망을 오가는 몽골리안 루트 관광열차에는 터번을 두른
이야기꾼들이 나타났다.
초청한 칸으로 가서 민담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신종 직업.
소재는 천일 야화의 고장답게 다양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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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생이 읽는 것보다 작가께서 쓰는 속도가 더 빠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