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학습, 5주만에 완성" 지방 학생은 서울로
"놀거리 없이 공부만 집중" 서울 학생은 지방으로
겨울철 학원가 '반짝 호황'지난해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등으로 주춤했던 학원가가 겨울방학을 맞아 '방학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 서울 강남의 일부 대형 학원에는 지방 학생들까지 대거 몰려와 이들 학원생이 묵고 있는 주변 하숙집까지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겨울철 학원가의 이 같은 '반짝 호황'은 새 학년을 맞아 성적을 올리려는 학생들과 이들을 유치하려는 학원들이 빚어 낸 합작품 성격이 짙다. 그러나 "집을 떠나 고액의 단기 집중 강좌를 듣는다고 해서 성적이 무조건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주에 300만원 넘게 드는 서울 유학
전북 전주에 사는 고1 학생 A양은 보름 전 홀로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 서초구 K학원에 개설된 '윈터 스쿨(winter school)' 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위해서였다. A양이 듣는 윈터 스쿨은 5주 동안 매일 8시간씩 국어·영어·수학·과학 수업을 듣는 종합반 과정이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밤 10시까지 학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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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8일 K학원 윈터스쿨‘예비 고2반’학생들이 물리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학급 학생 35명 중 16명은 지방에서 온‘유학생’이다./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이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A양이 내는 수강료는 135만원. 학원 바로 앞에 있는 하숙집인 학사(學舍)에 5주간 내는 120만원(빨래·청소비 포함)과 용돈 등을 합하면 5주 동안 지출해야 할 돈이 300만원을 훌쩍 넘긴다. A양 말고도 이 학원 '윈터 스쿨'의 수강생 중에는 유독 지방 학생들이 많다. 수강생 621명 중 서울 학생들은 251명(40.4%)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인천지역을 유학생 숫자에서 빼더라도 비수도권 유학생만 206명(33.2%)이나 된다. 경북(41명), 전북(32명)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고 제주도에서 온 학생도 9명이다.
이 학원 관계자는 "우리 학원의 신뢰도와 교육력이 지방 학생들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학생들은 "잘 가르치는 것 말고도 다른 요인이 있다"고 했다. 울산에서 올라와 누나 집에서 1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고1 성모(17)군은 "전국의 1~3등급 상위권 학생들끼리 모여 공부한다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지방 출신의 김모(18)양은 "1년 선행학습을 5주 만에 완성시켜 준다기에 왔다. 비싼 하숙비·학원비 때문에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경기·인천 기숙학원은 서울 학생들로 붐벼
지방 학생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현상과 달리 서울 외곽 지역 기숙학원들은 서울 학생들로 붐빈다. 방학을 맞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숙학원을 학생이나 부모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천시 강화군에 위치한 기숙학원 강화J학원은 이번 겨울 '윈터 캠프(winter camp)' 수강생 325명 중 77명(23.7%)이 서울 학생들이다. 전북에서 찾아온 학생들도 39명(12.0%)이나 되고, 학원이 소재한 인천 학생은 오히려 103명(31.7%)에 불과하다. 좋은 학원이 즐비한 서울 학생들이 특별히 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은 '놀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학원은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에게 mp3나 휴대용 게임기, 휴대전화 등 공부와 무관한 물건을 못 가져 오게 한다. 옷도 학원에서 만든 단체복을 입고 생활한다. 5주 과정 동안은 외출도 불가능하다. 이 학원에 아들을 보낸 한모(50·서울 성북구)씨는 "일종의 '스파르타식 교육'인데, 단기간에 성적 올리기에 알맞은 것 같아 아이를 보냈다"고 했다.
이 학원 L원장은 "현재 수도권에 우리 학원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메이저급' 기숙학원들이 15곳이나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방학 동안 집중적으로 학원 수업을 몰아 듣는 게 실제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메가스터디 강사 출신인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겨울방학 때 학원에서 1년치를 미리 앞서 공부하라는 것은 학생들의 불안감에 기댄 마케팅"이라면서 "모든 과목에 과도한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외국에선 집을 떠나 기숙사에 사는 게 사회화 교육의 일부인데, 우리나라에선 성적을 올리려는 개인적인 취지로만 이뤄져 인격 성장에 역효과가 생기기 쉽다"며 "점수 향상 역시 무리하게 집을 떠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