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이 꼭두각시를 향해서 법을 설하니, 설헐 것이 없고 들을 것이 없는 것이다.
송담 큰스님
부처님의 자비(慈悲)는 보통 사람들이 인정을 허고 인자하고 그러한 자비가 아니라 ‘대자비(大慈悲)’인데,「대자비(大慈悲)의 자(慈)는 무엇이냐 하며는 불견유불가성(不見有佛可成)이여」가히 이루어야 할 부처를 보지 않는 거여.
그것이 ‘대자大慈’라 하는 것이고「대비(大悲)는 불견중생가도(不見衆生可度)여, 가히 제도할 중생을 보지 못한 것이 대비여.」
이루어야 할 부처도 볼... 보지 못하... 보지 아니하고 제도해야 할 중생도 보지 않는 것이 그것이 대비다 그 말이거든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은 가히 설헐 바 없는 것이 부처님의 설법이고, 그 법문(法門)을 참으로 옳게 듣는 것은 가히 들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것이, 그렇게 들어야 그것이 참으로 부처님의 법을 옳게 듣는 것이다.
그래서 참 부처님은 입이 없기 때문에 법 설할 줄을 알지 못하고, 참으로 부처님의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은 귀가 없으니 누구를... 누가 있어서 그 들을 것이냐 그 말이여.
설 할 바 법이 없는 것이 참으로 올바른 법문이고 들을 것이 없는 것이 참으로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여. 그래서「부처님의 설법은 환사가,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그 환사(幻士)가 환인(幻人)에게 설법을 허는 거와 같다」그 말이여.
환인은 꼭두각시여.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이 꼭두각시를 향해서 법을 설하니, 설헐 것이 없고 들을 것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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