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뾰족구두를 벗은 초록여우 ●지은이_양효숙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0. 6. 30 ●전체페이지 192쪽 ●ISBN 979-11-86111-81-9 03810/46판(128×188)
●문의_044) 863-7652/010-5355-7565 ●값_ 15,000원 ●입고_2020. 6. 19
학교 안의 비정규직 초록여우, 뾰족구두를 벗다
양효숙 수필가의 첫 수필집 『뾰족구두를 벗은 초록여우』가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수필집은 작가가 학교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학교 안팎 세상 이야기를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
책 제목의 ‘뾰족구두’는 답답한 제도와 안일한 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신는 게 아니라 벗는 데 의미가 있다. 누군가 시켜서 벗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여 벗은 것이기에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초록여우’에 시선이 간다. 표제가 된 「초록여우」라는 작품에서 보여주듯이 학교 안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교육공무직만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비춰주면서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시대의 화두인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함께 사회적 처우 비판 나아가 여성 직장인의 애환과도 연결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별로 삶이 피폐해졌다. 책잡힐 일 많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미래 없는 오늘을 살기 바쁘다. 비정규직이어도 책을 만지고 읽으며 도서관에서 일하는 게 즐거웠는데 길 위에서 바라보니 다르다. 초록여우들 중 한 명으로 책 속 사막의 여우를 불러냈다. 길들여지지 않는 게 있고 길들여져서도 안 되는 뭔가가 꿈틀거렸다. 한 시간 전부터 가슴 두근거리던 만남이 점점 사라지고 삭막해져서 가슴속 사막이 넓어진다. 초록별 지구가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신호음마저 감지된다. …사막의 여우는 사막 사정에 밝은 전문가이고 학교도서관 전문가는 사서다. 사막 땡볕에서 온몸으로 견디는 여우 한 마리가 사막 너머를 응시하며 길게 소리를 뽑아내면 어디선가 다른 여우들이 구호를 따라 외친다. 폭우와 폭염 속에서도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초록여우」 중에서
책은 색깔 이미지로 33편의 작품을 담았다. 등단작인 「할매」가 제1부 ‘연둣빛 그리움’의 문을 연다. 죽음이 인연의 끝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기억하고 추억할 때 생생하게 반짝거린다는 걸 보여준다. 저자는 할매 사랑을 등단 작품으로 맺어주면서 세상 모든 할매들에게 드리는 선물처럼 그 의미를 확장 시킨다. 「항문이 가렵다」로 1부가 마무리되는데 배움에 대한 갈증이 담긴 ‘학문’과 ‘항문’을 동음이의어로 연결시켜 발랄한 웃음을 준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그린 「검은 오월」로 제2부 ‘빨강 열정의 순간’이 시작된다. 할매의 죽음과 또 다른 느낌의 죽음이 살아 있음의 이면처럼 파고든다. 태어난 고향과 죽음 너머의 고향이 맞물린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건너가는 「동선」으로 2부와 3부를 여닫는다. 드센 여자들마저 포용하는 또 다른 의미의 「센 여자」 이야기로 ‘보란 듯이 사는 나’의 3부가 시작된다. 점점 성장하며 나아가는 삶이 푸르고도 깊어진다.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움직인다는 사람의 심리를 「의미형 인간」으로 표현하며 ‘보란 듯이 사는 나’는 어떤 나일까에 대한 자아성찰과 호기심으로 책을 열어두며 마무리한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이 읽을거리다. 세상이라는 책은 소리글자이기도 하고 상형문자이기도 하면서 회의문자이기도 하다. 사람이 세상이고 세상이 곧 사람이다. 정작 사람을 읽지 못하는 오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는데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읽어준다는 것이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 중에서
작가는 학교 출근 첫날부터 지금까지 학교도서관 일기를 쓴다. 글 쓰는 것이 좋은 이유만은 아니다. 매일 출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불안해서다. 학교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서관일지보다는 도서관일기 쓰기를 권하며 자기 성찰과 통찰의 단계로 나아간다. 책의 생로병사를 사람처럼 챙기며 폐기도서 정리하는 사서에게 ‘책 장례지도사’라고 칭하는데 사물에 대한 은유와 대상에 대한 의인화가 불러들이는 경이로움은 선물과도 같다.
작가가 태어난 안개 두른 지리산과 눈 맞은 겨울 산수유 열매, 보라색 앵초꽃 사진이 각 부의 문을 열어주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들도 제각각의 표정과 몸짓으로 반짝여 재미를 더한다. 언어유희 또한 돋보이는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관계자도 출입금지’로 전환해 웃음을 터지게 하고 “나무가 나무라기도 하듯 쳐다보”는 묵직함을 주는가 하면 ‘북적Book적도서관’으로 이름을 지어 일상을 북적북적 꽃 피워 “리더(Reader)가 곧 리더(Leader)”가 되게 하니 결코 가볍지 않다.
마음 가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다 보면 어느새 삶의 어록이 생긴다. 우리는 삶을 견디고 위로받길 원하지만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여전하다. 스타카토처럼 명쾌한 단문으로 시적인 울림과 함께 철학적 사유가 묻어나는 이 수필집은 그래서 더욱 다정하게 다가온다.
■ 차례
작가의 말·05
제1부 연둣빛 그리움
할매·11
생각 구멍·17
집·22
늙은 장미·28
지리산 동창회·34
산수유·39
감·44
지리산 통학버스·49
아름다운 그늘·54
항문이 가렵다·59
제2부 빨강 열정의 순간
검은 오월·67
가방·72
북적Book적 도서관·77
꿈꾸는 조랑말·82
초록여우·87
길 위의 미루나무·92
자유부인·99
바둑과 글쓰기·104
세탁기 사망진단서·110
인연·116
그녀의 치아·121
사람을 읽는다는 것·127
동선·132
제3부 보란 듯이 사는 나
센 여자·139
쉰 살·144
숨 고르기 처방전·150
글 쓰는 나무·156
책 속으로 숨어들다·161
책 장례지도사·166
강남 눈썹·171
일품 결혼·176
학교도서관 일기·181
의미형 인간·186
■ 약평
웃기를 잘합니다. 큰소리로 웃을 때면 햇살을 가득 뿌려놓은 듯 얼굴이 한없이 밝아지죠. 울기도 잘합니다. 내밀한 자기를 열어 보이며 유리알 같은 눈물을 떨구곤 합니다. 타자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훔칠 적도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매우 감동합니다. 작은 가시에 찔려도 크게 앓곤 합니다. 포커페이스를 갖지 못해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기 일쑤입니다. 따뜻한 밥을 같이 먹길 좋아합니다. 고향에서 올라온 엄마표 농작물을 예제 퍼 나르곤 합니다.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길 즐기곤 하지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면 골똘히 심취해요.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아낍니다. 이 책을 펼친다는 건, 그러한 날것의 그녀를 만나는 일. 만남이 퍽 흥미롭길 바랍니다._마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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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숙
전남 구례 산동에서 태어나 남원과 서울 거쳐서 의정부에서 살고 있습니다. 2010년 『시에』로 등단하고 현재 동두천 생연중학교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한국문인협회 의정부지부장, 시에문학회와 한국학교사서협회에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