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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네 생명을 보존하라!”
+ 본 문 : 창세기 19장 1절 - 16절 (구약 22쪽)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아멘!
우리 한국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교회 안에 진짜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이름뿐인 교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교인들이 너무 많아,
건강한 교회가 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의 연륜도 많아지고,
따라서 교회의 분위기도 익숙하고, 교회 예배에도 잘 참여할 줄을 압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면, 신앙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죄 범하고 살아가는 지극히 세속적인 교인들이 되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 아브라함을 따라 다녔고, 제단도 쌓고 여호와의 이름도,
불렀지만,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으로서, 이해 관계를 따질 때 는 전혀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아브라함도 몰라라하고 이익을 챙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롯의 집에 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천사가 이제 롯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랬더니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우리에게 내놓으라. 우리가 성적 관계를 맺겠다.
소위 동성애의 죄악이 벌써 소돔, 고모라 성에 팽배하고 있었던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상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8절 말씀에 보면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손님들은 놔두어라.“
손님을 위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 딸들을 부도덕의 현장으로 내놓으려 했던 롯은,
지극히 세속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소돔, 고모라의 죄악을 더 두고 볼 수 없어 심판을 작정하십니다.
심판을 작정하시고 나서 하나님은 롯에게만은 기회를 주시고 싶어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롯아, 네 가족을 데리고 빨리 좀 도망가라. 네 생명을 보존하라.” 하십니다.
여기서 네 생명을 보존하라는 말은 육체적으로 생명을 보존하라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서 네가 좀 변해라, 새롭게 바꾸어져라, 새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 인생을 살아라.“ 하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오늘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수많은 롯의 후예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롯들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 하겠습니까?
소위 명목상의 교인들, 이름뿐인 교인들, 지극히 세속화 된 교인들,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이 땅의 교인들이 한 번 변화되어 정말 확신과,
감격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려면 무얼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그런 대답을 우리가 같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찾고 싶은 것입니다.
+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좀 진지하게 듣고, 반응했으면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느 때 가장 진지 할 수 있습니까? 죽음 앞에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 신앙을 가리켜서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하는데, 종말론적 신앙 그러면,
말세 노이로제에 걸려서 가정도 내팽개치고 산에 가서 주여 하고 소리 지르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종말론적 신앙이란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날마다 매 순간 순간을 종말을 맞이하는 엄숙한 심정으로 주님 앞에 반응하며,
오직 예수! 오직 믿음! -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종말론적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성도님이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하였는데,
다시 재검진을 받기 위해 입원을 하라고 해서 입원해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가족들이 병원 바깥에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 병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병이 수술해도 살 수 없는 말기 위암이요, 잘 살아야 6개월 밖에,
못산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언젠가 와야 할 죽음이,
좀 일찍 왔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꾼 돈도 생각나서 빚도 갚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생각나서 만나보기도 하고,
오해가 있었던 사람과는 만나서 오해도 풀고, 나름대로 재산도 정리하다보니,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갔는데도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 가족들이 그러지 말고 다른 병원에 가서도 진단 받아보라고 해서,
다른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 봤더니, 위암이 아니고 오진이었답니다.
그래서 옆에 사람들이 “돈도 많이 쓰고 그랬는데, 후회가 되지 않느냐?” 고 묻자,
후회를 않는다면서 “제가 돌이켜보면, 지나간 6개월처럼 진지하게 내 인생을,
살아 간 때가 없었습니다. 이 마음가짐 그대로 가지고, 나머지 제 인생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이처럼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 앞에서 진지해지고, 철이 듭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롯이 자기가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 자기 가족들에게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하셨다고 선포합니다.
+ 오늘 본문 12절 말씀부터 14절 말씀까지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아멘!
하나님의 심판, 구원, 십자가, 재림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씀을 선포하는데,
농담 수준으로 알아듣는 교인들이 많은데, 아직 변화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기가 설교하는데 교인들이 감동을 받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에게 텔레비전에도 가끔 나오는,
개그맨인 친구가 있는데, 자기 친구가 텔레비전에 나올 때 보면 늘 형편없는,
허튼 소리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자기 친구 개그맨을 만났을 때 ‘야 너는 밤낮 가짜 소리만 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감동을 받는데, 나는 진리만 얘기하는 데,
사람들이 왜 감동을 안 받냐?‘ 하고 물었더니, 개그맨 친구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너는 진짜를 꼭 가짜처럼 얘기하더라.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얘기하는데.” -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말의 진실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말씀을 깊이 상고하는 사람은 다 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 정도로, 신화 정도로, 우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한 오백년 다녀도, 예배를 많이 드려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면,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날은 반드시 옵니다.
내가 행한 모든 행동들, 나의 모든 일들에 관해서, 나의 모든 생각에 대해서,
내가 말들이 하나님 앞에서 결산되고 심판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가 진짜 믿는다면, 변화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한 반응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진지하게 들으면 반드시 변합니다.
+ 둘째로, 우리 인생이 정말 변하려면 주님의 강권하심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강권하십니다.
구원받으라고, 회개하라고 강권하십니다. 변화 받으라고 강권하십니다.
그런데 거의 그것을 호소하는 하나님의 방식이 아주아주 강권적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도 보면, 하나님 나라에 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각 핑계와 구실을 들어서 초청에 응하지 않자, 마지막에,
주인의 모습으로 비유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길로, 산울, 골목,
거리 나가서 아무나 좋으니 다 데려 오너라. 병든 사람도 좋으니 데려오너라.
가난한 사람도 좋다, 누구든 좋다,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런데 왜 하나님이 강권하십니까?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강권하십니다.
15절에 보면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밤새도록 강권했다는 말입니다.
저녁에 와서 밤새도록 집을 떠나지 않고, 심판이 온다고 이 성을 떠나라고,
이 도성을 떠나라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라고, 밤새도록 강권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16절, 17절에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천사가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강권해서 성밖에 두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인자를 더하신 사건, 곧 하나님의 강권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섬기는 교회에서 찬양사역자들을 불러 찬양집회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찬양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일 부럽습니다. 제게 찬양 은사가 없거든요.
그러나 저는 함께 찬양하는 것이 좋고, 찬양하다 보면 제게 큰 은혜가 됩니다.
제가 찬양을 잘 하는 은사가 없지만, 하나님의 강권하는 사랑이 찬양을 통해,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그래서 찬양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전도할 때, 강권하여 교회에 데려 오기를 원합니다.
그게 싫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렇게라도 해서 그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믿음이 들어가면 감사하다고 말하며, 나중에 천국에 가면 더 크게 사례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강권하여 전도하는 것이 사랑인 줄 모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강권합니다.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회개하라.” “변화 되라.”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심판이 임한다.“ 고 강권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선포되는 동안, 우리는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느끼면 은혜 받은 사람이요, 은혜 받은 사람이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 세 번째로, 우리가 정말 변화되려면 주님의 은혜에 지체없이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밤새도록 재촉한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손님들이 찾아와 “이 도시가 멸망하니 떠나시오.” 합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심판의 경고를 하며 빨리 떠나라고 밤새도록 재촉한 것입니다.
그러한 천사들의 강권에 못 이겨서 억지로 소돔 성을 떠난 바로 그 이튿날,
유황불이 쏟아지는 그 도시의 광경을 보았을 때, 롯이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혹 예배드리는 여러분 가운데 끌려 다니듯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다면,
주님이 부르셔서 나중에 천국에 가서 너무 너무 고맙다고 감사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안 돼’ 하고서 강권하는 복음전도를 stop했다면,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지옥의 영원한 불꽃 가운데서,
‘그때 왜 좀 더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count 하는,
마지막 심판이 있다고 왜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하고 원망하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두 천사의 강권에 사실 롯도 지체하면서 바로 응답하지를 않았습니다.(16절)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깊이 생각한 후 이성적인 결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결정을 늦추어서는 안 될,
결정이 꼭 하나 있는데 영적인 결정입니다. 회개할까 말까하는 회개의 결정,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 믿을까 말까하는 구원의 결정과 같은 영적인 일을,
결정하는 결단은 절대로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서두를수록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이 내일 일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보면, 회개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할 때 회개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감동할 때,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
움직임을 주실 때 “그래 맞아, 나도 죄를 버리고, 주님 앞에 나와 십자가 붙들고,
주님 믿고 제대로 살아야 해” 이런 마음의 결단을 하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면,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 할 수 없는,
때가 이르고 맙니다. 그래서 회개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목회하다 보면, 가끔 임종을 지켜 볼 때가 있는데, 임종 직전 찬송을 부릅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찬송을 부르면 찬송 소리가 들리는 지, 고개를 끄덕 끄덕거리다가,
숨을 거두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얼굴이 환하게 펴지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 분들의 임종을 하고나면, 그 가족은 물론 제 마음까지도 행복해집니다.
그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영혼의 아름다운 임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그렇게 전도하려고 해도 안 믿던 분의 임종에 가서 전도하면,
숨이 넘어가면서도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왜 왔느냐고 시끄럽다고 악을 쓰다가,
돌아가시면 가족은 물론, 저까지도 웬지 마음이 허전하고 정말로 서글퍼집니다.
회개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됩니다. 회개도 성령님이 역사할 때 해야 됩니다.
그래서 회개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은혜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거기 값이 필요 없습니다. 응답만 하면 됩니다.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 성령님이 뜨겁게 감동하실 때에 ‘주님! 맞아요, 나는 죄인이에요,
주님 나를 용서해 주세요.“ 하고 회개하면 구원받습니다. 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 값없이 주시는 회개의 은혜, 왜 못 받는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물론 우리는 값없이 받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내가 값없이 구원받고 용서받고 새로워지도록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나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고난과 피 묻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은혜 받고,
값없이 용서받고,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이 여러 분의 영혼을 불러 가신다면,
오늘 밤 이 나의 인생에서 이 땅에서의 마지 막 밤이라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 천국 갈 확신이 있습니까? 대답할 수 없는 분들 계시지 않습니까?
‘목사님,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도 이제 회개하고 정말 하나님 자녀 되어,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받은 자로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나도 내 인생 예수님처럼 부활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제대로 잘 믿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결단하실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