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설가 김애란이 『바깥은 여름』 이후 팔 년 만에 새 소설집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공간 속을 떠다니는 감정의 입자를 포착하고 그것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특유의 능력을 예리하게 발휘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홈 파티」와 2022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좋은 이웃」을 비롯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안녕이라 그랬어』는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과 딜레마적 물음으로 한 세계를 중층적으로 쌓아올리는 특장이 여전히 발휘되는 가운데, 이전보다 조금은 서늘하고 비정해진 김애란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희곡 속 사건은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홈 파티」, 42쪽)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이번 책에서는 인물들이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은 집주인의 미감과 여유를 짐작하게 하는 우아하고 안정적인 공간이거나(「홈 파티」), 값싼 물가와 저렴한 체류 비용 덕분에 한 달 여행이라는 “생애 처음으로 누리는 사치”를 가능하게 하는 해외의 단독주택이다(「숲속 작은 집」). 또는 정성스레 가꾸고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새 집주인을 위해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전셋집이거나(「좋은 이웃」), 회사를 관두고 그간 모은 돈을 전부 털어 문을 연 책방이기도 하다(「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이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삶 그 자체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방 한 칸’이 가지는 의미를 남다른 통찰력으로 묘사해온 바 있는 김애란에게 어떤 공간은 누군가의 경제적, 사회적 지표를 가늠하게 하는 장소이자 한 사람의 내력이 고스란히 담긴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장소이다. 때문에 이번 소설집에서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서로의 삶의 기준이 맞부딪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로 살아온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내 상황이 좀 여유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자연스레 넘어가지더라고 했다. 자기가 원하는 건 큰 성공이나 호사까진 아니어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왔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이물감/ 김애란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 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_ 142P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홈 파티 /김애란
ㅡ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 또 다른 의미가 있어.
ㅡ 어떤?
ㅡ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
_ 254P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인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시치미와 드러냄, 감춤과 판별의 눈빛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숲속 작은 집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팝송 허브 헌츠의 I'm young')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 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라는 말이 참 이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 였다.
p252 안녕이라 그
'무슨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 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하는지 깨달았다. p294
빗방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