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가비(蛤殼)
며칠 전에 광안리 ‘해인글방’을 찾았다.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님께서 조개껍질을 담은 바구니를 보이면서 하나 집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조개껍질에 성경 구절이 적인 ‘말씀사탕’이었다. 조가비 하나를 뽑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디로 보내시든지 그리로 가겠습니다.”(여호 1,16)
수녀님의 정성이 담긴 조그마한 선물에 그날 하루 즐거웠다. 상대에게 값비싼 고급선물이 아니라도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도 기쁨과 희망을 줌을 느꼈다. 선물은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배려하고 나눔에 있음을 배우고 일깨워 주었다. 그 작은 정성이 마음을 정화하고 고통을 치유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수녀님은 드물게 광안리 바닷가를 거닐면서 밀려오는 조가비를 주워와서 종이에 좋은 말씀을 적어 조개껍데기에 붙여 글방에 찾아오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가비 하나를 뽑아 그 구절을 읽었더니 나에게 딱 들어맞는 귀한 말씀으로 다가왔다. 그게 마음을 적시며 내려앉은 응어리를 녹여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가 보다. 그렇게 방문객이나 환우들이 돌아가서 수녀님께 감사하다는 편지가 서고 창고에 넘쳐나게 진열되어 있었다.
조용히 묵상에 잠긴다. ‘어디로 보내시든지 그리로 가겠습니다’ 언젠가 바오로 사도의 전도 여행길인 튀르키예(터키)와 그리스를 순례하고 다녀왔다. 수많은 먼 길을 걸어 다니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한 사도의 믿음을 배웠다. 복음 선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소명이기도 하다. 나도 교구장으로부터 ‘선교사 자격증’을 받았지만, 제대로 복음을 선포하는지 돌아볼 때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선택한 복음 전파의 길은 ‘문서 선교’이다. 글로써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께서는 시나 단상의 문서로 선교활동을 하며 또한 ‘말씀사탕’이나 조그마한 선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거리에 나가 외침의 선포가 아니라 마음의 울림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누구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리라. 보잘것없는 하찮은 것이라도 정성이 담긴 나눔이 상대에게 감동을 준다. 복음화도 먼저 자신이 말씀으로 충만(복음화)하여 상대에게 다가가거나 마음을 전하면 잔잔한 물결이 너울을 일으키듯 마음에 닿아서 큰 울림이 되어 변화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