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노를 내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노를 통나무배에 걸쳐 놓으며 곱슬머리가 물었다.
“그래 나를 부른 용건은 뭐냐?”
“없습니다. 혼자 헛소리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곱슬머리 남자가 도치씨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나, 아시발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바사람들이 아니야. 나는 물고기라면 못 잡는 것이 없는 이름난 어부거든. 게다가 나는 물고기 마음도 읽는 사람이야.”
통나무배의 곱슬머리남자는 어부였다.
“휴우.”
어부라는 말에 긴장은 풀렸지만 물고기의 마음까지 읽는다는 말은 지나친 가식이거나 허풍으로 들렸다. 그러나 도치씨는 내색하지 않았다.
간신히 36계로 위기를 모면했는데 또 어부의 비위를 거슬러 좋을 것이 없었다. 36계의 마무리를 해야 했다. 36계의 마무리는 상대에게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것이고, 그러려면 대화로 상대를 안심시켜야 했다.
“시바 최고의 선장님이시죠?”
“암!”
말 한마디에 당장 어부의 표정이 변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36계가 통했으므로 이젠 도치씨가 실익을 찾아야 할 때였다. 그 실익은 이미 도치씨의 머릿속에서 룰렛이 끝난 뒤였다.
사바에서 이름난 어부라면 분명 큰 어선의 선장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금 어부가 타고 있는 작은 통나무배는 그가 고기잡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모선까지 왕래하는 이동수단이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어선이라면 아무리 작아도 300톤급은 될 것이고, 9톤짜리 마린스타호는 비교도 안 된다.
잘하면 어부의 어선을 얻어 타고 망쳐버린 낚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운 좋으면 선비는 물론 어부들의 식사시간에 숟가락하나 꼽사리 끼우는 것은 일도 아니지. 도치씨는 약삭빠른 머리회전을 끝냈다.
멀어지면 그리움만 쌓이고, 가까이 있으면 깊어지는 것이 정뿐이라는 말처럼 도치씨는 어부의 코앞까지 상체를 바짝 내밀었다.
“어쩐지 보통 선장님들과는 달라보였어요. 우리나라의 산신령님이나 용왕님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도치씨는 어부를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만들어 놓고 은근히 물었다.
“주로 뭘 잡으시는데요?”
“으흐흐흐, 듣기는 좋구먼. 다 잡지, 허나 이 시발님은 블랙마린이 전문이라네. 블랙마린 들어보지도 못했지?”
도치씨는 바로 옆에 정박 중인 마린스타호의 엠블럼이미지, 헤엄치는 불루마린과 돛새치를 쳐다봤다.
어부가 말했다.
“저건 불루마린과 돛새치야. 블랙마린은 저 따위들과 비교가 안 돼!”
블랙마린의 크기가 상상되지 않아 눈알을 굴리는 도치씨에게 어부가 물었다.
“저 배 타러 왔지?”
“네. 어제 예약했는데 선장은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어부가 큰 소리로 웃었다.
“으하하하하!”
“왜 웃으십니까?”
“저런 배로 이런 날에 낚시할 생각했다니 안 웃고 배겨?”
“네에? 이런 날이라니요?”
“오늘 새벽에 해일경보 내린 거 몰라? 해일이 발생하면 저런 배는 어림없지. 그러니까 오늘 배들이 다 묶여 있는 거야.”
문득 도치씨는 가이드와 입씨름했던 통화내용을 더듬었다. 필리핀해일로 인해 마린스타호가 예약취소 됐다는 구절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가이드가 성의 없다고 화만 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을 깔아 뭉개버린 자신의 잘못에 미안했다. 허지만 아직도 계류장에 나타나지 않는 가이드는 여전히 괘씸했고, 가이드에 미련을 두고 기다리다 백수낚시꾼이 되기는 싫었다.
눈앞의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더 싫었다.
마침 큰 여객선이 출항하고 있었다.
작은 배들의 입출항은 금지됐어도 큰 배들은 해일과 무관한 듯 보였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넌지시 어부를 떠보았다.
“해일이 발생했는데 블랙마린 잡으러 가신단 말입니까?”
도치씨의 작업에 어부가 박차를 가했다.
“땅이 흔들리고 물이 요동칠 때 블랙마린이 잠에서 깨어난다네. 오늘 같은 이런 날에도 내 배는 안전하니까 바다로 나가는 거지.”
도치씨는 더 망설일 수 없었다. 복잡하게 선후좌우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때를 놓치면 기회란 언제나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어서 좀 더 깊숙한 속내를 슬쩍 들이밀었다.
가야를 못 만나게 된 경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간단하게 어부에게 설명했다.
도치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어부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왜 그러세요? 가글 드릴까요?”
낚시 갈 때 꼭 가지고 다니는 덴트가글을 꺼내 어부에게 내밀었다.
“고맙지만 나는 그런 거 사용 안 해.”
“입안이 상쾌하실텐데.”
“어쨌거나 한 목숨 건졌구나.”
“뭐가요?”
“오늘 같은 날, 저런 배로 나가면 백발백중 못 돌아 올 테니까 하는 말일세.”
“허지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불루마린낚시를 망쳤잖아요?”
“내일 아니면 모래 나가면 되잖아?”
깊은 한숨을 토하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도치씨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일은 또 다른 일이 벌어질 텐데 어찌 장담합니까? 아시발님은 매일 고기 잡으시니까 제 처지를 모르시는 것이 당연하지만요.”
어부가 도치씨의 작업에 완전히 걸려들었다. 도치씨는 그렇게 믿었다.
“내가 블랙마린을 잡게 해줄까?”
첫댓글 도치의 마법에 어부가 걸려들었다고나 할까요
부랙 마린을 잡게 해주겠다는
소망 때문에 도치의 마음은
한층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이번 한주도 건강한 한주
열어 가세요
네 멋진 한주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운이 넘치는 날만되시기 바랍니다.
낚시 소설 잘읽었슴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하고 멋진 한주 되세요
소설 잘보고갑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평안한 마감하시고 내일은 더 큰 행운의 날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