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수필 한편 올려 봅니다
아마도 삶이야기에 올렸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날이 싱그럽기에 올려봅니다
6월
6월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양쪽 푸르른 가로수 길이 가운데 길을 활짝 열어놓고 나를 기다린다.
한없이 여리고 고운 신록이 은은한 달빛, 출렁이는 별빛을 머금은 채
하늘의 푸름을 구름을 바람을 마시며 자랐다.
잘 자란 초록빛깔의 잎이 장하게도 두텁게 그늘을 펼쳐 놓았다.
꽃향이 흐르는 이 길은 어서 오라고 꽃들이 손짓하고
새들의 지저귐소리 시끌 법쩍하게 환영한다.
금빛 햇살을 받으며
나는 한걸음씩 6월의 숲으로 들어간다.
예전 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가는 5월이 안타까운 난 39살 오월도 갔으니 이제 늙었다고
눈물을 보인적이 있었다.
남편이 "내 색씨가 제2 의 사춘기를 겪는군" "이사람아 지금 세상이,
삶이 무엇인가를 알아져 숙성해지는 가장 좋은 나이야"
하며 돼지고기를 사주며 위로해 주었었다.
49살 때도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44년생이라고 답했다.
나이 몇살인가? 계산하다 그냥 4자가 들어가는구나 할 것이다.
59살때도
정말 60살 때도 왜 이 나이는 있는 것인지 모른다.
아직도 나이를 모르고 사는 미개인의 나라를 부러워했다.
79살이라고 그 심정 다르지는 않겠지만 위로해줄 남편도 없고
친구들끼리 서로 하소연하다 "어쩔꺼야 할 수 없지"로 끝을 낸다.
이제는 80살 5월도 지나가 6월이 되었다.
나는 들길을 걸으며 숲길 옆의 큰 돌을 본다.
수천 만년전부터 터 잡고 있었을 것 같은 크고 험상궂은 이 돌은
영혼이 하늘과 통해져 있어 주위 모든 것들을 지켜주는 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靈驗이 있는 이 바위는 주술을 외어 몇백년 된 벚꽃나무의
뚜꺼운 피부를 열게해 연분홍 꽃이 하늘 거린 것을 본적있다.
난 두팔을 벌려 이 시커먼 바위를 안아 본다.
종교가 없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 조상의 샤머니즘인 원시신앙이 나에게 유전인자로
소리없이 내 핏속에 지금도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키우고 나를 자라나 이 나이까지 살게 한 것은 변함없는
자연인 하늘이요 구름이요 초록빛깔의 바람이요 물인것을.
그래 이 바위도 늘 함이 없이 행하는 자연의 일부로
늘 오가는 나를 보고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을...
오늘 나에게 위로해 줄려고 오늘 눈에 띄였는가 모른다.
나이 들면 날긋날긋 해지는 육신이니 자연히 영혼으로
통하는 길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매끄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내 삶은 칙칙하고 어둡고 눅눅하고 응축되어간다.
세상과 점점 닫혀져 단절되는 내 삶을 위해 난 나름대로
최소한도의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 낭만, 아무리 외형이 초라해지고 내면의 내공이 부족할지라도
어느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한 노인이 되기위해 나름대로의
초치를 취해야할 것이다.
욕심 부릴 것은 없다.
적어도 10년 정도만 젊게 살면 된다는 것이 내 신조다
좀더 밝은 나의 모습이 필요해 화장을 하고 향수도 뿌린다.
아침 일찍 헬스장에 가 아주 간단하게 몸을 풀고 있다.
오전 일주일에 세번 피아노를 신청했다.
학교 후 기체조를 남하는 것 절반 정도만 하고 나온다.
휴일의 달콤함은 놀러 나가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즐긴다.
오래 사는 것은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의 선택이다.
아이들에게 쏟고 남는 나의 사랑은 경노당에
가엾고도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드려야 할 것 같다.
그것만이 지금 내가 살아갈 길인 것 같아서... 2023년 6.2일 아침
첫댓글
걸어온 길 돌아보면
파랗게 풀잎 돋고 꽃은 피어도
마음만은
노랗게 사무치지요
멀고도 낯선길
연두 어린 가지에 햇살 돋아
푸른 숲 되듯
영원히 지지 않을
장미 한송이
품어 안고 가소서 ~
늘
자작글방을 보듬어 안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낭만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