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0일(월)
* 시작 기도
주님...
부활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하건만 여전히 나의 옛 사람을 선호하는 나를 봅니다.
이런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사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그 모질고 험한 십자가를 지셨는데 나는 여전히 그 십자가를 타고 다니면서 나의 구습을 즐기는 자로 살려 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님 앞에서 완전히 죽게 하소서.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긍휼을 베푸사 불쌍히 여기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이 하루도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 아래 머물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하 1:1-16
제목 : 형제를 수도 없이 죽인 나를 주님은 당신의 피로 덮으셨습니다.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 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하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 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 나의 묵상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은 후에 다윗은 시글락에 있는 진지를 탈취한 아말렉 사람들을 도륙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사울의 진영에서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한 사람이 나왔는데 그가 다윗 앞에 와서 엎드려 절하였다.
다윗이 어디서 온 자인지 묻자 그는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도망하여 나온 자라고 하였다.
다윗은 그곳의 상황이 궁금하여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에 군사들이 도망도 하고 죽은 자고 많았으며 사울 왕과 요나단도 죽었다고 하였다.
이에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는데 자기 창에 기대고 있는 사울을 보았다.
그가 나를 보고 불러서 그에게 갔는데 자기의 목숨이 아직 온전히 붙어 있는데 너무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기에 그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를 죽여서 그의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가지고 당신께 왔노라고 말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다윗은 슬퍼하며 자기 옷을 찢었고 그와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였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으로 인하여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였다.
다윗은 사울의 소식을 전한 그 청년에게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 죽이는 것을 어찌 두려워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다윗에게 속한 청년 한 사람을 불러서 그 아말렉 청년을 죽이라고 하자 그를 죽였다.
다윗은 그렇게 죽은 아말렉 청년에게 말하기를 너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네 스스로가 내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생명의 위협자인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런 기회를 던져버렸던 자였다.
주변의 사람들이 볼 때에는 바보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을 때 사울이라는 그 카드를 버리셨다.
그리고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을 그를 대신하여 왕으로 세우는 기름을 부은 것이다.
이럴 정도로 다윗은 사울을 아꼈건만 이 아말렉 청년은 다윗이 사울을 싫어할 거라 생각하고 그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여 그를 단번에 죽인 것이다.
사실은 이 아말렉 청년이 사울을 죽인 것도 아니다.
사울은 부상을 입었을 때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죽여 달라고 하였지만 그는 두려워서 왕을 죽이지 못하자 왕 스스로 자기의 칼을 세워놓고 거기에 엎드러져 죽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지켜봤던 이 아말렉 청년이 다윗 앞에서 다윗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여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의 거짓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다윗에게서 받은 것은 상(賞)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거짓말 하나가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맞는 다윗을 택해서 기름을 부으시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신실하게 인도하신다.
그 인도하심은 곧 그가 기름부음을 받은 때로부터 그가 왕이 되기까지이다(삼상 6:14-삼하 5:12).
모든 구약성경은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 목적은 그를 믿어 영생을 얻는데 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다윗의 등극사화는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다.
그 직접적인 예표는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기를 구하였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의 집을 지으시겠다고 하신 ‘나단신탁’에 잘 드러난다.
(삼하 7:11b-13)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네 몸에서 날 네 씨와 그의 나라는 다윗의 씨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를 통해서 세우는 영원한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복음 그 자체이다.
(롬 1:3)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헬, 씨)에서 나셨고
이제 우리에게 복음은 죽으시고 장사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심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바로 형제를 날마다 죽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나는 생각으로도 말로도 얼마나 많은 형제를 죽였는지 모른다.
주님은 살인의 정의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5:21-23)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한 자는 육신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만 아니라 그 범위를 넓혀 형제에게 분을 품고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것 그리고 인격을 모독하는 저주의 말을 퍼붓는 자를 가리킨다.
그렇게 성경은 분을 낼지라도 해를 넘기지 말고 화해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형제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분을 품고 화를 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다.
얼마든지 한 번만 더 생각했으면 그렇게 형제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낸 것은 나야말로 심판받아 죽어야 할 마땅한 자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런 나,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대신하여 나의 주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죄가 되셔서 십자가를 오르셨다.
그리고 나의 생각으로 지었던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가시면류관을 쓰셨다.
머리는 온통 피로 물드신다.
가시에 찔리면서 오는 그 두통은 내가 져야할 몫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지셨다.
지금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면목이 없어서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다.
욥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
죄인 된 자로 서 있지만 우리 주님이 나를 세우신다.
그 은혜를 받아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의 죄를 다 품으셨고 또한 다시 살아나심으로 나를 의롭다 하신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임을 고백할 뿐이다.
유다 족속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베섹에서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과 싸울 때 아도니 베섹을 만나 싸우고 그들을 죽일 때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였다.
유다 족속이 그를 잡아서 그의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랐따.
이에 그는 예전에 자기가 행한 대로 갚음을 당한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원수요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의 고백은 나의 자존심을 세우는 고백이 아니라 나의 죄인 됨과 가치없음을 고백하면서 오직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덮으심의 은혜 앞에서 감사로 오열을 할 뿐이다.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받는 그 사랑 앞에 나를 드린다.
아무런 가치 없는 자를 하나님께 드린다 한들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겠냐마는 그 복음의 은혜요 사랑 앞에서 죄사함을 믿으며 나아갈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형제를 죽이고 또 죽이는 죄인 중에 괴수였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바로 아도니 베섹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는 하나님의 철천지원수인 나는 오늘도 주님의 덮으심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나의 모든 죄를 주님께 전가시키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죄인데 그런 나를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피로 덮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나는 오늘도 살아감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예수를 힘입어 담대하게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오니 이런 나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