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
이혜미
너는 끝이라 말했고
나는 겨울이라 믿었던 것
달의 파편을 머금으면
풀려나오던 찬바람에
눈보라는 다문 입의 우주를 공전하지
입술과 은하의 거리를 가늠해 봤어
함께의 어둠으로 잠겨들고 싶어서
이미 알아챈 향을 옮겨주며
미약한 파동으로 엮이고 싶어서
한쪽 얼굴이 지워진 달을
추방당한 순례자라고 부를 때
혀끝에서 구르던 은빛
오해는 사랑의 일종이야
그러니 기꺼이 몸을 기울여 중심을 잃고
홀로를 견디며 침묵을 돌보았지
머리가 창백하게 물들 때까지
수은의 늪으로
늪으로
차갑고 달콤해
동사하는 사람의 황홀함처럼
박하를 입에 물고
풀려나오는 달의 궤적을 더듬으면
추위와 고독이 구분되지 않았다
겨울을 세계의 끝이라고 믿는 너에게
그믐을 기대놓으며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이라면
다가올 목련의 흰 입술에게로 떠나야겠지
쓰러지는 나무가 그늘에게 몸을 맡기듯
다정한 거짓말을 조금씩 아껴 먹으며
얼어붙었지 빛의 나이테 속에서
너는 투명이라 말했지만
나는 건네받은 숨이라 불렀던
이것이 우리의 박하였나?
환하게 휘몰아치는
겨울의 맛
이혜미
200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시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 『흉터 쿠키』, 산문집 『식탁 위의 고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