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7시 반쯤 되면 몇 명의 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딱히 정해 놓은 당번이나 의무는 없는데 매주 몇 명의 고정 멤버가 자발적으로 나와서 약 8, 90명분의 점심을 준비한다.
ㄱ인들이 그리 많아서가 아니라 주일학교를 마치고도 남아 계속 어른 ㅇ배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2, 30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 녀석들은 신앙이 깊은 것 같지는 않은데 어른들 ㅇ배에 참석하면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밖에서 놀다가 그 시간에 들어와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으나
실로암 생활로 이제 양심이 조금은 작동하는 모양이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을 가만히 보니 분업화가 잘 되어 있다.
어떤 집사님은 코코넛을 갈기만 하고, 어떤 집사님은 온갖 야채를 씻고 다듬고 양념을 하고 후라이판에 볶거나 삶고,
또 다른 집사님은 혼자 대형 솥에서 음식을 휘저으며 일하고 어떤 분은...
우리가 먹는 점심 식사가 대부분 베지 식단이라 거기에 들어가는 야채, 콩 종류가 많다.
그리고 어떤 음식을 하건 매번 토마토 7, 80개, 양파도 7, 80개 정도가 들어간다.
음식을 먹을 때는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 많은 토마토와 양파가 들어간다는 게 놀랍다.
그런데 3명이 그 두 가지만 칼로 써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데 수고한다고 매 주일 아침에 인사차 나가는 내가 봐도 이들의 칼질이 참 어설프고 느리다.
이들의 음식이 짜파티/로티 또 카레 종류가 주 음식이고 또 집의 식단에는 양파나 토마토가 기껏 몇 개가 들어가기는 하는데
칼질이 적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도 느릿느릿이다.
마치 예전 국민학교 때 보던 3, 4학년 동년배 여자아이들의 칼질 같다.
방금 벌판에서 따온 봄나물을 양은 그릇인지 양푼이인지를 뒤집어 놓은 데 올려놓고는 마당 한쪽에 엉거주춤 앉아서
나물 캐느라 이가 다 나간 작은 칼로 한 줄기씩 칼로 밀며 잘라내는 그런 느리고 어설픈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안타까운지 집에서 칼을 가져와서는 토마토, 양파를 써는 팀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사모님은 이런 일을 안 해도 된다고 만류하던 이들이, 또 사모님이 무슨 칼질을 하겠냐는 눈빛으로 보던 이들이
아내의 칼질을 보고는 눈이 커진다.
놀래서 입을 벌리며 ‘어머머! 어머머’를 연발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보고 있다.
자기들끼리 웃더니 또 쳐다본다.
그렇게 칼을 쓰는 사람을 못 본 모양이다.
보통 여자들이 모두 다 그렇게 칼질을 하는 줄 알고 집에서는 칭찬 한마디 안 했는데 그게 여기서는 놀랄 일이 되어버렸다.
예전 한국에서 김장할 때 무채를 한 다라이(?)씩 썰던 실력이라는데
오랜 타지 생활로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 실력이 다시 나온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 학교 선생들과 같이 칼질을 했을 때 아내의 칼질을 본 교감의 한 마디는 ‘어디 가서 칼질만 해도 먹고 살겠다‘
보통 한국 아줌마들의 칼솜씨 같은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구경거리가 되고 칭찬거리가 된다.
드디어 아내의 칼 솜씨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대환영에 칭찬이다.
때론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그런데 같이 칼질하던 분들이 아내의 칼질을 보고는 다른 일을 한다.
3명이서 한 시간 이상 걸리던 일을 아내 혼자서 한 시간 만에 해내기 때문이다.
아예 토마토, 양파 써는 것은 거의 아내의 몫이 되어버렸다.
한국 ㄱ회의 소박한 주일 점심이 항시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도 아내가 토마토와 양파를 잘라서 그런지
우리 실로암표 베지 음식도 너무 맛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춘다고 했던가... 이들이 칭찬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아내는 이제 그 일에 붙잡혀 버렸다.
얼떨결에 한 번 발을 담갔다가 수년간 거기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손을 씻지도 못한다.
아니, 아예 고정 멤버가 되어 버렸다, 칼잡이로...
그뿐만 아니라 이제 아내는 그분들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칼잡이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영화 가문의 영광도 아닌데... 나는 칼잡이와 같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