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에서.
올해 여든이 막 넘으신 허 집사님은 폐암을 앓고 계시고 그것이 신체의 여러 곳으로 전이된 상태로 현재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신다.
어제는 허 집사님께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남기시는 유언을 들으며 증인으로 서명하기 위하여 다녀왔다. 집사님의 오래된 친구분도 오셨고 아내와 외동딸, 그리고 미 군목으로 수고하다가 전역 후 미국에서 목회 중인 장남도 귀국해서 모두 병동 한자리에 모였다. 친구분은 친구이신 허집사님의 목을 부둥켜안고 슬피 우셨다.
‘아이고 친구야, 니하고 내하고 우짜다가 이렇게 만나노’ 하시며.
유언장을 읽어내려가시다가 힘이 없어서 아들이 대신 읽도록 허락하셨다. 당신의 사후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시는 내용이었고 가족들은 그렇게 하리라 말씀드리며 약속하였고 친구분과 나는 증인으로서 그곳에다 서명을 하였다. 그리고 한 시간여 집사님과 손을 마주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실존하는 천국의 소망으로 위로를 드렸고 집사님께선 힘을 내셔서 흔쾌히 아멘으로 화답하셨다. 참 복되고 은혜로운 자리였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셔서 일반 병동으로 나오시고 다시 퇴원하셔서 농장으로 돌아오셔서 함께 농사를 짓자고도 말씀드렸고 슬퍼하지 마시고 힘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강하고 담대히 지내시라고 권면하여 드렸고 집사님께서도 꼭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140년 가까이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이곳 대구동산기독병원(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전신) 사택지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고 일했고 지금도 이곳을 지나다니고 있다. 수많은 의료진들을 만났고 이곳을 스쳐 지나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많은 크리스천 의료진들이 고백했다. 사실 이곳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단히 한정되었다고, 결국 생명은 그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실로 그러했다. 금방 죽는다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일어나 걸어나갔고 괜찮을 것이라던 환자가 하루아침에 생을 마감하는 것도 보았다.
인간의 생명의 주인이신,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아뢰었다. 허 집사님의 연약한 영과 혼과 육을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라고.
죽어 장사지낸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께서 그를 소성케 하여 주옵소서라고도.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일으켜 주의 군대로 삼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야윈 집사님의 몸을 강건케 하시기를 간구 드렸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벌떡 일어나 서서 걸으며 뛰어 소리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그리고 열두 해 혈루병에 걸렸던 던 여자가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 깨끗함을 입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뵙기를 약속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어찌 그리 봄 내음이 찬란하던지.
어릴적 내가 온종일 뛰놀던 병원 사택지에 핀 벚꽃이 어찌 그리도 황홀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