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 김강호
당신 생각 지평선만큼 끝 모르게 길어서 수시로 둘둘 말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남몰래 숨을 죽이며 보석이듯 꺼내봤다
당신 생각 아파서 깊은 상처 동여맬 때 작설차는 연둣빛 울음소리로 끓고 있고 뒷산 숲 오솔길 쯤엔 싸라기별 쏟아졌다
당신 생각 끊임없이 잔물결로 밀려와 갯돌 같은 이야기를 자그르르 쏟으면 내 귀는 자루가 되어 넘치도록 받았다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슬픔 깊은 이별 강 목을 늘인 새가 되어 강물이 붉어지도록 피 토하며 울었다
ㅡ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 (다인숲, 2024.06) -------------------------
*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무주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귀가 부끄러운 날』 『팽목항 편지』 『참, 좋은 대통령』 『군함도』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 등 가사시집 『무주구천동 33경』. 서울문화재단,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초생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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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오랜만에 김강호 시인의 작품을 통해 연애시의 서정을 읽어본다. 언제부턴가 연시가 지상에서 보기 드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된 이별이지만 그 이별의 여리디여린 심상이 실핏줄마저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섬세한 노래가 되어 흘러내린다. 이 시는 4수의 울림으로 직조된 연시조이다.
첫수부터 시는 마음의 전경을 그림처럼 펼쳐놓는다. 특히 전체 시가 공감각적 이미지로 치환되면서 더욱 화자의 심상을 공유하게 되면서 시 읽기의 설레임에 다가가게 된다. 끊기지 않는 율격은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듯 부드럽게 연결 짓는 특장도 이 시의 도드라지는 미덕이다. 당신 생각으로 시작이 되고 끝을 맺는 이 시는 김소월, 한용운, 박재삼의 당신을 떠올리게 하며 무구한 순진성과 그리움에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나와 세상의 간극에 심리적인 거리가 멀고도 아득한 세태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세대와의 거리, 성별과의 거리, 자본의 권력이 만든 수직적 계층의 거리처럼 그 모든 이질성이나 위화감은 인간을 더욱 물화시키고 그 희생으로 우리는 내면적 바람이나 인간 중심에서 벗으나 원하지 않는 기다림과 고독의 시절을 견디며 살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 살아있고 예술이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한, 희망을 안고 우리는 기다리고 그리워할 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중첩된 두 가지의 개념을 두고 읽어낼 수 있다. 지고한 사랑에의 갈증과 현대를 살아내려는 각 개인 목마른 휴머니즘의 따뜻한 회복을 위한 노래, 오래된 벗을 만나듯 반가운 서정시 한 편을 감상한다.
- 문희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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