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사본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화랑세기와 약 90%정도 일치한다고 확신한다. 필사본 화랑세기는 목판본 삼국사기보다도 진본이라는 증거가 확실하다. 반면 박창화의 위작설은 현재로서는 진본설에 반박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진본이라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진위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필사본 화랑세기를 검토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사본 화랑세기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일단 10%는 20세기 박창화가 필사중 오류, 고의적 조작이기때문에 제외하고, 90%의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보도록한다. 과연 화랑세기는 그 내용을 다 믿을만한가.
화랑세기를 정식으로 사서의 반열에 올려놓은다면 삼국유사처럼 야사는 아니다. 삼국사기와 같은 정사이다. 삼국사기는 우리역사 최고의 사서라지만 여러가지 오류에 중국사서를 배낀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여러 부분을 검토해보고 나서야 사서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화랑세기도 그런 것이다. 아니 더욱 심하다고 할 수있다.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대문의 가문은 화랑 최고의 명문가문이다. 화랑도가 신라의 공식 조직은 아니지만 신라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 명문가문들도 골품을 가진사람 못지않게 명예를 갖고 있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와 명예를 갖고있다 하더라도 흠이 있기 마련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자서전을 썼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쓸 것인가. 이 글을 보는 사람들과 나도 부끄럽고 비굴하고 그런 내용들은 감추려 할 것이다. 그리고 들키지 않으려고 여러 부분은 조작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자서전은 화랑세기다. 당시 신라는 화랑을 폐지했고, 김대문과 같은 화랑세력들은 더이상 명예를 얻을 수 없었다. 김대문은 화랑 최고의 명문가문의 후손으로 폐지된 화랑세력들을 대표할수 있다. 화랑세기를 김대문의 자서전으로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그 자서전이 다 잘못됬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장과정등 조작과는 상관없는 내용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화랑세기로보면 당시 사회풍토나 화랑의 기원, 화랑의 성격, 화랑의 발전과정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화랑세기가 사서로 자리잡으려면 진위여부를 떠나서 면밀히 검토하여 김대문에 의해 조작됬을 만한 부분, 박창화의 필사오류, 필사중 고의 조작 등을 알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사에 "안타깝게도 김대문의 화랑세기, 고승전 등은 소실됬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발췌본 화랑세기는 1989년에 이미 발견됬고, 1995년에 이종욱교수가 필사본 화랑세기를 공개했다. 1999년에는 이종욱교수가 발췌본, 필사본 화랑세기를 역주해 해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있다. 또한 화랑세기 관련 연구집이나 단행본, 그리고 화랑세기를 참고한 소설까지도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화랑세기는 없다고 쓴다는 것은 잘못됬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나는 고등학교 국사를 "필사본 화랑세기가 이미 발견되었으나 현재 진위논쟁중에 있다."라고 했으면 한다.
저는 위작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자신만만한 주장인 것 같네요.^^ 진위라는 주장에는 많은 맹점이 있지요...도서관에서 그대로 펼쳐놓고 필사했을텐데....일제가 쓰기시작한 근대식 용어가 마구 등장할까요? 그게 과연 고의일까요? 그가 남긴 유작들과 비교해 볼깨 과연 진짜일까요? 전 위작이라고 봅니다.
김대문에 세운 불국사, 그리고 화랑세기가 화랑의 업적을 기록했을터인데 삼국통일이라는 가장 큰 공훈은 보이지 않는 건 무엇일까요?? 이상하지 않나요?? 화랑의 업적중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몰아낸 것이야말로 최고중의 최고의 전공인데 왜 안나올까요?? 그게 진정 화랑세기일까요?
그리고 원래 위작이라는게 남아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엮어내는 것이지요..그래서 그속에 진실도 있는 법입니다. 저도 박창화 필사 화랑세기가 어느정도 사실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사료는 아니라 보고 있습니다...환단고기나 규원사화가 그러한 사항에 포함되는 것도 다 이런 연유입니다.
삼국통일이나 당나라 몰아낸것이 왜 화랑의 업적인가요? 삼국통일에 기여한 화랑은 김유신, 김춘추, 관창 등 그정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디 화랑이 삼국통일에 큰 공훈을 했다고 나오나요? 통설을 집약한 중고등학교 국사가 대표적이겠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봐도 화랑이 한 일 별로 없습니다.
클리쉐님께서 주장하신 화랑의 업적이 모두 화랑의 업적이라 하더라도 화랑의 업적이 안나온다고 화랑세기가 위작인가요? 나올수도 있고 안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근대식 용어가 등장했다고 하여 위작으로 몰고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근대식 용어가 등장하는가에 대해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위작은 조작이 가능하지요...그래서 그속에서 작더라도 위작 부분믈 가려내는 것입니다. 환단고기가 왜 위작으로 판명났는지도 모르시나요? 환단고기도 진실을 담고 있으나 그시대에 쓰지도 않았을 용어가 나오고 다소 과장된 국수주의적 기록이 나오기때문입니다...화랑세기도 마찬가지 부류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진본이라는 증거라??? 어디에 넘쳐나지요? 신라허풍주의자 이종욱교수만 하더라도 화랑세기의 일부내용에 관해서는 진실이 아닐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의 어느부분은 진실일거다, 어느부분은 거짓일거다 라고 구분짓는 것부터 위작이 의심되는 부분이죠. 이종욱교수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맹신은 안좋습니다
저도 맹신은 안좋다고 판단하여 이 글을 쓰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환단고기 등과 같은 것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화랑세기에 기존에 알지못했던 말이 쓰인다고 위작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때 그런 말을 썼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요. 물론 20세기에 생겨난 말은 빼고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찍이 향음鄕音으로 화랑 세보世譜를 저술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불초 자식이 공무의 여가에 낭정郎政의 큰 일大者과 파맥派脈의 정사正邪를 모아 아버지의 계고稽古의 뜻을 이었다. 혹 선사仙史에 하나라도 보탬이 있을까?" 화랑세기 발문입니다.
남당이 지어낸것이라면 소수림대제기등을 비롯한 거의 백권에 달하는 그가 남긴 책은 대체 누가 아이디어 냈고 누가 썼을지... 결국에 화랑세기를 포함한 남당의 책은 모두 어디선가 보고나서 옮겨 적은 필사본일 겁니다. 그렇기에 완벽히 사서라 불릴만한 것은 아니어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보입니다만.
첫댓글 전적으로 동감
저는 위작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자신만만한 주장인 것 같네요.^^ 진위라는 주장에는 많은 맹점이 있지요...도서관에서 그대로 펼쳐놓고 필사했을텐데....일제가 쓰기시작한 근대식 용어가 마구 등장할까요? 그게 과연 고의일까요? 그가 남긴 유작들과 비교해 볼깨 과연 진짜일까요? 전 위작이라고 봅니다.
김대문에 세운 불국사, 그리고 화랑세기가 화랑의 업적을 기록했을터인데 삼국통일이라는 가장 큰 공훈은 보이지 않는 건 무엇일까요?? 이상하지 않나요?? 화랑의 업적중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몰아낸 것이야말로 최고중의 최고의 전공인데 왜 안나올까요?? 그게 진정 화랑세기일까요?
그리고 원래 위작이라는게 남아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엮어내는 것이지요..그래서 그속에 진실도 있는 법입니다. 저도 박창화 필사 화랑세기가 어느정도 사실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사료는 아니라 보고 있습니다...환단고기나 규원사화가 그러한 사항에 포함되는 것도 다 이런 연유입니다.
삼국통일이나 당나라 몰아낸것이 왜 화랑의 업적인가요? 삼국통일에 기여한 화랑은 김유신, 김춘추, 관창 등 그정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디 화랑이 삼국통일에 큰 공훈을 했다고 나오나요? 통설을 집약한 중고등학교 국사가 대표적이겠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봐도 화랑이 한 일 별로 없습니다.
클리쉐님께서 주장하신 화랑의 업적이 모두 화랑의 업적이라 하더라도 화랑의 업적이 안나온다고 화랑세기가 위작인가요? 나올수도 있고 안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근대식 용어가 등장했다고 하여 위작으로 몰고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근대식 용어가 등장하는가에 대해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이랬을 것이다.. 라는 추측일 뿐이죠. 그것이 위작의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화랑세기가 진본이라는 증거들만 넘쳐나고 있을뿐입니다.
위작은 조작이 가능하지요...그래서 그속에서 작더라도 위작 부분믈 가려내는 것입니다. 환단고기가 왜 위작으로 판명났는지도 모르시나요? 환단고기도 진실을 담고 있으나 그시대에 쓰지도 않았을 용어가 나오고 다소 과장된 국수주의적 기록이 나오기때문입니다...화랑세기도 마찬가지 부류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진본이라는 증거라??? 어디에 넘쳐나지요? 신라허풍주의자 이종욱교수만 하더라도 화랑세기의 일부내용에 관해서는 진실이 아닐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의 어느부분은 진실일거다, 어느부분은 거짓일거다 라고 구분짓는 것부터 위작이 의심되는 부분이죠. 이종욱교수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맹신은 안좋습니다
저도 맹신은 안좋다고 판단하여 이 글을 쓰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환단고기 등과 같은 것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화랑세기에 기존에 알지못했던 말이 쓰인다고 위작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때 그런 말을 썼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요. 물론 20세기에 생겨난 말은 빼고요.
고려 때 씌여진 삼국유사의 오기가 화랑세기에 그대로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해석이 분명치 않은 부분 등은 여러 사료를 짜집기에서 적어넣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요.
박창화가 지어낸 것이라면... 그 사람은 참 대단합니다. 박창화가 남긴 책이 도대체 몇권이죠?
100%지어냈다면 그 사람은 천재겠지요. 그런데 김법민님 상상력이 풍부하신 분 같군요. 100%조작가능성도 염두해 두시다니.
클리쉐님,근대용어부분은 오해가 있은신듯...그리고 화랑세기의 저술목적은 그들의 업적이 아닌 김대문가문의 현창이라고 보는게 옳지 안을까요..또한 이종욱교수에 대해 신라허풍주의자라고 칭함은 듣기가 거북하군요.
근데 클리쉐님, 불국사는 김대성이오~^^ 잠깐 착각이 있으신 듯...^^
위작이라고 쉽게 말할 수만은 없을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미실이 가야정벌을 떠나는 사다함을 위해 지었던 '풍랑가'나 사다함이 전후 돌아와서 이미 세종의 부인이 된 미실을 그리며 지었던' 파랑새'같은 향가를 박창화선생이 지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향가를 제대로 해독하지도 못하던 상황이었는데 박창화 선생 홀로 향가를 완벽히 해독하고 지을수도 있었다면 기적에 가까운것 같습니다. 또 '포석사'나 '구지'등의 글도 화랑세기가 진본임을 말해주는 증거들 아닐까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찍이 향음鄕音으로 화랑 세보世譜를 저술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불초 자식이 공무의 여가에 낭정郎政의 큰 일大者과 파맥派脈의 정사正邪를 모아 아버지의 계고稽古의 뜻을 이었다. 혹 선사仙史에 하나라도 보탬이 있을까?" 화랑세기 발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서술 목적은 화랑의 세보.. 그러니깐 풍월주의 세보 정리에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화랑들이 뭘 했건 그건 풍월주의 세보 정리완 별개의 문제지요.
남당이 지어낸것이라면 소수림대제기등을 비롯한 거의 백권에 달하는 그가 남긴 책은 대체 누가 아이디어 냈고 누가 썼을지... 결국에 화랑세기를 포함한 남당의 책은 모두 어디선가 보고나서 옮겨 적은 필사본일 겁니다. 그렇기에 완벽히 사서라 불릴만한 것은 아니어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보입니다만.
화랑세기는 김유신 삼국통일의 업적을 '사책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생략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