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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알탕을 아시나요~ |
50년 동안 서민의 입맛을 돋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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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와 심각한 경제난으로 지갑 열기가 쉽지 않다. 이즈음 추억의 먹거리 하나가 스멀스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때 그 시절의 맛.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내기에 충분했던 더 없이 귀하고 정겨운 맛.
혀끝에서 감도는 50년 전통의 칼칼한 맛이 현대시장 닭알탕 거리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달동네 수도국산박물관 아래, 현대시장 길 건너에는 오래된 주점들이 사이좋게 나이를 먹고 있다.
오래된 듯 낡은 주점들은 붉은 간판에 여닫이문으로 추억을 담아내고 있다.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속사정을 챙겨주고 영양까지 담아내는 양은냄비의 푸짐한 먹거리는 인심도 좋다.
문지방 낮은 이곳,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수시로 주점 문이 열리고 닫힌다.
현대제철과 인근 철공소에 다니던 노무자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하면서 뿌리를 내린 닭알탕 거리.
이곳이 닭알탕으로 유명해진지는 50년이 되었다.
현대시장 닭집의 바가지에 담긴 닭의 알과 알집은 저렴하지만 좀처럼 일반 가정에서 사가질 않았다.
팔리지 않는 덕분에 가격이 저렴했다. 그 식재료를 식당에서 구입해 찌개를 끓였다.
제법 얼큰하고 맛이 담백해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포장마차에서 처음으로 닭알탕을 만들어 팔기시작한 집은 공락주점.
이곳을 시작으로 형제주점을 비롯해 창석, 왔다, 풍차, 현대주점 등 6곳이 운영되고 있다.
처음 시작한 주점의 주인들은 모두 바뀌고 새로운 주인들이 20~30년, 닭알탕을 끓이며 추억의 맛을 찾는 고객들을 맞고 있다.
탕 속으로 들어가 추억으로 익을 노랗고 동글동글한 닭알이 황금알처럼 빛난다.
말캉말캉 노랗게 물든 닭알과 야들야들 쫄깃쫄깃 닭알집들이 갖은 야채와 함께 양은 전골냄비에서 칼칼하게 끊는다.
넉넉한 인심과 미소로 닭알탕을 끊이는 양근주(현대주점, 53세)씨는 20년을 이곳의 거리에서 손맛을 내고 있다.
“몇십년 전에는 현대제철 직원들과 철공서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 길로 출·퇴근을 했어요.
지금은 통근버스가 있어서 발길이 그전만 못하지만 옛날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격 저렴하고 푸짐하고, 맛도 좋고 영양도 좋아서 인기가 높았죠.
지금은 입 소문을 타고 젊은 학생과 아가씨까지 많이 오세요.
옛날에 드셨던 분들은 다시 찾아와 드시고 ‘역시 이 맛이야..’ 하시죠.”
“ ‘아버지 찾아와라..’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이곳으로 왔어요. 그땐 들어와 먹고 싶어도 못 먹었어요.
다 커서는 내가 이렇게 오고 있죠. 그 어렸을 때 먹고 싶었던 기억이 날 이리로 오게 해요. ”
50대가 된 중년의 아저씨. 벗과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테이블 옆으로 여자들만 6명.
40대 초반에서부터 50대 초반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서로 주고받으며 닭알탕으로 격양된 마음을 내려놓는다.
“여기요 맛있고 저렴해서 좋아요. 모임 할 때 이곳에서 자주 모여요. 누가 사도 부담이 없어서요,”
“옛날 분위기도 낯설지 않고 편해서 좋네요. 단골 됐어요."
먹을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때 특이한 식재료로 만든 닭알탕은 최고의 술안주며 밥 반찬이었다.
그 인기와 맛은 지금도 이어져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유행처럼 먹거리도 유행을 탄다.
추억의 맛으로 남아 현재의 입맛까지 잡는 닭알탕은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닭알탕 거리의 가게들은 20평 남짓 소박하다. 새로이 단장하지도 않았다. 단출한 기본찬도 변하지 않았다.
닭알탕 거리는 그때 그 시절의 맛과 멋을 고스란히 담아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추억의 맛은 가슴에 남아 진하게 우러난다.
어스름 해가 지면 붉은색 간판들은 닭알탕을 끓이듯 칼칼하게 거리를 추억으로 끓이고 있다.
◈ 자료제공 : 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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