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궁(豐壤宮) 이야기
풍양궁(豐壤宮)은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풍양현(豐壤縣)에 있었던 궁궐(宮闕) 이름인데! 태종(太宗)은 왕위(王位)를 양위(讓位)한후 이궁(離宮)으로 東쪽에 豐壤宮(지금: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을! 西쪽에 서울 무악(毋岳)밑에 연희궁(衍禧宮)을! 대산(지금 광진구 자양동)에 락천정(樂天亭)과 별궁을 1419년(세종1년)에 완공후 세종과 함께 정자에서 시사(時事)를 담소 하였다. 정자 이름은 당시 좌의정(左議政)인 박은(朴訔)이 역경(易經)에 실린 “천명을 알아 즐기노니 걱정이 없네”樂天知命故不憂(락천지명고불우)란 글귀에서 인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태종은 상왕(上王)으로 풍양궁에 있을 때 근처에서 온천과 사냥을 하기도 하면서 정사를 보았으며 세종(世宗)은 상왕을 문안하고 정사를 상의하고 윤허를 받기 위해 풍양궁을 1주일에 한번 정도는 풍양궁을 왕래 하였고, 그 후에도 왕이 사냥 할 때나, 광릉(光陵,世祖와 貞熹王后尹氏)에 참배 할때 숙소로 사용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1755년 을해(乙亥,영조31년)에 세운 구궐유지비(舊闕遺址碑) 비문(碑文) 전면에 태조대왕재상왕시구궐유지(太祖大王在上王時舊闕遺址)이고, 높이가196cm, 너비가 47cm이며 무늬 없는 받침돌에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碑身)을 올리고 그 위로 팔작지붕 형태의 뚜껑돌을 올렸다. 옆에 있는 구궐유지비(舊闕遺址碑)는 1905년(고종41년)에 건립된 비문(碑文)은 태조고황제소어구궐유지(太祖高皇帝所御舊闕遺址)이며 높이251cm, 너비가 61cm이고 비각 앞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는데 비신(碑身)은 호패형(號牌形)으로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같은 형태의 비석인 구궐유지가 있는데 고종(高宗)이 다시 세운 것은 청나라가 망하고 조선(朝鮮)을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제국(皇帝國)으로 선포하고 태조(太祖)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하고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孝純昭皇后趙氏:豐陵府院君 趙文命의 딸)까지 모두 8대를 추존하고, 태조고황제구궐비를 다시 세운 것이다.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수 있기에 천제를 위해 환구단(圜丘壇,지금 소공동 조선호텔옆)을 설단 하고 천제를 지내 왔는데, 일제치하 때 지금 있는 황궁우 만 남겨 놓고 천재단, 동무, 서무 제실, 홍살문을 모두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철도 호탤을⌟ 지어 유흥업소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후에 철도호탤을 불하하여 지금 조선호텔이 되었다. 몇 년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제1기예절교육을 받을 때 환구단 복원을 제의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 환구단 복원이 공론화 되고 있다하니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와 6,25전란 때만 궐사하고 매년 환구대제(圜丘大祭)를 봉행해 왔으며 작년 2017년 환구대제 때는 120년 전 고종황제 즉위식과 환구대제 복원행사가 시청광장에서 봉행(奉行)되었는데! 본인(本人)이 문무백관 일원으로 참여 하였다.
그리고 구궐유지비(舊闕遺址碑)는 비문(碑文)을 보니 풍양궁(豐壤宮)의 유지비가 아니고 풍양궁을 짓기 전에 태조(太祖)가 행궁(行宮)을 정하고 있을때 왕비 강씨(康氏)가 거처하고 있었던 곳이라 하여 안마을 이라는 뜻으로 내동(內洞) 이라 이름 하였고 지금도 洞名이 內閣里 이다.
우리 풍양(豐壤) 조씨(趙氏)의 득성지(得姓地)인 남양주 진건읍은 천마산 동쪽에 위치한 아담하고 산세가 먼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서 감싸고 천마산 좌청룡, 우백호로 주령이 감싼 곳으로 풍수에 문외한도 느낌이 남다른 작은 읍이다. 조선 오백년에 어느 성씨의 득성지(得姓地)에 그 지명(地名)을 취하여 임금이 정사를 보신 궁(宮)이나 별궁의 이름이 없으며 오직 우리 풍양(豐壤) 조씨(趙氏)의 발상지인 풍양(豐壤,지금의 진건읍 일대) 뿐이다. 비록 태종(太宗)께서 왕위(王位)를 양위(讓位)하시고도 병권(兵權)은 물론 중요한 사항은 직접 재가에 의하여 수렴청청 하시든 곳이며 세종(世宗)은 국정의 대사는 상왕(上王)의 재가(裁可)후 집행하였으니 중요 한 것은 직접 재가(裁可) 받으시고 그 외는 신하(臣下)를 보내 재가(裁可)받은 후에 처결 했던 것이다. 그러나 궁(宮)은 임진왜란 시에 불타 없어져 안타까우나! 지금도 진접읍 내각리에는 풍양초등학교(豐壤初等學校)가 있고 퇴계원에 남양주시 풍양출장소(豐壤出張所)가 있었는데 2017년 2월에 패쇄(閉鎖) 되었다.
우리 풍양(豐壤) 조씨(趙氏)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조상의 성지를 발전(發展)시키는데 더욱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後孫 䛃 熙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