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마태 1,16.18-21.24ㄱ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요셉 성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게 되는, 심판의 순간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힘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빚을 진 ‘마이너스’(-)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당신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신 하느님께 큰 사랑의 빚을 진 상태이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그 빚을 제대로 갚아나가지 않는다면, 내가 하느님께 받은 어마어마한 은총과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형제가 나에게 진 작은 빚을 받아내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면, 내 마음을 날카롭게 후펴파는 양심의 칼날 때문에 아프고 괴로워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요셉 성인이 의로움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마음 속에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하느님으로부터, 이웃 형제 자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누려왔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의 힘으로 자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약혼자인 마리아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결혼해서 같이 살기도 전에,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지만,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느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이유를 따져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조차 그녀의 ‘일부’로 생각하여 마음 속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의 잘못이 남들 앞에 드러나지 않게 덮어주고 보호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남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주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기 위해서는, 요셉 편에서 혼인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정당한 이유’를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없기에 요셉이 ‘악역’을 떠맡아야 했던 것입니다. 즉 마리아와 약혼하여 아이까지 잉태시키고는 변심하여 그녀를 차버리는 ‘나쁜놈’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길을 택해야 했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남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끌어안는 요셉의 용기와 결단을 ‘의로움’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또한 그 의로움을 넘어 당신께 대한 온전한 순명으로 구원의 섭리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이런 요셉 성인을 우리 신앙의 모범으로 삼고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이해심과 자비, 자신이 불이익이나 희생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결단,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뜻과 섭리를 도무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불평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깊이 침묵하며 일단 받아들이고 따르는 온전한 순명... 이런 덕행들을 묵묵히 실천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그런 우리를 참된 구원으로, 하느님 나라로 불러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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