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전라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외눈
권상연
나는 술래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어둠을 더듬으며 아이들이 쳐대는 손뼉 소리를 따라간다. 짝짝, 어둠 속에서 내가 의지할 데라곤 소리뿐이다. 악동이었던 순애는 나를 물구덩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한다. 나는 쓰러졌다. 발목이 접질렸다.
“황반변성 백내장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의사의 말에 캄캄한 어둠은 또한번 닥쳐왔다. 혹시 이건 유전이 아닌가, 어머니한테 의심이 갔다.
어머니 눈은 외눈이다. 출생한 순간부터 눈에 이상이 있었다. 마땅한 치료 약이 없던 시절이라 민간요법에 의존했다. 갓난쟁이의 젖이 즉효 약이라 하여 할머니 생젖을 짜 넣기도 했다. 좀 더 자라서는 심 봉사 젖동냥하듯 이웃의 젖먹이를 통해 젖을 얻어 치료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의술이 좋아졌다는 의사 선생님의 호언장담이 있었기에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눈 수술은 어둠 속에 갇혀 지냈던 아버지가 떠올라 나는 더욱 두렵게 다가왔다. 눈을 잃은 순간,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세상을 손으로 더듬으며 터득해 나갔다.
눈이 불편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에 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술 날짜가 가까워지자, 나누어도 나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어둠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내 신경은 한껏 당겨진 활처럼 팽팽해졌다.
젊은 나이에 시각장애로 집안에 들어앉은 아버지를 어머니는 외눈으로 보살펴 왔다. 혼사란 비슷한 처지가 만나야 잘 산다는 말이 있다.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뜻이었으리라. 선천적으로 시력이 약했던 아버지가 외눈의 어머니를 만난 건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비 때마다 아버지가 잘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외눈 덕분이지 싶다.
명사수는 활을 날리기 전 마지막 동작으로 한쪽 눈을 감는다. 분산되는 신경을 차단하여 멀리 떨어진 과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다. 화살은 선수가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균형을 잡고 활을 당길 때의 힘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승부를 판가름하는 건 한쪽 눈이 과녁을 잘 읽었을 때라고 한다. 어머니의 하나뿐인 눈은 언제나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아버지는 흰색 한복을 즐겨 입었다. 어머니는 철철이 베를 끊어와 손수 옷을 만들었다. 흰색이라 빨래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어머니는 “없는 살림일수록 더 살뜰히 챙겨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시 적삼을 입은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있으면 옛이야기나 동양화에 등장하는 선비처럼 곱다고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할 정도였다.
누구나 흉터는 숨기고 싶어 한다. 옷이나 다른 장신구로 가릴 수 있는 흉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머릿수건을 모자처럼 푹 덮어쓰고 다녔다. 감긴 눈을 감추느라 멀쩡한 외눈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한쪽 눈을 감고 어머니를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태어나면 눈부터 살폈다. 혹여라도 외눈이 유전이라도 되었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좀 더 자라서 시력검사를 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 눈을 탓했다. 내 속만 타는 줄 알았던 시기에 어머니의 외눈도 새파랗게 질려갔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요즘 백내장 수술은 수술이 아니라 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 되었다. 아버지의 눈 때문에 병원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었던 어머니가 아니던가. 요즘 의학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수술을 눈앞에 둔 자식을 보면서 그 초조함을 어디에 견줄까.
“외눈으로도 팔십이 넘도록 살아왔다. 요즘은 좋은 약도 있고 의술이 있지 않으냐. 너는 두 눈이 있지 않으냐. 수술 받아라. 염려 말아라.”
자식은 여든이 돼도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지천명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나는 어머니를 알지 못한다. 나는 연로한 어머니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건만 어머니는 내 마음을 거울 들여다보듯 알아차리고 다독거린다.
수술이 끝나고 한쪽 눈에 안대를 했다.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신경이 제자리에 찾지 못해 흔들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어질어질하는 것이 멀미하는 것 같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남은 눈에 힘을 줬다. 그제야 흐릿했던 의식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외눈으로 산 날은 며칠뿐이었다. 어머니의 세상을 알기엔 턱없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어머니 영정 사진을 만들었다. 죽기 전에 멀쩡한 두 눈을 간직한 모습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정 속 두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머리카락이며 입 주위를 한참 맴돌 뿐이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영정 속 눈을 바라보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외눈으로 본 온전한 세상이 눈 안에 다 담겨있는 듯했다.
어머니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두 눈이 해야 할 일을 홀로 감당했으니 지쳤을 법도 하건만 무슨 염려를 그리하는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내 어깨에 얹힌 짐이라고 생각했던 외눈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근심거리는 멀쩡한 내 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현관문을 여닫는 손길이 유난히 파르르 떨린다. 당신으로 인해 내 눈이 약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나이도 한참 지났건만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세상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나 보다.
저녁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달이 떠오르고 있다. 앗! 달도 외눈이다. 외눈으로 저렇게 세상을 밝게 비추다니 오늘부터 나는 외눈을 온눈이라고 부르련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