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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축복과 경고”
+ 본 문 : 고린도전서 10장 1절 - 13절 (신약 274쪽)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어떤 학생이 성적이 불량해서 그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와 담임선생님을 만납니다.
자기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역사과목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이 선생님이 가르치는 역사과목의 성적은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이 그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묻기를,
'아버님은 옛날 학교 다니실 때 성적이 어떠셨는데요?' 하고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학생 아버지가 머리를 긁으면서 '저야 뭐 형편이 없었지요.' 하고 대답합니다.
그때 엄숙한 자세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역사 선생님 이르시되 '역사는 반복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0장은,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회고합니다.
단순히 역사를 또 한 번 공부하거나, 역사를 알리려고 역사를 회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아주 의미심장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 ‘역사는 우리의 거울’ 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역사는 우리의 거울일 뿐만 아니라, 역사는 깨우침’ 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과 내일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위해서 역사를 통한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역사, 특별히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서,
당시 1세기의 고린도 사회와 그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고린도교회의 현실을,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실패의 경험이,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이 누릴 수 있었던 영적인 특권들과 영적인 축복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첫 번째 축복은 “다 구름 아래 있었다.” 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름 기둥이 인도하였고, 더 중요한 것은 뜨거운 햇빛이 내려 쪼이는,
광야 사막에서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구름 아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름 아래 있는 축복,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여러분! 지금도 구름 아래 보호받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날마다 보호해 주시는 구름의,
축복이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 못지않은 거친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펼치신 구름 아래 있는, 우리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축복과,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까? 아멘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두 번째 축복은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다.” 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후, 광야를 향해 나가는 길에 최대 난관은 바로 홍해였습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다를 열어주심으로 육지같이 바다 가운데로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가능을 돌파하게 하신 하나님, 기적으로 홍해라는 바다를,
마른땅을 건너듯 건너가게 하시는 능력의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길을 기적적으로 돌파하게 하십니다. 믿습니까?
이를 두고 시편 136편 13절 이하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 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왜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를 물속에 장사지내셨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셨습니까?
영원하신 인자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인자하심을 시인은 찬양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는 ‘아가페’ - “사랑” 이라는 단어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 - 사랑' 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는 '헤세드' 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 인자하신 사랑을 ‘헤세드’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까? 인자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축복,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여러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홍해와 같은,
장애물이라도 능히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세 번째 축복은,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는 것입니다.
세례, Baptism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세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연합입니다.
로마서 6장 3절 이하의 말씀에서도 보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하고 말씀했는데, 세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연합한다’ 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모세라는 사람을 지도자로 삼고, 모세와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순간,
우리는 누구에게 속합니까? 예수님에게 속하여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됩니다.
예수님에게 속하여 예수님과 연합한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 자를 말합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Baptism, 곧 세례입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다시 살아났다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죽었다가 살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를 통해서,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위대한 스승, 위대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가장 커다란 축복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
공부 잘 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와 학교에서 믿음 좋은 스승,
인격적인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좋으신 스승,
우리의 지도자는 구원의 주님이신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은 큰 축복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네 번째 축복은,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은 먹었다.’ 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나는 하얀 눈송이처럼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신기해서 '만나!'
우리말로 '저게 뭐냐!' 그러다가 그 이름을 '저게 뭐냐' 곧 ‘만나’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 만든 Made in USA도 아니고, 'Made in Heaven' 하늘에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이 만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Made in Heaven'
하늘에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을 먹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지금도 그런 음식을 먹습니까? 물론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먹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신약 시대 성도들은 하늘의 음식,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삽니다.
특권인줄 믿으십니까? 밤낮으로 먹으니 좋은 줄도 모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뭐라고 그랬어요. ‘왜 메뉴가 바뀌지 않습니까?’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는다는 그 자체가 특권이예요.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다섯 번째 축복은, 다 같은 하늘의 신령한 식물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다 같은 하늘의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는 것입니다.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실 것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반석을 깨뜨리시고, 깨어진,
반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생명의 샘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이 반석을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진 반석에서 구원의 생수가 쏟아져 나온 것처럼 깨어지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구원의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데,
호렙산으로 가라, 지팡이를 들어라, 때려라, 그 지팡이를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때려야 마땅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때리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반석을 때려라. 그래서 때렸더니 그 반석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생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생수를 마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지팡이는 지금 죄인들인 우리를 때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누가 대신 맞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반석이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맞으셨습니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지심,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5절의 말씀, 5절에 어떤 말씀으로 시작합니까?
'그러나…' 이게 문제예요. 그러나 'But!'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
이러한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계속적인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제의 성령 체험, 어제 받은 말씀의 은혜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나도 옛날에는 은혜 많이 받았다고, 그게 어떻다는 것입니까? 문제는 오늘입니다.
바로 이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 5절 이하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놀라운,
축복과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고, 그 죄의 결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다 같이 읽습니다. /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광야에서 대다수가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다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약속이 분명함에도, 그 약속을 누릴 수가 없었다는 안타까운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구원 못 받은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구원 얻은 것으로 하면, 모세도 구원을 못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아닙니다. 가나안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상징으로 보면 돼요.
축복의 상징 말입니다. 우리가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축복을 다 누리지 못해요. 축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왜? 범죄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범죄 때문에 그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그 놀라운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안타까워요.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서 경고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역사는 거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배워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죄악을 범합니까? 죄를 범하는 이유는 죄가 아름다워 보이고,
즐거워 보이거든요.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들도, 은혜 받은 백성들도,
과거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던 백성들조차도 죄악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어떤 죄악들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 죄악의 내용, 대표적인 죄 네 가지를 열거합니다.
대표적인 죄. 이 죄들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범죄들입니다. 어떤 죄입니까?
+ 첫 번째 범죄는 우상 숭배하는 죄입니다. / 7절 말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 두 번째 범죄는 간음하는 죄입니다. / 8절 말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 세 번째 범죄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입니다. / 9절 말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 네 번째 범죄는 원망하는 죄입니다. / 10절 말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이러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주신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12절 말씀입니다. /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시험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나도 시험받을 수가 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시험받아,
넘어질 수 있다.’ 고 생각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여호수아를 앞세워서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여리고는 대단한 성이라, 여리고성 전투할 때는 기도도 많이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여리고성을 격파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은 아이 성인데, 아이성은 정말 아이처럼 조끄만 성이었기에,
‘여리고 성에서 이겼으니까, 아이 같은 아이 성쯤이야 '아이~' 그러고 진격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실패했습니다.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믿습니까?
승리 다음을, 축복 다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부흥 다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주신,
두 번째 교훈은 시험에서의 승리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질 것을 믿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패배를 확신하고 패배 속으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날마다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어제의 교훈, 어제의 축복, 어제의 승리, 어제 받은 은혜 가지고 오늘을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고, 오늘은 오늘의 교훈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주님 바라보고, 날마다 주님 의지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 마무리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하심을 찬양합니다.
주님 바라보고, 주님 의지하고 오늘도 승리의 걸음을 걸어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험악한 인생, 광야 같은 인생, 주님 도우심 없이는 오늘도 승리할 수가 없사오니,
그 주님 바라보고 날마다 걸어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때로는 내가 과거에 받은 은혜, 과거에 들었던 주의 음성을 가지고,
오늘을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어이없이 실패할 때마다, 내가 오늘 아침,
오늘의 만나를 먹지 못했고, 오늘 아침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 의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한번 밖에 지나갈 수 없는 인생, 이 짤막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내가 인생의 길을,
걷다가 어쩌다가 예수 만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축복을 무엇으로,
감사할 수가 있사오리까? 주님이 내게 오시지 아니하셨다면 천국의 소망이 없었다면,
인생이란 것은 얼마나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된 것인지요? 죄짓고 살다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허무한 인생, 주님 만나 영원을 바라보며, 땅에서,
아름다운 복음의 향기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을 받고 헌금을 드리고,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함께 하심이,
이 시간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