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성철 스님
1. 공부의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
수행자가, 수행방편(修行方便)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이어감이,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에서, 더욱 나아가면,
말을 할 때[語]에도, 남의 말을 들을 때와 같이,
침묵할 때에도[默]에도, 일을 할 때와 같이,
몸을 움직일 때[動]에도, 사고(思考)할 때와 같이,
고요히 있을 때[靜]에도, 수행이, 한결 같아지는데,
이것을,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수행자의 공부가,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에, 이르렀다는 것은, 수행자가, 깨어 있는,
시간의 전(全) 영역을, 수행으로써, 꿰뚫어버렸다는 말이 되므로,
공부가, "오시일여"(午時一如)에, 이르렀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수행이, 과연 가능한가?
만약, 이러한 수행이, 불가능하다면, 부처님의 49년 동안의 법문(法門)은,
그 뿌리부터,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생들이, 생각하기에는, "인간(人間)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수행단계에 알맞는, 수행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수행자에게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징후(徵候)가, 나타나게 된다...
(1) 삼매관성(三昧慣性)과 무기관성(無記慣性).
수행자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 마치, 물리학(物理學)에서의, 관성(慣性)의 법칙(法則)과
마찬가지로, 수행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됨을 알게 된다...
물리학적인 관성에, 운동관성(運動慣性)과 정지관성(停止慣性)이 있는 것처럼, 수행의 관성에도,
"삼매관성"(三昧慣性)과 "무기관성"(無記慣性)이 있다...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수행자가 수행 중, 삼매(三昧)로 인하여, 생기는 관성(慣性) 이다...
삼매관성(三昧慣性)은, 마치, 운동관성이, 운동의 힘에, 비례(比例)하는 것처럼,
수행의 힘에, 비례한다...
수행자가, 수행력(修行力)을 높이면,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수행자가 수행 중에,
수행의 방편을, 잊어버릴 때,
수행의 방편 외, 다른 번뇌를 일으켜야 할 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깊은 잠에 빠졌을 때와 같이,
수행에 공간(空間)이 생길 때,
그 공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여, 수행의 단절(斷切)이, 생기지 않게 하므로, 수행자의 공부를,
쉽게,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에, 이르도록 한다...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수행자의 공부를, 어묵동정일여에, 이르게 한 다음에도, 멈추지 않고,
잠잘 때인, "매시"(寐時)까지,
그 영역을 넓혀, 공부의 "몽중일여"(夢中一如)와 "숙면일여"(熟眠一如)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추번뇌"(麤煩惱) 모두를, 평정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대로, "무기관성"(無記慣性)은, 수행자가 수행 중, 무기(無記)에 빠지게 되면,
그 무기에, 관성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무기관성(無記慣性)은, 마치, 정지관성(停止慣性)이, 무게에 비례하는 것처럼,
무기(無記)의 깊이에 비례한다...
무기관성(無記慣性)은, 수행자로 하여금, 나태하고, 부정적이게 하여, 지혜(智慧)를 없게 한다...
(2) 육계(肉髻) 신호
수행자가, 수행방편을 갖고, 공부할 때,
손으로는, "결인"(結印)을 하고,
호흡으로, 공부의 리듬을 맞추고,
입 천정에는, 혀를 말아 붙이는 등,
수행방편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수행자 자신의 육신(肉身)에, 삼중(三重)으로 연결시키면,
처음에는, 머리의 육계가 생기는 곳에, 어딘가에, 받힌 것 같은, 아픔이 있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그 곳에, 수행자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신호가 감지(感知)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그 신호가, 계속과 단절이, 거듭되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신호가,
작은 파장(波長)으로 이어지고, 드디어는, 그 신호가, 마치, 선(線)과 같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때, 수행자 자신은, 그것이, 수행방편을, 24시간 망각(忘却)하지 않도록, 이어지게 하는,
삼매(三昧)의 신호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삼매관성이, 길어지고, 육계에서, 삼매의 신호도, 감지하게 되면, 수행자는,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의, 어려운 고비를 넘게 되고,
쉽게, 공부의 몽중일여와 숙면일여에도,
이르게 되면서, 모든 추번뇌(麤煩惱)를, 완전히, 평정하게 된다...
수행자의 공부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삼매(三昧)의 신호가 나오는 육계가,
구(球)의 형태로, 솟아오름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부처님의 육계가, 수행의 결정체(結晶體)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수행방편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육신(肉身)에, 삼중(三重)으로,
연결시키도록 가르치셨던, 불조(佛祖)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하게 된다...
2. 공부의 몽중일여(夢中一如)
중생은, 잠을 잘 때에도, 꿈을 꾸거나, 깊은 잠에 빠진다...
이것은, 중생에게 "번뇌"와 "무기"의 현상이, 잠을 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와 꼭 같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잠을 잘 때(寐時)에도, 깨어있을 때(寤時)와 마찬가지로,
수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
수행자가, 수행방편(修行方便)에 대한, 간절한 생각으로 인하여, "삼매관성"(三昧慣性)이 생겨,
그 삼매관성이, 어묵동정간(語默動靜間)에, 완벽하게 이어지게 되고, 육계에서도,
선(線)으로 이어지는, "삼매(三昧)의 신호" 를 감지하게 되면, 잠잘 때, 꿈속에서 까지도,
깨어있을 때와 똑같이, 수행하는 상태가, 계속, 연장되는데,
이것을, 공부의 "몽중일여"(夢中一如) 라고 한다...
수행자의 공부가, "몽중일여"(夢中一如)하게 되는 것은,
공부의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가, 완벽하게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깨어 있는 때의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면서도, 꿈속에서, 공부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공부의 몽중일여가 아니고, 일종의 "잠꼬대" 현상인 것이다...
공부의 "몽중일여"(夢中一如) 에 이르게 되면, 오시(寤時)의 공부가, 몽시(夢時)의 공부와 같고,
몽시(夢時)의 공부가, 오시(寤時)의 공부와 같음을, 수행자 자신이,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에는, 잠자는 시간도 적고, 잠잘 때, 꿈꾸는 경우도 드물며, 잠에서 깬 뒤에도,
수행에 몰두하여, 꿈속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으므로,
처음에는, 자신의 공부가, 몽중일여(夢中一如)함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때에 이르러, 수행자가, 자신의 공부가, 몽중일여(夢中一如)함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수행자의 공부가, "오시일여"(寤時一如)함이 연장되어, 잠잘 때, 꿈 속에 까지 이어져,
꿈 속에서도, 공부가, 깨어있을 때와 꼭 같이, 한결같다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꿈 속에서도, 지금 깨어있는 이때와 꼭 같았지!" 하면서,
수행자 자신이,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두 번째는,
깨어있으면서, 어떤 경계에, 갑자기 부닥쳐, 꿈 속의 일을, 연상하게 될 때,
"지금, 내가, 깨어 있으면서, 공부하는 이것이, 꿈 속에서도, 이와 꼭 같았지!"하며,
수행자 자신이,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위의 두 경우를, 비교해 보면, 수행자의 공부 수준은, 첫째와 둘째의 경우가, 꼭 같지만,
자신이, 확인하는 시점(時點)은, 다르다고 하겠다...
첫째의 경우는,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여 온 수행자가, 긴 시간 동안의 수행의 연속으로 인하여,
"삼매" 가, 필연적(必然的)으로, 몽중(夢中)까지, 자연스럽게 연장되었기 때문에,
몽중일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알게 되는 경우이다...
둘째의 경우는,
첫째와는 달리, 짧은 기간에, 공부의 강도(强度)를, 높여 온, 수행자가, 자신의 삼매가,
몽중일여(夢中一如)에 이르렀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깨어있을 때의 수행 중, 어떤 경계에 부닥치면서, 꿈 속의 일이, 연상되면서, 몽중(夢中)에도,
공부가, 이러했음을, 갑자기 확인하면서, 감탄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이, 수행자가, 공부의 몽중일여(夢中一如)함을, 어떻게 확인하는가를 보면,
수행자가, 지난 날의 공부를, 어떻게, 해 왔는가도, 알 수 있다...
3. 공부의 숙면일여(熟眠一如)
수행자가, 수행방편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일으킴이,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 하고,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 하고,
"몽중일여"(夢中一如)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깊은 잠 속에까지, 한결같게, 이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공부의 "숙면일여"(熟眠一如)라고 한다...
이와 같이, 깨어있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전(全)영역을, 공부로써, 채워 버리게 되면,
수행자의 공부는, "오매일여"(寤寐一如) 하다고 한다...
중생의 일과(日課)는, "무기(無記)에 빠짐" 과 "번뇌(煩惱)가 일어남" 의 반복이다...
그러한 가운데,
"오시"(寤時)에는, 무기(無記)보다는, 번뇌(煩惱)가 많고,
"매시"(寐時)에는, 번뇌(煩惱)보다는, 무기(無記)가 많다...
"매시"(寐時) 에도, 얕은 잠에서는, 번뇌가 일어나고, 즉, 꿈을 꾸게 되고, 깊은 잠에서는,
무기(無記)에 빠지게 된다...
수행자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수행방편(修行方便)을, "의식"(意識)으로, 굴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깊은 잠에 빠지게 되면, 기절(氣絶)했을 때와 꼭 같이,
의식(意識)의 작용이 멈추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깊은 무기(無記) 속에, 있을 때 인데, 이 때에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
수행자의 공부가, 행주좌와시(行住坐臥時) 에서,
어묵동정시(語默動靜時), 몽시(夢時) 까지는, 거의, 의식(意識)으로, 공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숙면시"(熟眠時) 에는, 무기관성(無記慣性)만, 미치는 영역이어서, 의식(意識)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에는, 수행자의 공부가,
행주좌와일여하고,
어묵동정일여하고,
몽중일여함에 이르기까지,
수행의 힘으로 생기게 된, "삼매관성"(三昧慣性)을, 무기관성만이, 미치는 영역 속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자가, "숙면시"(熟眠時)를, "삼매관성"(三昧慣性)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공부의 "숙면일여"(熟眠一如) 이다...
수행자가, 무기관성(無記慣性)만이 미치는, 시간까지 "삼매관성"(三昧慣性)이, 이어지게 하려면,
"추번뇌"(麤煩惱) 를, 모두, 평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공부가, "숙면일여"(熟眠一如)에 이르려면, 추번뇌(麤煩惱)를, 모두, 평정해야만 가능하다...
추번뇌(麤煩惱)를, 모두, 평정한 수행자라면, 중생(衆生)이 아닌,
"성인지"(聖人地)인, "보살지"(菩薩地) 이며, "불퇴전지"(不退轉地) 이므로,
"분단생사"(分段生死) 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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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