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바다를 벗삼아 걷는 길', 여기가 부산이다!~
물결 이는 바다 끼고 흙길 뚜벅뚜벅…자연의 고운 결로 마음 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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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대 바닷가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붉은 대야에 담아 팔고 있다. 저 멀리 해운대의 첨단 빌딩숲이 보인다. 이기대는 오래된 기암괴석의 풍경과 첨단도시를 동시에 볼 수 있다. |
쏴아아. 촤르르르. 휘이 휘이. 푸드드득.
크고 작은 바위를 휘감아 때리는 파도소리, 떠밀려 몇 걸음 쓸려 내려가는 자갈 소리, 나무 사이를 헤집고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 풀숲을 밀치고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 지치는 소리. 검푸른 수평선 구름을 뚫고
얼굴 내미는 일출 태양, 억겁 세월을 상처 난 채 그 자리를 지키는 큰 바위들, 봐주는 이 없어도
서로 의지하여 서 있는 해송, 가만있어도 될 것을 끝도 없이 밀리고 흔들리며 끝끝내 흰 거품을 토해내는 파도,
그렇건 말건 은빛 찬란한 결을 뽐내는 먼바다.
그리고 점점이 지나는 배들.
이 모든 것이 해안산책로의 풍광이다.
복잡하고 거슬리는 소리나 모양새가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편안한 결이다.
그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다.
긴장이 완화되면서 머리가 맑아옴을 느낀다.
스트레스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이 넓어짐을 느낀다.
자연이 가진 고운 결이 딱딱하게 응고돼 있던 마음의 결을 곱게 곱게 빗겨내리는 듯하다.
은빛 바다를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길이 부산에 여럿 있다.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기암절벽과 첨단도시 동시에_ 이기대 산책로
이기대 해안산책로 시작은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초광역 걷기 길인 '해파랑길'의 출발점이며, 제주 올레길만큼 유명한 부산 '갈맷길' 2-2코스의 시작이기도 하다.
산책로의 끝 지점 '동생말'까지는 4.8km 거리이고, 소요시간은 2시간가량 잡으면 충분하다.
코스의 난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풍광은 압권이라 가벼운 트레킹으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노랫말로만 수십 번 되내인 부산의 상징 오륙도가 지척에 펼쳐져 있다.
돌 수제비를 던져 놓은 듯 섬들이 바다 위에 나열되어 있다.
최근에는 오륙도보다 인기를 끄는 것이 '스카이워크'다.
35m 해안절벽 위에 철제 빔을 놓고 방탄유리 24개를 이어 하부가 보이게끔 한 이색적인 구조물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개발되기 전 방공호와 암석으로 되어 있던 원래 지형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다.
산책로 초입 둔덕에 조성된 '자연마당'은 습지와 식물군락지를 제법 잘 만들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목재 난간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여 가다 보면 농바위 치마바위 등
기기묘묘한 암반을 구경할 수 있으며, 중간중간 만나는 전망대, 구름다리가 걷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영화 '해운대'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어울마당'이 있고,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붉은 대야에 담아 파는
'해녀막사'도 눈길을 끈다.
자갈로 된 해안길을 걷다 보면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해식동굴을 볼 수 있고, 갯가 평평한 바위에 붙은
우렁이와 다슬기(고동)를 모아 담을 수도 있다.
바위로 접근하도록 열어놓은 곳이 있어 발길을 잠시 멈췄다.
무한히 높고 너른 하늘과 바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은빛 일렁이는 물결이, 기암괴석에 연신 부딪는 파도가, 볼을 훔치고 지나는 찬바람이 일상에 찌든
머리를 환기시킨다.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무한자의 초월적 능력에 예배드린다.
유한자의 초라함을 고해성사한다.
짧은 순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이 매료의 순간을 재음미해보려 애써 녹음까지 해본다.
땀이 제법 날 때 즈음에 마지막 코스 '동생말' 전망대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는 반전이요 클라이맥스다.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그리고 해운대 달맞이고개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최고의 자연경관에 온몸이 젖어서 나오는 순간, 자연과 어우러진 최고의 도시 장관을 목도한다.
야누스 같은 두 가지 얼굴을 한 번에 경험하는 것이다.
대자연의 정취와 대도시의 장관이 콜라보레이션 된 매력적 장소이다.
야경은 두말할 필요없이 일품이라, 포토그래퍼들의 출사코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 문탠로드와 철길 따라_ 달맞이언덕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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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의 터널 안에는 해운대 해변까지 잘 보인다. |
바다를 향해 봉곳이 솟은 지형인 해운대 '달맞이언덕'은
부산에 내려준 또 하나의 천혜의 땅이다.
접근성이 좋고, 뺑 돌아가며
어느 곳에서든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좋은 땅을 사람들이 그냥 둘 리 있겠냐마는, 최근 지어진 수직 아파트
단지만은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 거북스러운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멀리서 보면 언덕 허리춤 일부에 초록의 숲이 남아 있다.
숨 쉴 수 있는 허파와 같은 곳이다.
여기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를 '문텐로드'라 지칭한다.
햇빛 작렬하는 낮에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선탠(suntan)을 하였으니, 밤에는 달맞이언덕 길에서 문탠(moontan)을 하자는 거다.
좀 유치한 이름이긴 하나, 의미야 대충 전달된다. 숲길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교교한 달빛의 교합은 로맨티시즘의 운치를 풍만히 드리운다.
산책로를 따라 길안내등까지 켜지면 최적의 데이트 장소로 변신한다.
미포오거리에서 5분가량 인도로 걸어 올라가면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1~1.5m 폭의 길은 흙으로 잘 다져놓아 보행감이 매우 좋다.
오르내림이 많지 않은 거의 평탄한 길이라 딱히 등산화를 신지 않더라도 걷기에 큰 부담이 없다.
중간중간 쉬었다 가도록 벤치나 전망대, 체육공원이 있고, 넓게 만든 어울마당에서는 간단한 놀이를 하거나
챙겨간 도시락을 까먹을 수 있다.
초가을이 되면 이곳에서 '달맞이언덕축제'도 벌어진다.
여기서 갈래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 철로와 바로 연결된다.
계속 직진해서 가면 예쁜 포구마을인 '청사포'가 나오고,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걸으면
해운대해수욕장 끝자락인 미포로 돌아간다.
이 철길을 이용하는 대부분 산책객은 미포에서 출발하여 청사포 방향으로 무한 직진하지만, 그렇게 되면
해운대의 멋진 풍광을 뒤로하고 계속 걷는 꼴이라 좋은 선택이 아니라 생각한다.
앞서 제시한 것처럼 문탠로드 흙길을 밟고서 절반을 걷고, 갈래길 반환점에서 미포 방향으로 걸어 돌아오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다.
너른 대양의 시원한 눈맛을 즐기며 걷다가, 서서히 바다와 어우러진 도시의 리드미컬한 조합을 보는 것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바다를 끼고서, 철로와 침목을 밟으며 총총히 걷는 것 자체로도 즐거운 체험이다.
이 폐선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지 많은 이가 관심을 두고 있다.
부디 땅이 가진 잠재적 결을 무시하지 않기 바란다.
설익지도 않은 아이디어와 상업적 욕심으로 고운 결을 얼어붙게 하는 무식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짧은 터널과 바람개비로 만든 대형 태극기, 소원의 글이 적힌 알록달록 리본들에서 이 길이 가진 잠재성을 본다. 만약 자신 없다면 자생력이 생길 때 까지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선택의 카드가 될 수 있다.
■ 산책으로 한해를 시작하며
날은 다 같은 날이나, 달력상으로 해가 바뀌면 다들 마음을 다잡는다.
다짐도 한다.
바람도 가진다.
고마운 이에게 감사 메시지도 전한다.
뜻하지 않은 편지에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한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시간인가.
일 년 내내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얼마나 세상이 따뜻해질까 싶다.
원망과 욕망으로 점철된 교착된 결속에서 살아가느라 다들 고생이다.
하루하루가 버겁다.
산책을 하며, 황폐하고 파편화된 기억을 하나씩 씻겨내고 보듬는다.
희망과 감사함의 착하고 고운 마음의 결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여기 자연의 고운 결을 통해 다시금 느끼고 배운다.
도심에서 한 걸음만 여유를 가지고 나오면 이런 해안산책로를 만끽할 수 있으니, 부산은 복 받은 도시다.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