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성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마태 26,14-25) (이근상 신부)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마태 26,14-16)
죄는 방향이다. 죄는 얼마나 크고 중하냐가 아니라 결국 방향. 아주 작은 죄가 그 다음의 죄를 부르며 조금씩 조금씩 굴러가는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가속력을 이기지 못하는 파괴와 광기로 굴러버린다. 그래서 죄를 성찰하는 마음은 지금 내가 향하는 방향을 돌아보며 굴러가지 말아야 할 방향이라면 발바닥에 힘을 주며, 때론 엎드려 온 몸에 마찰력을 가지고 버텨야 한다. 한마디로 작은 거짓이 결국 살인과도 연결된 하나의 사태, 하나의 죄.
유다는 실망과 불신, 숨김과 거짓으로 점차 예수와의 거리를 벌려나가고 있다. 이제 점차로 막장으로 내닫는 중. 돈으로 스승을 팔아넘기는 마음은 그게 맨 처음 예수에게 희망을 두었을 때, 가슴 뛰었을 무렵에야 상상할 수 없었을터인데, 또 맨처음 말을 닫고, 맨처음 거짓으로 무엇인가 숨겼을 때에야 상상할 수 없었을터인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 멈추어야 할 때, 그 마찰의 긴장과 아픔을 감수하지 못한 자의 결말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어떤 방향에 있다. 죄의 정도가 아니라 방향을 보면, 우린 지금 실망과 희망, 유다와 예수라는 두 갈래길에서 한쪽으로 반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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