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느 중학교의 ‘금연포스터’그리기 대회에 나온 표어와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거 그리는 것도 너무 지겹다. 제발 끊어라” 그 표어와 그림을 그린 학생의 작품이 입상을 했는지는 제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정말 정확한 표어였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해마다 ‘금연의 날’에 즈음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까지 똑 같은 내용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자니 지겨웠을 겁니다.
요즘 그런 지겨운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정말 지겨운 얘기 저도 오늘만 올리고 앞으로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자의 나라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듯, 건국을 건국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구한말인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식민통치를 당했다가 45년 해방을 맞이한 뒤 3년간의 미군정을 거쳐 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건립됐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1948년 건국을 얘기하면 뉴라이트,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수 있나.
그런 식이면 1998년 “올해로 건국 50주년을 맞았다”는 김대중 대통령도, 2003년 8월 15일 “58년 전 오늘 나라와 자유를 되찾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는 노무현 대통령도, 심지어 해방 공간에서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세우고 ‘양심건국(良心建國)’을 주장한 백범 김구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한 몽양 여운형도 친일파라는 소리인가.
당초 논란이 됐던 건 건국이 아니라 건국절이었다. 2006년 뉴라이트 계열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간지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촉발됐다. 당시에도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이다’ ‘건국이라고 하면 5000년 역사의 연속성이 단절 된다.’ ‘광복절이 있는데 굳이 건국절이 필요한가’ 등 반론이 거셌으나 1948년 시점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았다.
갈등을 증폭시킨 건 문재인 정부였다.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고 규정했다. ‘1948년 건국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현직 대통령이 나서서 ‘1919년 건국’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때부터 1919년 건국을 반대하는 건 임시정부 부정, 독립운동 폄훼로 치부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식’ 정부를 건국으로 인정하지 못하면서, ‘임시’ 정부를 건국이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않나.
게다가 임시정부는 사법권도 치안권도 없었고, 한반도 주민을 전혀 관할하지 못했다. 국가의 3요소는 주권·국민·영토라는 상식과도 어긋난다. 아무리 독립운동의 대표성·상징성이 있더라도 ‘임시정부 수립=건국’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하지만 좌파 진영은 반일 정서를 이용해 ‘1919년 건국설’을 몰아붙였다. 특히 1948년 건국의 부당성을 설파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나온 게 ‘기적의 3단 논법’이다. ①1948년 건국이라면 그 이전엔 나라가 없었던 거다→②일제시대 국적이 일본이라는 뜻으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 →③이는 전형적인 식민사관으로 친일파의 논리다. 이에 따라 ‘1948년 건국 주장=친일파’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고 싶다. 일제 강점기,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나. 나라가 있었다면 왜 독립운동을 했나. 왜 해방을 염원했나. 나라를 빼앗겼기에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팩트다. 일제시대,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다는 주장은 뒤늦은 정신 승리다.
억지 주장의 압권은 광복회의 뉴라이트 판별법이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면 뉴라이트·친일파란다. 이승만은 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19년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19년이든 48년이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변함없다. 이승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건국 대통령인가. 유령인가.
왜 이토록 1948년 건국을 부정하려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이승만 정부를 인정할 수 없어서다.
올해 들어 영화 ‘건국전쟁’이 인기를 끌고,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탄력을 받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듯싶다. 윤석열 정부는 특정 시기가 아니라 1919년 임시정부부터 48년 정부수립까지 일련의 과정을 건국이라고 하는데, 그렇다한들 그 종착지엔 1948년이 있다.
48년을 빼고 건국을 논할 수는 없다. 친일몰이에 한국 사회가 오염되고 있다. ‘반일 파시즘’에 대한민국 정통성이 흔들려선 안 된다.>중앙일보. 최민우 정치부장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시각각, '1948년 건국은 친일'이라는 궤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3281
오늘 조선일보이 김윤덕이 만난 사람에 ‘안병직 서울대명예교수’가 나와서 뉴라이트에 대해 대담한 것이 지면에 실렸습니다.
저는 솔직히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뉴라이트는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뉴라이트(New Right)는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우익 정치 운동입니다. 기존의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달리, 뉴라이트는 시장 경제의 자유화, 작은 정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강조합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1990년대 주사파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이념 전환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2004년 '자유주의연대'의 출범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뉴라이트 운동은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지지합니다. 이들은 시장의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작은 정부론을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이념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뉴라이트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뉴라이트의 중요한 이념 중 하나입니다.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친일파 문제에 대해 기존의 역사 해석을 비판하며, 일부 친일파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며 많은 비판을 받았고, 뉴라이트를 '친일 뉴라이트'로 부르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뉴라이트는 반공주의와 반민주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며,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와 진보적 이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뉴라이트가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진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뉴라이트 운동은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2000년대 한국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논란은 뉴라이트 운동의 한계를 드러냈고, 사회적 비판을 받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뉴라이트와 건국절에 대한 얘기는 더 올리지 않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