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대마불사(大馬不死)’ 또는 ‘Too big to fail’이라는 말을 믿으며 기술 변화의 흐름에 저항해온 기존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디지털 격변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 개발에 고심하고 있다. 이미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세계 경제를 고려할 때 저금리 기조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통적인 금융사의 오프라인 지점에서 창출되는 이자 중심 사업 모델은 점차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 p.19
핀테크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새로 출시되는 서비스는 충성도 있는 고객 기반도, 고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마케팅에 투자할 돈도 없다. 그래서 적은 고객을 대상으로 그들이 충성 고객으로 전환될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서비스를 충분히 고도화한 뒤 마케팅 투자를 시작한다. 이후 충성 고객이 충분히 모이게 되면 수익성 높은 서비스를 하나둘 선보이며 재무 실적을 개선해간다. --- p.59
우리는 핀테크가 금융 기술 혁명이 아닌, 금융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임을 기억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와 스퀘어의 캐시앱이 결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토스는 고객이 기존 은행의 송금 기능을 매우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에서, 캐시앱은 고객이 간편송금 앱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위험을 느끼는 것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 그리고 이들은 반복적인 사용자 테스트를 통해 각각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발견해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됐다. --- p. 64
이에 알리바바는 타오바오를 출시한 뒤 3개월 만에 자체적으로 결제 시스템을 새롭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알리페이다. 알리페이는 고객이 카드 대신 현금을 충전해놓고 쓸 수 있는 서비스로 고객이 결제한 후 대금을 바로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일단 알리바바가 돈을 보관하고 있다가 구매자가 수취 확인을 한 뒤에 판매자에게 돈을 보내는 에스크로 방식이으로 작동됐다. 동시에 타오바오는 결제 수수료를 무료화하며 이베이의 판매자들을 빼 오는 데 힘썼다. 이후 타오바오는 중국의 C2C 온라인 쇼핑몰 시장에서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이베이를 크게 따돌렸다. --- p.85
카카오뱅크는 다른 은행들의 모바일 뱅킹보다 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꼭 필요한 조회, 이체, 상품 가입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없앴다. 대신 소수의 기능을 극도로 간편하게 하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절대다수의 고객은 카카오뱅크의 핵심 기능만 사용할 터였다. 고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 p.99
그랩은 고객에게 은행 계좌나 카드와 연동하지 않아도 되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그랩페이에 현금을 충전할 수 있는 크레딧(GrabPay Credits) 기능을 선보인다. 고객은 은행뿐 아니라 ATM, 상점, 혹은 그랩의 운전기사를 통해 돈을 충전할 수 있다. 이렇게 충전한 돈을 그랩의 차량 호출 외에도 식당이나 상점 등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휴처를 모았다. --- p.112
소파이는 학생들에게 최저 5.9% 수준으로 전통 금융기관들보다 3~4%p 더 저렴하게 학비를 빌려줬다. 그리고 졸업생들에게는 후배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매우 안전한 투자라 강조했다. --- p.122
레볼루트(Revolut)는 ‘굳이 암호화폐 같은 대체 수단을 써가며 환전하는 게 꼭 필요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전 세계 150개 이상의 국가에서 30여 개의 화폐를 기준 환율로 연결해 지역에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화폐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환전 수수료도, ATM 출금 수수료도 없다. --- p.133
바로 로빈후드(Robinhood)의 등장이다. 이들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주식, ETF, 암호화폐 등의 거래를 지원하는데, 모든 수수료가 무료다. 그래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며 신규 투자자들을 흡수했다. --- p.147
오픈도어는 집을 팔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동화된 AI 알고리즘을 통해 적정 수준의 가격을 제시한다. 이후 집주인이 이에 동의하면, 실사를 거쳐 그 집을 구입한다. 그리고 낡거나 고장 난 곳을 고치고, 집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광고해 집을 판매한다. 이들은 AI를 통해 최대한 정확히 시세를 추정해 매물을 직접 보유하는데 따른 재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고객이 집 매매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막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 p.168
이에 레모네이드는 위험률차 이익을 과감히 포기한다. 다만 포기한 이익을 고객에게 환급하는 것은 법적 제약이 있어 그만큼의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한다. 고객이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고객에게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회사의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모두 기부되는 구조이니 레모네이드 입장에서도 굳이 애써 버텨가며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때문에 예상위험률을 과도하게 책정할 필요도 사라졌다. 고객도 자신이 받지 못한 보험금이 레모네이드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곳에 기부되는 것이기에 과도하게 청구하는 사례도 줄었다. --- p.176
이후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강력한 플랫폼 파워를 가진 세 기업의 경쟁으로 점차 압축되었다.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국내 1위의 인터넷전문은행을 보유한 카카오, 국내 1위의 간편결제 서비스 네이버페이를 가진 네이버, 대한민국 핀테크 스타트업의 아이콘 토스(비바리퍼블리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p.199
이처럼 밀레니얼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자체를 극도로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기능을 더할 것인지가 아니라 몇몇 핵심적인 기능을 어떻게 완벽하게 잘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초’ 타이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최고’의 서비스를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다. --- p.216
이런 은행 기능을 제휴사에 서비스 형태로 제공한다고 해서 ‘서비스로서의 은행(Bank-as-a-Service)’이나 상표가 없는 은행이라는 의미로 ‘화이트 라벨(White-label)’ 은행이라 부른다. 아직 한국에는 없지만, 해외에서 성공 사례가 점차 늘면서 출현 가능성이 점쳐진다. --- p.227
산업에서는 데이터를 원유(Crude Oil)라 표현한다. 원유는 화석 경 제 시대를 이끈 핵심 원료로 현대 사회에서는 데이터가 산업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는 뜻이다. --- p.229
이렇게 바뀐 환경에 맞춰 은행을 비롯한 금융 회사의 오프라인 지점들은 진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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