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이 회색도 필요하다/사랑을 하고 전쟁을 하면서도 우유부단한 남자/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역사 통해 화해의 원리 제시
월터 스콧은 1771년 8월15일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태어났다.그는 어린 시절을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접경지대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보냈는데,이때 그는 스코틀랜드의 과거와 민요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향토에 대한 사랑을 배우게 되었고,이러한 관심은 훗날 그의 주요 작품들을 형성하는 뼈대가 되었다.
특히 스콧은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1603년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가 죽은 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함에 따라 영국 왕실과 스코틀랜드 왕실이 통합된다.제임스 1세로부터 시작된 스튜어트 왕가의 통치는 영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제임스 2세는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왕위에서 축출된다.
○스코틀랜드의 과거에 대한 향수
이때 제임스 2세를 따라 프랑스로 망명하거나,국내에 남아 그의 은밀한 지지자가 되었던 토리 중에도 아주 보수적인 왕당파 세력이 있었는데,이들을 재코바이트라고 부른다.1707년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합병된 이후 이들은 1715년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에드워드를,그리고 1745년에는 그 아들인 찰스 에드워드를 왕위에 복원시키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물론 반란은 두번 다 실패로 돌아가고 특히 1745년의 반란이 1년만에 진압된 뒤 반란의 본거지였던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방의 씨족문화는 완전히 말살된다.찰스 에드워드가 이 지방을 본거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방이 영국과의 합병 이후에도 험난한 산악지형 때문에 영국의 치안권 밖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반란 이후 스콧의 당대에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밀월관계를 유지했고,스코틀랜드는 영국의 경제적 부강과 제국팽창의 공동수혜자로서 정치적 병합의 이득을 누리고 있었다.
○두 세력 사이에서 “왔다갔다”
스콧 자신도 유복한 법률가로서 역시 그러한 이득의 수혜자였다.그러나 그에게는 늘 스코틀랜드의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사랑이 있었으며 스콧은 그의 소설 ‘웨이벌리’ ‘레드 곤들릿’에서 재코바이트들의 활동상을 낭만적 시각으로 그림으로써 이러한 향수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집착은 1997년 9월 스코틀랜드가 다시 영국으로부터 외교권을 제외한 입법권 조세권을 돌려받아 주권을 부분적으로나마 회복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웨이벌리’의 주인공 에드워드 웨이벌리는 새로운 왕조인 하노버 왕가를 지지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보수적 귀족으로서 재코바이트 세력에 동조하는 백부에게 양육된다.그의 집안과 그 자신은 이와 같이 당시 영국을 분할하고 있던 양대 세력의 갈등의 현장이 된다.1745년 재코바이트 봉기 당시 웨이벌리는 영국군 장교의 신분으로 스코틀랜드의 던디 지방에 파견되어 있었고,군대생활의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백부의 지인이며,스코틀랜드의 저지대와 고지대 사이에 거주하는 재코바이트파의 브래드 남작의 성을 방문하고 있었다.
남작에게는 아름다운 딸 로즈가 있었으나,로맨스 문학의 경이로운 세계에 심취하여 자라난 웨이벌리는 로즈의 아름다움과 성품이 너무 안온하고 평범하다고 느낀다.낭만적 모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고지대까지 들어갔던 웨이벌리는 그곳에서 퍼거스 매키보르라는 젊은 족장과 스코틀랜드에 대한 애국적 열정에 불타는 그의 누이 플로라 매키보르를 만나고,로맨스의 주인공처럼 고매한 그녀의 성품에 매혹당한다.
그러던 중 그는 하일랜드 지방의 산적 빈 린 등의 획책으로 영국정부의 불신을 사게 되자 장교직을 사임해버리고,뚜렷한 신념도 없이 재코바이트 봉기에 가담하게 된다.그는 전통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운명을 용맹하게 개척해나가지 못하고 웨이벌리(웨이버〈waver〉는 흔들리다,너울거리다 등의 뜻이 있음)라는 그의 이름이 상징하듯 상황논리에 따라 피동적으로 당시에 대립하고 있는 두 세력의 진영 사이를 오간다.
플로라에게 기울었던 그의 사랑도 찰스 에드워드 왕자의 추종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로즈에게로 기운다.그리하여 그는 줏대도 매력도 없는 우유부단한 주인공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지만,그의 우유부단한 너울거림 때문에 우리는 하노버 왕가 지지세력의 세계와 재코바이트들의 세계를 골고루,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전투가 치열한 가운데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명분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전형적인 로맨스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그는 백부의 영지로부터 자신을 따라와 영국군 병사가 된 한 부하의 죽음을 목격하고서,자신이 단지 신기한 모험으로만 생각했던 전쟁의 끔찍한 참모습을 보게 된다.그는 또한 영국 정부군 시절 자신이 흠모하던 가디너 대령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를 슬퍼하며,위기에 처한 영국군 장교 댈봇 대령을 구해준다.얼마 후 야간전투에서 어둠 때문에 대열에서 낙오해 쫓기는 몸이 된 그의 로맨스적 모험은 이와 같이 산문적으로 끝난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우유부단하고 시원치 않아도 그의 행동은 반란이 끝난 뒤 그 갈등을 봉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는 자신이 도와주었던 댈봇 대령의 힘으로 영국정부의 사면복권을 얻어낸다.그리고 로즈와 결혼함으로써 스코틀랜드 저지대의 재코바이트파의 전통을 자신의 전통 영국내의 하노버파와 재코바이트파의 결합 에 병합한다.그는 또한 사형선고를 받게 된 퍼거스 매키보르의 뒤치다꺼리를 하며,플로라의 신변을 돌보고,또 그들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전통까지도 흡수한다.
○‘분단 한국’에 던진 다원성의 교훈
즉 웨이벌리의 우유부단한 진자운동은 갈등세력의 통합과 화해의 과정을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며 감당해온 영국 역사의 주역으로,화해의 원리로 부각된다.스콧은 또한 단일한 신념을 열정적으로 신봉하는 로맨스의 세계와 회의와 우유부단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소설적 세계를 작품 안에 대비하고,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소설적 포용성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웨이벌리라는 인물과 소설 형식을 통해 표현되는 이런 다원성의 개념은 이제 남북통일이라는 과제를 눈앞에 놓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고의 틀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