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톳 불
김 세 종(뱜바우)
불이 타오른다.
타닥타닥, 깊은 잠에 취한 망자를 깨워 불물결에 실어 도솔천으로 띄워 보낸다.
간밤에 북풍이 문풍지를 떼어낼듯 휘몰아 쳤었다.
마당 가에 흙을 밀어 올리고 서릿발이 날을 세운다.
갑작스러운 추위를 쇄한 몸이 견디지 못하셨을까? 몸져누워 계시던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다가온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온동네 어른들이 나서서 돼지잡고 술도가에 막걸리 배달 시키고 아낙들은 전부치고음식만드느라 분주했었다.
동네 청년들은 가까운 산으로 몰려 가서 통나무를 베어다 쌓고 마당 한 가운데 화톳불을 놓는다.
호상꾼들은 밤을 밝혀 가며 마당 가운데 있는 화톳불에 몸을 녹이며 망자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상주를 위로했었다.
거기에 호상이라면 경사에 못지않게 떠들썩했었다.
걸쭉한 막걸리에 취하고 불기운에 취한 동네 형님이 "아자씨, 삼국지 얘기 좀 하시지유?"
하면, 아버지는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삼국지를 풀어나가신다.
장판교 싸움에서 조자룡이 백마를 타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진을 분탕하며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해서 옆구리에 끼고 의기양양 장판교를 건너온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 적선을 모조리 불태운다.
호상꾼들은 헤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에 빠져든다.
밤이 깊도록 그 걸걸한 목소리는 영화의 스크린처럼 장면장면을 펼쳐 불물결에 풀어놓으신다.
타닥타닥! 관솔이 터지는 소리에 깊은 잠에서 깬 망자의 혼령이 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에 섞여 불물결을 타고 저승길에 오른다.
"햐! ~~~~ 아자씨가 공부를 했으면 판검사는 되고도 남았을 거유~~~~"
아버지는 멋쩍으신지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손등으로 훔치며 빙그레 웃으신다.
오십여 년 전의 일이었던 거 같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던 겨울, 농한기를 타서 아버지는 동네 어른 집에 있는 삼국지 오 권을 빌려오셨다.
학교 문턱도 안 가보신 아버지는 어깨너머로 배운 언문 실력으로 책을 읽으신다.
낭창낭창 책 읽는 소리가 담을 넘었었다.
분명 책에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는 데 ~~~~~~~~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다고 붙여 읽으신다.
시조를 읊으시는 것처럼 늘어졌다.
신식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 읽어나가시다 숨이 차시면 "가서" 하시며 추임새를 넣으시면서 숨을 돌리시곤 하셨다.
책을 빌려온 김에 나도 삼국지를 읽었다.
한 일주일 남짓 걸렸지 싶다.
아버지의 책 읽기는 한없이 늘어졌다.
오 개월이 넘어서고 농사철이 가까워질 무렵 책거리를 하신다.
나는 삼국지의 대강의 줄거리만 머리에 남았다.
느림의 미학이라 할까? 비록 느리게 읽어 내셨지만 장면 장면을 스크린을 복사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에 넣으신 것이다.
초상집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삼국지 얘기는 타오르는 화톳불과 함께 춤을 추며 하늘로 휘감아 오른다.
tv경연 프로그램에 뮤지컬배우가 스토리텔링으로 시청자들을 매혹시켜 트로피를 독차지하곤 한다.
스토리탤링의 원조는 아버지가 아닐까?
"다 아는 얘기를 왜 날마다 하구 그래유~~"
그런 아버지가 못내 못마땅했었다.
그렇게 술 좋아하시고 분위기 휘어잡으시던 아버지가 병이 나셨다.
내가 결혼을 하고 다다음 핸가 그렇다.
결혼하던 해에 시골집을 새로 지었다.
설계사무실에 근무하는 친구를 불러다 자문받고 설계도 그려와서 그대로 집을 지었다.
지금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동네에서 제일 잘 지은 집이었다.
내가 장가간다고 하지, 집을 새로 짓지, 당연 부모 모시고 시골에서 사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 부모님은 얼마나 대견하고 기대에 부풀어 계셨을까?
엄니는 새로 맞을 며느리를 어떻게 휘어잡을지 궁리도 하셨을 것이다.
하나 결혼이 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문제였다.
딱, 일 년만 나가서 살다 들어온다고 약속하고 나간 것이 끝이었으니 그 실망함 이란 글로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더구나 결혼하던 해에 청주 본사에서 대전에 있는 동종의 회사를 인수해서 그 인수단의 일원으로 가게 되어 이사를 가게 됐으니
고향행이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였다.
집을 짓고 이듬해였던가 어머니가 풍으로 쓰러지고 다음 해에 아버지마저 같은 병으로 거동이 불편했었다.
청주의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돌고 서울의 유명하다는 한방병원에 입원까지 하셨었어도 차도가 없으셨다.
하는 수 없이 음성에서 목장을 하는 형이 부모님을 모셔갔다.
내가 모실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결정에 형 내외가 많이 당황했을 건 당연하다.
문간방에 침대를 나란히 놓고 내외를 모셨었다.
부모님을 형네로 보냈어도 자식들 마음은 늘 부모님 곁을 서성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누나와 동생을 데리고 형 네로 가서 부모님을 뵈었다.
콧날이 마가렛 대처수상보다 날카롭던 형수는 세침 하니 눈을 내리깔고 시동생들을 외면했었다.
형의 스트레스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니들 내가 부모 잘 모시나 감시하러 왔지? 돌아가!"
온 김에 부모님을 안아다 부엌에 다라이에 물 받아 씻겨드리고 휠체어에 몸을 실어 동네 한 바퀴를 돌았었다.
아버지는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가없이 쳐다보셨지만 끝내 그 눈길을 피했으니
쓰라린 가슴이야 어찌 다 글로 다할 수 있을까?
지지리도 못난 나는 방구석에 이불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던 세월이 아득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병이 난 지 삼 년 만에 돌아가시고 일찍 병이 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이 년을 더 사시고한동안
나의 봉양을 받가다 돌아가셨다.
선영 양지쪽에 부모님을 모셨다.
덧없는 세월 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가물가물 할 무렵 부모님의 무덤 아래에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내가 기획하고 실행했으니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었고 누가 도우려 하지도 않았다.
가끔가다 형제들이 막걸리 한 병 사들고 와서 위로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손에 흙을 만지려 하지 않았다..
무거운 돌을 다루는 일이라 추운 겨울이 제격이다.
내가 돌 쌓으라고 누가 돌모아 놓은 것은 아니다.
주위에 있는 돌들을 언 땅에서 캐고 운반했다.
기단석은 큰 돌로 쌓고 점점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올려 쌓았다.
언 손을 모닥불에 녹이고 돌에 찧어 손발에 멍이 들고 때로는 체인불록 쇠뭉치에 아구창을
맞아 입안이 터져 응급실행을 이루면서도 탑 짓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 해에 한 기씩 돌탑이 쌓여 무리를 이루고 있다.
내가 돌탑을 쌓는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탑이란 인간이 하늘에 있는 절대자에게 다가가려는 현상적 몸짓의 발현이 아닐까?
나도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가까이하려는 놀림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 가신 지 삼십삼 년이 지났다.
간밤에 아버지가 돌탑 위 하늘정원 정자나무 아래 앉아서 막걸리를 기울이고 계셨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신다.
내일은 막걸리 한 병 사가지고 가서 돌탑 위에 부어드리며 아버지의 못다 하신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첫댓글 참대단하십니다 온정성다해 돌탑까지 손수싸신
마음에 경이을표합니다 수고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체질이라 그런거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