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
사도 18,23-28; 요한 16,23-28 / 부활 제6주간 토요일; 2024.5.11.
‘웰빙(well-being)’이나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결국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은 인간의 욕구입니다. 이 보편적인 인간 욕구에 대해 성경은 ‘영원한 생명’과 ‘파스카 과업’으로 대답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인간의 신적 기원과 또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신적 운명을 의식하고, 이 기원과 운명 사이에서 신적인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세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살고 그리고 ‘파스카 과업’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이들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초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계속 강조하시던 부활의 기쁨에 대한 고별사 말씀을 마무리하시면서 당신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결정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 당신 신원의 신적 기원과 신적 운명에 관한 이 말씀이 그분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사의 결론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저 세상에 느닷없이 내동이쳐진 우리네 존재가 고통의 바다인 인생에서 고생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무덤만 남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만, 믿음이 있으면 우리네 존재가 하느님께 근원을 둔 신적 존재로, 다시 말하면 그분의 자녀로 격상될 뿐만 아니라 세례 때에 그분이 주신 영적인 몸으로 생기를 얻은 영혼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세상에 왔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놓고 우리 다음 세대가 또 그 사명을 이어받아서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만들어 나가게 되면,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가득히 채워질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현세에서의 삶이 부유하거나 화려했다 하더라도 육신의 죽음으로 그 삶도 무덤 속에 묻히고 말 것이지만,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생을 마친 후에는 살아있는 동안 행한 업적대로 심판을 받고 나서는, 그 상급의 여하와 정도에 따라서 천국에 올라가 현세에 남아있는 이들을 돕는 천사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품위 있고 고귀한 삶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고별사의 결론은 우리의 목표가 되어 줍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로 가는 것. 이에 대한 믿음이 바로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의 신적 기원과 신적 운명을 의식하는 일이고, 이 기원과 운명 사이에 놓인 우리의 현세 인생도 영원한 삶의 품위로 끌어올리는 비결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제3차 선교여행을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단 제1,2차 선교여행에서 건설해 놓은 공동체들을 순서대로 둘러보면서 점검도 하고 격려도 하는 일정을 거친 후에 에페소에서 삼년을 보내면서 중점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당시 에페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페소는 ‘동방의 로마’로 불리며 번성하고 있었지만 그만치 우상숭배도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로서는 이 에페소를 복음화시키는 일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전체와 나아가서는 로마제국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여길 만 했습니다. 나중에 바오로와 그 제자인 디모테오의 뒤를 이어 사도 요한이 에페소 선교를 물려받아 주변 여섯 도시에 있던 교회를 돌보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에서보다도 더 큰 규모로 그리스도 신앙의 세상을 늘려가다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어 지도자들이 모조리 로마에서 치명하게 된 덕분에 신앙의 중심이 로마로 옮겨가게 되지요.
그런데 그 무렵에 아폴로라는 선교사가 에페소에 왔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의 유다인 출신인 그는 구약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가르쳤던 선교사였습니다.(사도18,24-25) 그의 말솜씨가 워낙 달변(達辯)이었던데다 열정을 가지고 에페소 시민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으므로 이미 에페소에 도착해 있던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도 아주 반갑게 그의 설교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활동에 이어 불과 성령의 세례를 받고자 하셨고, 또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도 당신께서 받으신 불과 성령의 세례를 주고자 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기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는 일에 대해 강조하면서 세상의 죄를 씻을 수 있는 대속과 희생을 필요로 하는 사랑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자 요한도 인정했던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는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계승하고 수행해야 할 역사적 사명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었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는 아폴로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사도직 활동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길을 정확히 가르쳐주었습니다.(사도 18,26)
이 부부의 활약은 바오로가 직업이 같았던 평신도 부부와 동업하면서 이 노동으로 만난 부부를 상대로 선교사로 양성했다는 것, 그리고 그 수준이 선교사 아폴로를 한 수 가르쳐줄 정도의 성경 지식과 선교 사명 의식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높았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는 아퀼라보다도 프리스킬라의 이름이 앞에 나오게 될 정도로(사도 18,26) 여성 평신도의 역할이 돋보였다는 것 등을 알게 해 주는 동시에, 그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인생길을 따라간 평신도 사도직의 모범이라는 것도 알게 해 줍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도 강완숙 골롬바를 비롯한 여성 평신도들의 빛나는 모범이 있었습니다. 강완숙 골롬바는 한양 북촌에 있던 자기 집을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거처 겸 성사 집행처로 내놓았으며, 최인길 마티아와 함께 주 신부를 도우는 한편, 명도회의 여회장으로서 부녀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서 입교자를 많이 늘린 선교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지도자 역할을 한 선비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정약종은 최초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지었는데, 그는 강학회에서 교리에 통달했던 이벽으로부터 직접 천주교 교리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이벽이 지은 ‘성교요지’와 한역서학서들을 참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경기도 마재 교우촌에서 사귄 황일광 시몬이라는 천민 출신의 교우로부터 민중 언어는 물론 그에 담긴 민중의 심성 속에 전해져 내려오던 전통적 신관을 배워서 이 교리에 담아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신화되어 버린 민간 무속에 대하여 영적인 식별을 정확히 해 냈으므로, 교우촌 신자들에게 백 년 동안이나 광범위하게 읽혔습니다.
주문모 신부가 신자들의 교리 교육을 위해 명도회(明道會)를 설립하고 여자 회장이었던 강완숙 골롬바처럼 남자 회장으로 정약종을 임명한 후에 교리서 저술을 맡겨서 ‘주교요지’가 쓰여지게 된 것이었는데, 평신도로서 정약종이 쓴 이 책이, 프랑스 선교사 마이야(馮秉正, Joseph Marie Anne de Moyriac de Mailla)가 중국에서 지은 ‘성세추요(聖世蒭蕘, 대중교리서, 1733)’라는 한역교리서보다 더 뛰어나다고 주 신부도 평한 바 있습니다.
그 후 백 년이 지나 박해가 종식된 직후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Baudounet, François Xavier, 1859-1915) 신부는 호남 지방의 교우촌들을 둘러보고 나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이런 보고서를 써 보냈습니다. “새로 입교한 교우들의 협동심은 감탄스럽습니다. 그 중에서 뛰어난 미덕은 그들 서로가 사랑과 정성을 베푸는 일입니다. 현세의 재물이 궁핍하지만, 사람이나 신분의 차별 없이 조금 있는 재물을 가지고도 서로 나누며 살아갑니다. 이 공소를 돌아보노라면 마치 제가 초대 교회에 와 있는 듯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때의 신도들은 자기의 전 재산을 사도들에게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청빈과 형제적인 애찬을 함께 나누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곳의 예비자들도 선배 형제들의 표양을 본받고 있습니다.”(1889. 4. 22)
‘주교요지’를 통해 얻어진 교리 지식을 실천한 결과가 이렇듯 놀라웠습니다. 교우촌 신자들은 함께 나누는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직접 실천하였습니다. 어려운 이웃은 물론이고 부모 잃은 어린이에게는 대부(代父)와 대모(代母)가 되어 힘써 돌보았으며, 죽을 위험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세(代洗)를 주어 그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습니다.
보편 초대교회에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가 사도 바오로를 도와 평신도 선교사로 활약하면서 많은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었듯이, 한국 초대교회에서도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강완숙 골롬바가 명도회의 남자 회장과 여자 회장으로서 많은 이들을 하느님께 이끌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신적 기원과 신적 운명을 의식하고 현세의 인생을 ‘영원한 생명’ 또는 ‘영원한 삶’의 품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인간의 소명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살이는 자기 혼자서만 잘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모든 이가 인간다운 품위를 갖추고 살아가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과 더불어 고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파스카 과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