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두 해 동안 목수의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통나무집을 짓는 일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동안 주로 시멘트로 집을 짓는 것만 보다가 나무로 집을 짓는 모습에 신기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들려서 유심히 보기도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평당 가격이 얼마냐? 나무가 썩지 않느냐? 등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둥 자기 나름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힘들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자꾸 말을 시키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말만하지 마시고 저 좀 도와주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면 개면적은 듯이 돌아가곤 했습니다. 저는 이런 말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리세인들이 생각났습니다. 최근 들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만 하는 바리세인들(눅 11:46)의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서 너무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씀이 없는 ‘은사주의’는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에 빠질 위험이 있고, 능력이 없는 ‘말씀주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바리세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상 우리 교회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이기에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종교적이고 말씀주의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1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말씀만 강조하다보니 행동은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냉대를 받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와 귀만 커져 판단에는 앞섰지만 행동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머리로만 살려고 하고 손과 발로는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화이트칼라를 지향하고 불루칼라는 찬밥 신세가 된지 오랩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소득을 올릴 수만 있다면 그 쪽을 택하려고 하기에 요즘 공대(工大)가 푸대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편하게 앉아서 성경공부만 하고 지식만 쌓아가는 쪽을 선택하지, 몸이 힘든 영적 사역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을 행하는 것은 많은 기도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3D에 속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은사 보다는 말씀을 아는 것이 더 고상해 보일 것입니다.
말씀이 결여된 은사주의는 불교나 무속과 다를 바가 없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불교 선수행이나 무속의 강무행위와 기독교의 은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씀뿐입니다. 말씀에 기초를 두고 행하는 능력 행함은 그래서 불교의 선수행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말씀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은사를 행한다면 행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지켜보거나 동참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을 동반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반드시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며, 그 능력의 가장 핵심은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세대에 따라서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다양한 능력들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과 능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님 나라의 두 본성이기도 합니다. 즉 말씀이 곧 능력이고, 능력이 곧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했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기본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사람을 통해서 통전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분리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통전적으로든 분리적으로든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틀에서 보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초석들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균형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은 능력을 돕는 위치에 서야 하고, 능력 또한 말씀을 돕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도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하게 설 수 있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비판하는 태도를 취해온 것입니다.
절대 다수에 속하는 말씀주의자들이 우선 이 점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중요한 것 못지않게 기도도 중요합니다. 성경공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피상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이를 부인하려고 할지 모르지만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과 견주면 분명한 차이가 납니다. 또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역시 수준의 차이가 납니다.
두 가지를 다 흡족하게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성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말씀 공부를 통해서, 능력을 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쪽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기질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반은 이성적이고 반은 감성적입니다. 보편적으로 남성은 이성이 강하고 여성은 감성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훈련은 말씀훈련과 느낌훈련 두 가지로 구분해서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제까지 무시되어온 감성훈련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누구 못지않게 말씀교육을 시킬 수 있겠으나, 제가 하지 않아도 할 사역자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감성훈련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전문 사역자는 눈을 비비고 찾아야 겨우 찾을 정도로 희귀하기에 이에 강조점을 두고 여러분들에게 당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EQ’(Emotional Quotient)가 요즘 세상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시대입니다. 서구의 말씀주의가 변화시키지 못했던 아시아를 복음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들고 가야 할 것이 감성으로 무장된 능력 사역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아시아는 교리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의 불교는 소승불교입니다. 힌두교 역시 그러합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면 그들을 구원할 길이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머리와 귀만 가지고 교회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태도가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기에 말만 앞세우고 행동하지 않았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자는 소리가 교회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반성 없이 오랜 세월동안 목회자 일방주의로 인해서 그들이 편하고 유리한 형태로 교회가 발전되어 왔음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말씀과 능력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 시급합니다. 일방적으로 말씀주의에만 치우쳐 있는 한국교회를 능력으로 채워서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무장된 능력 사역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고학력을 갖춘 오늘날 말씀과 능력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개인적인 조건들은 다 갖추었다고 봅니다. 이제 지도자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앞장서서 제도를 새롭게 할 때입니다. 말씀과 능력이 균형이 이루어질 때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이 땅에 서게 될 것입니다.
( 장봉운 목사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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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대로 되어있는 교회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해야합니다.그동안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양적성장을 위해 양과 염소를 적극적으로 가리지 않았고 이단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포용적인 자세를 취해왔습니다.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합니다.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한 대추수꾼의 영적임무를 시급히 준비해야하고 주님오실날을 예비해야 하기때문입니다. 회칠한 무덤이 즐비한 이 타락한 한국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추천하는 한교회 한교회가 길잃고 헤메는 주님의 양떼들을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인도할 것입니다.또한 이 마지막때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기를 원하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을 주님의 품으로 바르게 인도하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여 화이팅~
첫댓글 한국 교회에 능력이 많이 죽은 느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병고치는 은사나 기타 등등 우리도 능히 하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많이 중요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균형 맞추는 교회가 저도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글 올리신 분 걱정과 의견에 동의 합니다
서울이면 전 강남구청역에 있는 큰믿음교회 추천합니다 저는 지방에 살구요 큰믿음교회는지방에도 지교회가 있어요 15개정도 지역에 았더라구요.카페도 많이 활성되어았으니 참고하시구요 . 제개인적인 신앙으론 질문에 가장 가까운 교회입니다 ..조건이 있어요 ...꼭 기도를 한시간쯤하시고
^^;성령님께 여쭈세요.
큰믿음교회에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예배를 드렸읍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합니다.
아멘!!!!!!
말씀과 능력을 왜 분리해서 생각하시나요...그 사고 방식자체가 문제입니다....
사도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씀과 능력이 하나였습니다.
윗분 말씀처럼 말씀과 능력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구로구 궁동 연세중앙교회(윤석전목사님) 강력추천합니다. 설교시간시간마다 온 힘을 쏟아붓고 주님의 심정을 전하는진정한 바울같은 목사님이십니다.
왜 다들 제대로 된 교회가 없다고 할까요? 제 주변엔 좋은 교회들 많던데요 전도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항상 열심히하시고...가끔 음료수도 드린답니다 ㅎㅎ
ㅎㅎ진리가 희석되고 성경말씀과는 다른 교리중심이며 주님의 임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