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의식과 한류 현상
사도 1,1-11; 에페 1,17-23; 루카 24,46-53
주님 승천 대축일; 2024.5.12.
1. 승천의 신비
지상 생애를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성령으로 다시 내려오시어 우리 모두도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안에 현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시어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셨다 함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실하게 하느님의 반열로 인정을 받으시고 전권을 받으셨음을 뜻하는 표현이고, 공생활 3년 동안 지상에서 이룩하신 하느님 나라의 삶이 온 누리에서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2. 승천의식, 공동생활의 힘
초대교회 시절, 신약성경의 공동체들은 말씀과 성찬과 사랑 안에서 발현하신 예수를 뜨겁게 체험하고 나서 부활 신앙을 뚜렷하게 간직하게 되자 자신들은 ‘하늘의 시민’(필리 3,20)이 되었다는 승천의식을 자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하늘의 시민’들은 거룩한 전례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예수님께서 간직하셨던 고상한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대하며, 성령의 기운을 받아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 놓을 수 있게 되면서 공동생활 양식을 이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공의회의 주제, 공동체
그 후 천5백여 년이 흐르고 나서 잊어버렸던 이 승천의식을 상기시켜 준 인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였습니다. 공의회에 모인 교부들은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말씀과 성찬과 사랑의 섬김이라는 현존 표지를 통해 우리도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한편,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승천의 은총이 ‘공동체’라는 화두를 던져 주었습니다.(사목헌장, 제2장) 공동체가 승천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4. 공동체에서 공동선으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존엄한 존재로서의 새 인간”(사목헌장, 22항)이시며, 우리는 그분이 하느님을 닮으셨듯이 그분을 닮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고, 이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도 어김없이 해당되는 보편 진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인간 존엄성이 실제로 존중되기 위해서는 인간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는 하느님 계획 속에 이미 예정된 부르심이라고 밝혔습니다.(사목헌장, 24항) 따라서 사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인간 공동체를 촉진하고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선이 가장 필요해집니다.(사목헌장, 26항) 바로 이 점에서 사회의 구성원들끼리는 물론 인류가 국가 간에도 협력해야할 당위성이 존재합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유도, 인간 공동체를 위해 사람들이 연대하고 공동체 안에서 일치할 수 있기 위한 목적입니다.(사목헌장, 32항) 이것이 또한 교회의 존재이유요 활동목적이기도 합니다.(사목헌장, 45장)
5. 공동선 협력을 통해 인류 공동체로!
성령께서는 이 공의회를 통해 교회를 움직이시기에 앞서, 꼭 20년 전에 국제연합을 결성하도록 정치인들의 양심과 지성을 일깨워 세상을 움직이셨습니다(1945년), 모처럼 인류의 화합과 세계의 평화를 모색하고자 모인, 이 분명한 시대의 징표를 보면서 교회도 성령의 이끄심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쇄신의 여정을 걷게 된 것입니다.
국제연합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민족들의 평등권 및 자결 원칙에 기초하여 국가 간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이러한 국제연합의 설립목적은 공동선을 위한 협력으로 궁극적으로 인류 공동체를 이룩하고자 새 하늘과 새 땅을 실현하려는 교회의 존재이유와 활동목적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6. 국제연합의 한계
인류 공동체를 향한 원대한 이상에 따라서 국제연합의 주요 설립주체였던 승전국 다섯 나라들은 서로가 거부권을 갖는 안전보장이사회라는 특별 기구를 설치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중국 그리고 러시아, 이 다섯 나라가 세계 평화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으로 한 나라라도 반대를 하면 나머지 나라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던 안전장치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와는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고서 전쟁을 일으킬 나라는 지구상에 한 나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평화 수호에 앞장서겠다던 이 나라들이 앞장서서 전쟁을 일으키면 속수무책이었고, 실제로 이들 나라들이 수없이 전쟁을 많이 일으켰습니다. 국제연합이 설립된 후에도, 미국은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영국은 아르헨티나에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에서 전쟁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이며 위선적인 구조로 인해 ‘안보리 무용론’, 더 나아가서는 ‘국제연합 무용론’까지도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7. 하드 파워(Hard Power)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
이렇게 어이없고 답답한 국제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이들 나라들이 가진 힘은 경제력과 군사력이라서 평화를 위협하는 패권적 속성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을 방지하기는커녕 전쟁을 일으키기 일쑤인 하드 파워를 가지고 평화를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뚜렷한 한계를 넘어서는 소프트 파워에서 이들 나라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고, 그 영향력의 실체가 ‘한류’입니다. 한류는 1990년대 말부터 유행하게 된 한국의 문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겨우 30년밖에 되지 않은 한류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전까지 유행하던 강대국들의 영향력은 18세기 프랑스,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 등, 한 세대 동안에나 또는 기껏해야 한 세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펜데믹 위기를 거치면서 이 강대국들의 허접한 실체가 드러나자 그 영향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류는 한 세대가 지난 지금에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앞으로 더욱 그 파장이 커져 나갈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전의 흐름들은 자국 중심으로 패권을 추구하는 양상으로 퍼져 나갔고 기성 세대들이 호응을 했던 데 비해서, 한국 문화의 흐름인 한류는 평화와 공존번영을 지향하는 바탕에 따라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젊은 세대의 호응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어서 그 수명이 훨씬 길 것이라고 예상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8. 한류의 위상
제68차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약칭 UNCTAD)에서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한 바 있습니다(2021.7.2.). 국제연합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한국이 국제연합의 이상과 취지에 부합하는 길을 걸어왔음을 국제적으로 보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국제연합 사무총장은 한류의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으로 하여금 작년 제76차 총회(2021.9.20.)에서 연설과 공연을 하도록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9. 한류, 경제 기술적 요인
이로써 한류가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체라는 이상과 가치에도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판이 국제연합에 의해 국제적으로 공인되자, 이를 분석하는 논평들이 선진국들의 전문가들에게서 쏟아졌습니다. 그 중 하나는 경제적인 배경과 인터넷 통신 기술의 발전요인을 중요시하는 견해입니다. 전후에 미군 주둔으로 안보 걱정 없이 미국의 경제원조까지 받아서 경제를 부흥시켰는데, 코로나 펜데믹 사태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참에 마침 넷플릭스(Netflix)라는 플랫폼 회사가 한국 작품에 주목하여 투자를 했기 때문에 여러 한국 작품이 세계인의 안방에서 관심을 끌었으며, 그러다 보니 경제력이 성장한 한국인들의 세련된 매너와 문화가 세계인들의 눈에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0. 한류, 문화 역사적 요인
또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배경을 꼽는 견해가 있습니다. 한국은 겨우 70년만에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저력이 오래 전부터 숨겨져 있었는데 그것이 문화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고려 왕조 때에도 원나라와 명나라에 ‘고려양’(高麗樣)이라는 한류를 유행시키기도 했을 만큼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을 이룩했던 선진국이었으며, 이는 오랫동안 높은 지적 전통을 간직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주변 나라들로부터 침탈을 당하거나 식민지배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저항하여 기어코 막아냈으며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그 백성을 노예로 삼으려 한 적도 없었던 아주 예외적인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힘을 숭배하지 않는, 이런 평화 수호의 전통이 있는 데다가 고난 속에서 단결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풍까지 간직한 나라이기 때문에 약소국들로부터 한국처럼 되고 싶다는 호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인들은 고난을 당할 때의 한스러운 감정을 폭력으로 나타내지 않고 흥겨운 정서로 승화시킬 줄 알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정으로 감싸줄 줄 아는 민족이라서 전 세계인들 안에서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11. 한류의 뿌리, 선함과 의로움
하지만, 세계인들이 한류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경제나 문화보다 더 근본적으로 가치 덕분입니다. 바로 한민족의 역사 초기부터 내려오는 경천사상과 여기서 우러나오는 효의 윤리 그리고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나타나는 선함과 의로움의 가치입니다. 이것이 한류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지적 전통에 바탕한 문화와 예술이 꽃피었다던 고려조와 조선조에도 지배층과 엘리트들은 사회적 신분으로 백성을 차별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질적인 사회악 현상을 타파한 것은 조선조 말기에 사회적 신분차별이라는 사회악에 맞서 하느님 앞에 평등한 교우촌을 세웠던 한국의 초대교회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신앙 진리를 알아보고 교우촌을 세워 공의회를 앞서 살았고, 이 교우촌 현상으로써 한민족 역사 안에 숨겨진 승천적 징표를 일깨워준 존재입니다. 또한 이들은 국제연합이 세계 인권 선언을 발표하기 백년도 더 이른 시기에 앞당겨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으로 국제연합이 설정한 인류 공동체를 실현한 역사의 위인들로서 선함과 의로움의 가치의 싹을 틔운 한류의 원조입니다. 지금 한류가 전 세계에서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이 선함과 의로움의 가치가 그 안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어느 나라의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고유한 특징입니다.
12. 공동선으로 공동체를!
이제는 우리가 선조들이 선함과 의로움의 가치로 실현했던 인류 공동체의 이상을 한류에 실어 모든 세계인들에게, 특히 우선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이웃인 아시아인들에게 보내야 할 때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적 정신, 모든 이를 이롭게 하려는 공동선의 추구,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취지가 한류에 담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어 성령을 통해 이룩하시는 이 새 역사는 온 땅에 하늘을 이룩하시는 일입니다. 이 같은 보편화 과업은 믿는 이들도 당신처럼 살게 되는 부활의 은총으로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이고, 그 결과 승천적 삶을 살도록 촉구하고 기도하는 날이 오늘, 승천 대축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늘의 시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