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회근 선생의 설법(229) ; 역사상 어느 시대나 정치가 종교 문제를 끌어들이면 실패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자적헌]

정치와 종교

번지가 지혜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치 지도자의 도리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롭다 하겠다.”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자仁者가 무슨 일에 대해서나 먼저 어렵게 보고 그 얻는 것은 뒤로 한다면, 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樊遲問知。子曰: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問仁。曰: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문인 왈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인자선난이후획 가위인의

여기서의 ‘知’(지)는 ‘智’(지)자로 읽어서 지인용智仁勇의 ‘智’(지)가 되는데, 고대에 ‘知’와 ‘智’는 서로 통용되었습니다. 번지樊遲는 공자의 학생인데, 수레를 몰았던 사람으로 앞에서 나왔기에 다시 소개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가 어느 날 공자에게, “무엇을 참 지혜라고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지혜는 과학․철학을 포함하지만, 여기서는 정치 철학에 가깝습니다. 공자는 아주 묘하게 대답하기를, “정치 지도자의 도리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롭다 하겠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했습니다.

무민務民은 무엇일까요? 지도자입니다. 정치에 종사하는 지도자가 바로 무민務民인데, 백성을 지도한다는 것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敬鬼神而遠之)는 말은 공자의 명언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공자는 종교를 믿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공자는 종교를 대단히 믿었는데, 그는 귀신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과는 그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천도는 멀고 인도는 가깝다.”(天道遠, 人道邇)는 것인데, 귀신은 천도의 문제여서 우리와는 멀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은 인도人道로서 우리와 가깝습니다. 정치․교육․경제․군사․사회는 모두 사람의 일로서 귀신을 위주로 삼아서는 안 되므로,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것이지,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은 종교 이야기만 하면 사람들은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런 태도를 대단히 옳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종교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신인데 이해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큰 미신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은 바로 자기에 대한 미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미신이 아닙니까?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믿는 것이야말로 미신으로서, 지금 당신이 종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정의를 내리는 것이 바로 큰 미신입니다. 공자는 절대 미신을 믿지 않았으며,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했는데,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고대 역사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따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진시황이나 한고조, 당․송․원․명․청대까지 자신이 신앙을 했든, 반대를 했든 종교와 관계를 맺지 않는 황제는 거의 하나도 없었습니다.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인류 문화에 있어서, 종교적 관점에서 정치를 보면 어느 지역의 정권이든 종교가 만들어 낸 하나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정치적 입장에서 종교를 보면, 어떤 종교도 정치의 한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순수한 종교 신도는 정치적 입장에서 종교를 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서양의 종교는 상관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역사상 어느 시대나 정치가 종교 문제를 끌어들이면 실패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중국 역사상 진한秦漢 이래로, 삼국시대의 황건적이었던 장각張角, 원나라 때의 백련교白蓮敎, 근대의 홍등조紅燈照나 의화단義和團, 태평천국太平天國 사건 등은 모두 정치가 종교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대체로 정치가 종교를 끌어들여 가지고 놀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의 경우, 십자군의 동방 원정 같은 큰 전쟁은 종교 문제 때문에 일어났던 것인데,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그 하나의 예입니다.정치와 역사 문화는 아주 오랜 경험이 요구되는 것으로 어린애처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바로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종교사를 얘기해 보면, 불교는 현장법사가 인도에 가서 경전을 구해온 이후 당태종이 이를 받들었습니다. 아울러 당태종은 도교도 받들었습니다. 당대唐代의 진정한 국교國敎는 도교로서, 조정 문무백관의 서열에서 첫째 자리는 도교였으며, 불교는 둘째 자리였지만 대우 면에서는 평등했습니다. 유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역시 전례대로 받들었으며,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숭배하고 존경했습니다. 옛날의 기독교인 경교景敎도 당태종 때 중국에 들어왔는데, 당태종은 경교를 위해 비문碑文까지 쓰고, 광주廣州에 예배당을 짓도록 허락했습니다.

당태종은 그렇게 정치적 패기가 컸던 사람으로, 각 종교를 모두 좋게 보고 어느 종교에 대해서나 “앉으십시오. 차茶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는 식이어서, 자신이 무슨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뒷날 그는 불교를 믿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 태도상에서 그는 절대 공평하여, 과거에 비록 헌법은 없었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공평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 지도자의 도리와 귀신의 일과의 관계는 완전히 미신으로 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귀신의 일은 때로는 사업이나 정치에 대단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위 본문에서 ‘경’敬이라는 한 글자는 아주 중요한데, 이는 대단히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을 예로 들면, 그는 황제가 된 후 황제의 관을 발로 차 버리고 이런 관 따위가 무엇이냐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슬람교 국가를 공격하면서 이슬람교 사원을 보면 무릎을 꿇고 남들처럼 예배했는데, 이것이 바로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는 도리이자 가장 현명한 지혜로서, 결코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일이지만, 큰 일에 처해서는 함부로 어느 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이런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가 됨을 설명했을까요? 위에서 공자가 말한, “정치 지도자의 도리”(務民之義)라는 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즉, 한 나라 지도자의 지혜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보통 한담하듯이 귀신이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토론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번지는 뒤에 또 인仁의 문제를 물었습니다. 여기서의 인은 인의 체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의 용用, 즉 올바른 사람으로서 처세하는 인을 말합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다른 사람을 이끌어 가는 자는 인애로운 마음이 극히 필요해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나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것도 유가의 “일을 성실히 한다.”(敬其事)는 사상입니다. 특히, 총명한 지도자는 흔히 세상일을 가볍게 보기 쉬워, 소동파처럼 “나는 총명으로 일생을 그르쳤다.”고 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나 먼저 어려운 쪽을 생각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어려운 쪽에서 문제의 여러 면을 보고 연구한 다음, 마지막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고 중도中道의 성과를 얻는 것이 바로 인의 용用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에게도 편리하고, 남에게도 편리하며, 백성들에게 더욱 편리합니다.

요 몇 십 년 동안 보면, 젊은이들은 서양 문화의 사고방식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즉, “틀렸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면 하지 못한다. 틀려도 상관없다. 다시 고치면 된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치 면에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 말한 나폴레옹의 기백을 인용하기 좋아하는데, 이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인이 박힐 정도이며, 대단한 기백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나폴레옹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성공할 줄 몰랐던 것은 중국의 항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양 문화를 말하자면, 미국은 과학을 빼놓고는 깊이 파고들어 보면 정말 볼 만한 것이 없고,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들 수 있는데, 프랑스에는 나폴레옹의 개선문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유럽인들은 나폴레옹을 숭배하지만, 나폴레옹 정도의 사람들은 중국 역사상 얼마든지 있어서 열 손가락도 더 꼽을 수 있는데 그게 뭐 대단하다는 것입니까?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노련한 사람은 이 ‘난’難자에 유의해야 합니다. 무슨 일에 대해서나 먼저 어렵게 보고 그 얻는 것은 뒤로 하는 것, 이것이 곧 인의 도리입니다.

남회근 선생의 논어강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