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탕을 이루는 세 항목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 세 가지만 잘 숙지하면 참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분히 불교적이어서 어떤 사람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진리에 대한 탐구를 돕는 가르침으로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세존이 발견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불교가 종교처럼 비치긴 했어도, 사실 불교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 실천적 수행을 가르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삶의 본지를 탐구하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아무튼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모든 행위의 상속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존중이다. 그리고 셋째는 생성된 모든 건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첫째에 해당하는 그 어떤 행위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고, 이러한 과보(果報)는 자기가 감당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은 엄정하기 그지없다. 모든 게 흔적을 남긴다는 데, 어떻게 허투루 처신하겠는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삶의 자세는 자연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의 누군가가 눈부신 성공을 이룰 때 함께 기뻐하되 과도하게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않게 되고, 또 누군가가 몹시 딱한 상황에 부닥쳐 있을 때 지극한 연민을 품되 과도하게 그러한 상황에 대해 노여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게 인과응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둘째인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태도는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자기가 이 세상의 삶을 살도록 낳아서 길러준 부모는 누가 뭐래도 엄청난 수고를 해준 분들임이 틀림없다. 다소 부족하거나 미숙한 점을 지녔더라도 자기에게 그렇게 애쓰며 헌신한 부모를 도외시하고, 그 외의 대상이나 사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되기는 어렵다. 부모를 소중히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만큼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즉, 삶을 얼마나 참되고 풍요롭게 사느냐 하는 건 부모를 어떻게 여기느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셋째인 모든 건 시시각각 변화 도상에 있다고 하는 건 항상(恒常)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생성되었다가 소멸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그리 욕심내거나 노여워할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본질을 모르고 그것이 영속하거나 견고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집착하거나 속상해하곤 한다. 이렇게 고통이나 괴로움은 부질없는 것에 근거해 스스로 지어낸 착각에 불과하므로, 닥치는 모든 것에 ‘그렇구나!’ 하고 지켜보는 게 평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이들 중 첫째와 셋째는 자신의 내적 성장을 도모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지침이 될 수 있다. 모든 행위의 값을 낱낱이 다 본인이 받게 마련이라는데, 어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또 상세히 살펴보면 모든 게 지나가는 것일 따름이라는데, 뭘 그리 마음 졸이며 애를 태운단 말인가. 이 두 가지를 잊지만 않는다면 자기를 잘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째인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섬기는 일은 더불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바탕을 제공하는 것 같다. 본인 자신은 아무리 훌륭해도 주위에 따듯한 시선이나 손길을 주지 않으면, 더불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그리하여 주위로부터 반가운 존재로 취급받지 못한다면, 그러한 삶이 무슨 가치를 지닌단 말인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홀로 독야청청 살다 갈 게 아니라, 주위에 온기를 주는 존재로 살다 가야 의미가 있다. 주위에 아무런 이로움을 주지 않고 자기만 잘 산다는 게 무슨 보람이냐는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도 부모라는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는 게 필요하지만, 특히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은 다른 무엇보다 자녀가 자기네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공경하도록 만드는 일에 마음을 썼으면 한다. 그런 것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자녀가 바깥세상인 대상이나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을 젖혀두고 오로지 자녀의 경쟁력을 위해 애쓰는 요즈음의 세태, 그런 흐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도 달리 어쩌지 못하는 유약한 부모들이 많다. 과도한 자녀 교육비로 노후생활을 불안해하고, 성취에 대한 기대나 욕심으로 자녀와 갈등하고, 뒤늦게 부질없음에 허탈해하는 자들이 꽤 많다. 어쩌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든 아니면 독자적일 수 없는 유약함 때문이든 딱하기 짝이 없다.
정말이지, 세태나 유행이 어떻든 아닌 걸 아니라고 여기며 휩쓸리지 않는 힘을 키워야 하지 싶다. 자칫하다가는 이 소중한 삶의 기간이 씁쓸하게 그늘질 것 같다.
첫댓글 "주위에 온기를 주는 존재로 살다 가야 의미가 있다"
"과도한 자녀 교육비로 노후생활을 불안해하고,"
불쌍한 시니어들 많아요..
좋은 글
감사해요..
월요일 23일 온도 뚝~~~
다시 겨울 옷차림이네요..
행복하세요..
자녀 교육에 과도하게 돈을 쏟아붓는 일은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싶습니다.
AI 가 너무 급속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이제는 몸으로 하는 기술직 만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요.
세상이 어찌나 빨리 바뀌는지 정신을 차리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