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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밤, 구룡포의 반골들이 포항우체국 그 부근에 있는 찻집을 행해 어깨를 빳빳이 세운 채 걸어갔다. 소암 이규하 옹이 즐겨 찾는 지하다방이었다. 규하가 앞장을 섰고 혁환이가 뒤따랐다. 그 뒤로 나와 찬규가 줄래줄래 따라 들어갔다. 우리 네 사람 중 다방에 관한 한 소암이 대장이었다.
한복차림의 마담이 우리 가운데에 앉자 차가 날라져 왔고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별 주제도 없는 말을 웅얼웅얼 이어 나갔다. 사이사이 소암은 마담의 보드라운 손을 한 번씩 쓰다듬고 있었다. 워낙 스킨십을 좋아했다. 그리고 여자를 좋아했다. 물론 남자도 좋아했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 도덕 하나만 가지고 한 평생을 훌륭하게 살아갈 도덕군자인 소암. 하지만 그도 도덕 이전에 남자였다. 어쩌면 우리 네 사람 가운데 가장 로맨틱가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앞이니까 저런 연출도 가능하지 남모르는 객들 앞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목숨을 내걸 만큼 모진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 끝이라 사랑에 늘 목말라하곤 했다.
커피가 삼분의 일 정도 남았을 때 잔을 탁자에 놓으면서 나는 마담을 쳐다보았다. 40 전후의 마담은 예뻤다. 얌전했다. 안동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김천 그 쪽이라고 했다. 저렇게 아담하고 예쁜 구석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이 험한 물장사 길에 나섰을까.
“마담.”
조물딱 조물딱 마담 손을 만지며 눈이 홍시가 되어 가고 있는 규하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마담이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네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노.”
“나이요?”
“응. 솔직하게 말해봐라.”
마담이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규하를 쳐다보았다.
“이 아저씨가 제일 많이 들어 보이네요.”
“하, 마담이 점쟁이네.”
"하하하."
규하가 웃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혁환이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그 말이 떨어지자 마담이 혁환이를 가리켰다.
“이 아저씨요.”
“아이고, 소문난 족집게가 이 다방에 있었네."
"흐흐흐."
하고 혁환이가 웃었다.
"진짜 용타!”
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찬규였다. 물어보나 마나다. 해서
“마담, 내 나이가 얼마로 보이노?”
마담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찬규도 바라보았다.
“저기, 서른 여덟 정도요.”
“하! 너거 들었제!"
"컬컬컬."
찬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일 당장 간판 하나 걸어라. 정말 눈이 보배네. 어예 그래 잘 맞춘노!”
규하와 혁환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 사람은 호르몬이 너무 부족해 얼굴이 꼬질꼬질 말라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호르몬이 너무 넘쳐 머리숱이 훤하게 벗겨지고 있었다.
“오늘 찻값은 나이가 제일 많은 어른이 낸다. 이설 없제?”
“없고말고요. 형님이 내소.” 하고 찬규가 거들었다.
어젯밤 구룡포 사이트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그 얼굴들을 보면서 나는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너무 웃어 눈물 한 방울이 삐어져 나왔다. 하, 늙는구나! 사나이 나이 50이 넘으면 저렇게 늙는구나. 저 청춘이 벌써 머리에 서릿발이 내렸네. 그 앞의 사내는 감당할 수 없는 머리를 커버하기 위해 뭔가를 덮어 쓰고 있었다.
아! 구룡포의 청춘들이 저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구룡포 패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저 세상으로 사라져간 소암 이규하. 기억이 없다. 어느 해 어느 달에 저 세상으로 갔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그날 밤 지독하게 나는 열병에 시달렸다.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데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며칠 후 구룡포에서 연락이 오기를 규하가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는 것이었다.
“소암이 가다니…….”
운명인가, 우연인가? 그날 그렇게 간다는 프로그램이 있었을까. 아니면 어느 얼빵이가 우연히 그를 들이박았을까. 내일 아침에 가라고 붙잡은 집사람의 청을 외면하고 집을 나선 그 저의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를 볼 때마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소암은 운동신경이 무딘 편이다. 더구나 구룡포 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소암 이규하는 나보다 한 살 적은 동네 후배다. 그리고 규하 집과 우리 집은 먼 이웃이 아니다. 친척이다. 내가 오천에서 구룡포로 이사를 와 자리를 잡은 동네에 규하가 살고 있었다. 똘망똘망했다. 키는 작아도 야무지게 생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창주리로 이사를 갔다.
규하의 첫인상은 깐깐했다. 눈을 보면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 빛은 대단했다. 비록 덩치는 작아도 구룡포를 자신의 눈 속에 다 담을 만큼 바라보는 시야가 넓었다. 그리고 그는 구룡포의 단 한 사람 도덕선생이기도 했다.
어두운 구석을 못 보는 규하였다.
불의를 못 보는 규하였다.
강한 인간에게 강하고 약한 인간에게 한없이 약한 규하였다.
정 밀고 나가다가 힘이 달리면 나에게 요청을 하곤 했다.
형, 전마 저거 한번 조재뿌래라!
진짜, 눈꼴시럽다.
어느 해, 구룡포에 국회의원이 와 의정보고를 했다. 그 이름도 출중한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이자 멘토이기도 한 이상덕 의원. 구룡포 제이씨에서 의정보고를 마치고 질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다 하고 소암이 손을 들었다. 이 의원이 질문하시오, 하고 사인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소암 마이크를 야무지게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의원에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5분이 10분. 10분이 15분. 15분이 20분. 사람들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똥이 마려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오줌이 마려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은 소암, 절대 놓을 리가 없지. 소암 사전에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단어가 다 사라질 때까지 질문은 계속된다.
그날 밤 소암이 물고 늘어진 주제는 구룡포의 발전이었다. 일찍 소암은 구룡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꿰뚫고 있었다. 소암은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 구룡포에 살다 뼈를 묻을 사람이다. 해서 어느 누구보다 이 구룡포를 사랑한다. 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한번 토론해보자. 그리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구룡포를 살릴 수 있는 그 대안을 내놓고 가십시오, 하며 이의원의 다리를 답삭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실지로 그날 그곳에서 오줌을 바지에 내갈긴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밤 몇 시인가. 지상의 부성철물점의 간판은 이미 꺼져 있었다. 허옇게 질린 이 의원.
"저건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다. 하, 무서운 놈……."
나는 생각한다. 그날 소암이 그렇게 이 의원을 붙잡고 물귀신 작전으로 나간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차에 몸을 실은 이 의원이 자꾹재를 넘어갈 때, 그는 연신 손수건을 꺼내 목과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다시는 밤에 구룡포에 안 온다. 하, 하마터면 똥 쌀 뻔했네…….”
소암은 형식을 싫어했다. 해서 구룡포에 그 많고 많은 단체들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건 곳이 없었다. 오로지 묵을 갈고 갈아 자신의 이데아를 흰 종이 위에 쓰고 썼을 뿐이었다. 그 외로운 영혼이 살고 있는 구룡포. 나는 구룡포에 내려갈 때마다 그의 서실을 찾곤 했다. 그의 서실이 우리 아지트였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형, 왔나.”
우리는 악수를 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 소암은 전화를 건다.
“양각이제. 여기 서실인데, 커피 세 잔 가지고 오너라.”
소암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도덕과 문화,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는 종종 잘못되어가고 있는 세상을 향해 울분을 토하곤 했다. 그 속에는 항상 구룡포가 들어 있었다. 구룡포를 이야기 할 때 그의 눈을 보면 시퍼렇게 빛이 났고, 그리고 어떤 때는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분노였다. 절망이었다. 그 분노와 절망은 애정과 사랑이었다. 소암이 꿈꾸는 세상은
진짜들이 오순도순 손을 맞잡고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가짜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소암에게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다. 올 것 같지 않던 사랑의 파랑새가 드디어 소암에게 날아온 것이었다. 그 사랑을 지켜본 혁환이와 찬규에 의하면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은 사랑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애잔한 사랑이었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진심으로 위하고 아껴주고, 그리고 사랑했었다고 한다.
그들이 둥지를 턴 곳은 바닷가. 밤이면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해변에 둥지를 턴 두 사람은 못다 한 사랑을 위해 불을 태웠다고 한다. 40 넘어 잡은 그 행복. 얼마나 기다린 사랑이었단 말인가. 정말 목마른 사랑이었다. 가짜 사랑이 아니었다. 인본주의자 소암, 얼마나 알뜰살뜰했을까. 마르고 닳도록 쓰다듬고 만지고, 그리고 핥았을 것이다.
그해 겨울, 사라 끝의 그 북풍한설을 헤치고 우리 세 사람은 소암의 둥지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깨소금 냄새가 맡아졌다.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방. 따뜻했다. 잠시 후 차가 날라져 왔다. 소암의 처와 나는 첫 대면이었다. 일어나 인사를 나누었다. 눈이 깊었다. 굴곡의 삶을 해치고 나온 사람들의 그 눈이었다. 깊고 깊었다. 그녀가 내온 차는 솔잎차였다. 마셨다. 하! 그윽했다. 솔잎차 속에 그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찻잔을 비우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느 해 여름 내 친구 쿤타킨테가 나에게 그의 예쁜 각시를 소개시켰을 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했던 그 말을 다시 한 번 리바이벌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날 밤 그 만남이 끝이었다. 그 다음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소암은 구룡포에서 서예 전시회를 앞두고 오랜만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첫 전시회라고 했다. 얼마나 가슴이 설렜을까. 그의 제자들과 가지는 첫 전시회. 그 설렘과 부담이 그를 서실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퇴근을 한 그가 저녁을 먹기가 바쁘게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내일 아침에 가라고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헬멧을 덮어쓴 채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라 끝의 밤바람을 맞으며 그 언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어느 술 취한 얼빵이 하나가 몰고 있는 트럭이 소암을 향해 갈지자걸음으로 미친 듯이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날 밤, 사라 끝 그 언덕에서, 소암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고 말았다. 몇 달 뒤 고향을 찾은 나는 그 장소를 갔다. 혁환이 찬규와 함께. 저곳이라고 했다. 저 장소였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가리킨 그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는 세상의 끝이었다.
그 자리는 사랑의 끝이었다.
그 자리는 인연의 끝이었다.
그리고 무다…….
뒷이야기- 사람은 태어나고, 그리고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두 번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한번밖에 살지 못한다. 그 사실이 비극이다. 만약 두 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사기꾼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해서 이 세상을 한 번 말아먹고 싶다. 이 세상을 사기로 다 엎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한번밖에 살 수가 없다. 해서 나는 사기꾼이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껄렁이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강한 자만이 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강한 종이 우리 인간의 종자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다면 도덕군자와 선량한 시민과,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양심 바른 눈 푸른 자들은 어디에 가서 둥지를 터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힘이 모자라 저 정글에서 몸을 사릴까. 나는 생각한다. 구룡포에서 가장 절실한 발전의 모델은 하늘이 아닌 땅이다. 사람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살맛나는 땅을 만드는 일이다. 그 일에 구룡포 사람들은 엎어져야 한다. 소암 같은 양심이 살아 있는 자들이 두 발을 쭉 뻗고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구룡포를 만드는데 구룡포 사람들은 땀을 흘려야 한다. 2008723도노강카페에서.
추신- 며칠 전 밤 사이트에 들어와 그리운 얼굴들을 보았다. 그 얼굴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옛날 청춘의 얼굴이 아니었다. 변해 있었다. 그 용맹스럽던 호랑이가 이빨 빠진 이웃집 개로 변해 있었다. 아, 50대의 사나이는 저렇게 늙어 가는구나. 30대의 그때 그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이제 조금 비껴 앉아 있는, 그리고 마음씨 착한 이웃집 아저씨로 변해 있는 찬용이를 보고 눈을 감았다. 찬용아, 나는 아직도 38살에서 스톱 상태다. 성장판이 38살에서 딱 멈추어 서 있다. 마음도 사고도, 정신까지도 나는 38살이다. 어쨌든 이 사이트에서 훌륭하게 늙어가고 있는 그 옛날의 열정적이었던 네 모습을 보았다. 건강은 이상 무가? 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시간 잘 다스려라. 네 앞의 혁환이도 변해 있네.
이제 고향에 내려가 살 일은 없지 싶다. 이곳 서울에서 해야 할 숙제가 있다. 그 일에 지금 매달리고 있다. 가끔씩 이 사이트에 들어와 구룡포 까물 냄새를 맡을 생각이다. 이곳 회원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룡포의 일상사를 좀 올리고 그래라. 사진도 좀 올리고. 손은 뭘 자꾸 만지라고 있는 거다. 시간이 흘러 허리가 접히기 전에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아라. 구룡포 골목골목도 좀 찍어서 올려라. 사라져 가는 일본시대 건물들을.
혁환이도 글 좀 올려보아라. 드는 솜씨 썩히지 말고. 그 옛날 하꼬방 도서관도 좀 올리고, 구룡포에서 잘 안 알려진 후미진 동네도 좀 올리고. 내가 제일 보고 싶은 곳은, 뒷골목과 구룡포 사람들도 잘 안 가는 구석구석이다. 언제 한 번 내려가면 구석구석을 디카에 담을 생각이다. 사라져 가는 구룡포의 역사를 많이 담아 이 사이트에 좀 올려라. 이왕지사 만들었으면 역동적으로 땀을 좀 흘려 보아라.
사람은, 움직씨기 되어야지 이름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좆이 빠지게 뛰어야 한다. 행동하는 자 이긴다. 껄렁이들이 잘 나가는 첫번째 이유는 물불 안 가리고 뛴다. 이기는 소 우리 소라고 했다. 아마추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두렵듯이, 껄렁이들이 안면 깔고 온 세상을 뒤집고 다니며 암내를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뛰어야 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