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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잘못된 조상공양이 빚는 공포
신을 건드리면 재앙이 온다.
과학만능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지탱하기 위하여 아직도 신불의 신앙은 일상생활속에 살아 있다.
특히 불교에 있어 조상을 공양하는 의식은 아침 저녁의 행사로서 우리 생활속에 스며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종파에 따라 형태는 달라도 공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신도는 '축사'를 신전에 올리고 예배한다.
신사나 절, 교회에 가는 사람이야말로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도 대다수는 결코 신불의 목소리나 모습을 듣거나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좋은 습관을 키워 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보내기를 원하고, 신앙은 그러기 위하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절이나 교회에서 중이나 목사의 설명을 듣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생활하고 있는 신자들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엄격한 수행을 참고 견디어 내어 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중생을 제도하려고 나선 고승들도 있다. 또한 많은 신자들의 고뇌를 덜어주는 지도자들도 있다.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신앙의 갖가지 모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올바른 신앙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채 그 어려운 인생경험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신자가 됨으로써 마음에 족쇄를 채우고 신불의 심판이나 벌을 두려워 하여 종교 지도자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경우 신자들도 무지하지만, 종교지도자 또한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 지도자가 고의로 그러한 일을 강요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신자의 고
뇌가 지도자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참된 법을 안다면, 고의로 저지른 죄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종교 지도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 경우의 결과는 무섭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도자란 신자들의 선의를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서야 하는데 못된 지도자는 선의를 깔아 뭉개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지도자야말로 구원받기 어려워지며, 보통 사람의 죄보다 한층 더 깊은 죄에 빠지고 만다.
신의 섭리는 하나이며, 지도자에게도 신자들에게도 올바른 마음과 올바른 행동의 지침에 따르는 생활 외에는 섭리에 접하는 길이 달리 없다.
또한 그 안에서 너그러운 마음과 평안이 깃든 생활이 생기며,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신은 부유한가, 가난한가,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차별하거나 지위나 명예로 인간의 가치를 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여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각을 갖게 하며, 올바른 중용의 마음을 생활 속에 살리는가, 또 온갖 생물과 물체가 서로간의 조화를 꾀하며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심과 신앙이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항간에는 신이라고 자칭하는 갖가지 신(?)들이 있어, 각자 신자들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신은 인간 사회에 결코 곧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이와 같은 그릇된 신앙때문에 행복을 구하면서도 불행 속에 빠지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은 건드리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 '
흔히 우리의 오관으로 느낄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이 격언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봉
오봉(일본의 명절. 음력 7월 15일로 제사를 지낸다.
한국의 추석명절과 비슷함)은 우리 생활가운데에서는 즐거운 행사의 하나가 되어 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오봉이 되면 세상을 떠난 조상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봉 무렵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평상시에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난 조상에게 제물을 차려올리고, 망령 앞에서 친척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오봉에선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오봉놀이, 등불행렬, 불꽃놀이 등 갖가지 행사가 이 시기에 일제히 있기 때문에 연중행사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축제일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축일에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조상이 돌아오는 것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한번 죽으면 그만이지 두 번씩이나 죽는 일은 없으며, 죽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아닐까?
오봉의 행사는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오랜 생활습관이며, 생활에 쫓기어 만날 수 없는 부모형제, 친구들이 모여서 서로의 고생을 위로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일이 보다 중요한 행사로 된 것 같다.
그런데 이쪽에서 부르면 조상의 영이 실제로 그 집에 온다고 말한다면,
독자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1973년 음력 7월 29일의 일이었다.
나는 회사의 일로 신슈우에 있는 공장에 갔었다.
컴퓨터 부속품과 카세트의 양산이 나의 사업이기도 하다.
종업원들은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 작업장에는 활기가 넘쳐 흘렀다.
오봉 휴가도 끝나고, 종업원들의 기분도 이제는 작업에만 열중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플라스틱 공장에 다달았을 때 늘 열심히 일하고 있던 종업원중 한 사람인 다까바야시 하쓰요 부인(38세)의 건강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장장에게,
"하쓰요 여사는 결근입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하쓰요 여사는 벌써 두 주일 동안이나 쉬고 있습니다. "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찌 된 일이죠?"
나는 거듭 물어보았다.
"허리를 펼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바쁜데 정말 난처합니다. "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힘든 작업도 아닌데, 허리를 펼 수 없다는 것은 납득이 가
지 않는 일이었다.
공장장은 나의 얼굴을 보면서,
"허리를 다치게 할 만한 작업은 한 가지도 시킨 일이 없습니다.
무거운 철형을 장치하고 해체할 때도 케이블 트럭을 사용하므로
별로 원인이 될만한 일은 없습니다. "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다면 잠깐 문병을 다녀 올테니 잘 부탁합니다. "
나는 공장문을 나섰다.
그녀의 집은 농가였지만, 시골 냄새는 찾을 길이 없고, 도시의 상당한 부잣집과 같은 생활을 갖추고 있었다. 토지 붐을 타고 왜 돈을 벌었던 모양이다. 나는 문에서 말을 걸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집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정면에 보이는 현관으로 가 보았다.
남쪽으로 난 마루에는 햇빛이 가득차 있었고, 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에는 모란이 갖가지 꽃을 피워 마당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나의 목소리가 집안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히쓰요는 누운 채로, 네 하고 대답하고는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듯 했다.
그녀는 툇마루에 잇달아 있는 방에 누워 있었다.
실례라고는 생각했으나, 나는 마당으로 들어가,
"제발 그대로 누워 계십시요. 그런데 건강상태가 어떻습니까?"
이렇게 말을 붙이며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바쁠때 회사를 쉬게 되어 죄송합니다. 어쩐 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
그녀는 괴로운 듯이 말했다.
"하쓰요 여사, 무리하지 말고 푹 쉬십시요. 일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하루 속히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건강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
이렇게 말하면서 하쓰요의 몸을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까, 누워 있는 것은 그녀가 틀림없으나, 전의 그녀와는 달랐다.
나는 정말 이상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부비며,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누워 있는 것은 하쓰요가 아니라, 82,3세 가량된 듯한 텁석부리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작업복을 입은채, 이쪽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몇번이고 확인을 했다. 역시 틀림없었다.
하지만 허리가 아프다고 괴로워하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하쓰요였다.
"하쓰요 여사, 기분이 어떻소?"
"허리가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대접도 못해 드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드는 것 같았다.
하쓰요는 악령에게 빙의되어 있었다. 그녀와 노인은 이중으로 비쳐 보였다.
허리가 아픈 것은 분명히 이 악령인 노인 탓이었다.
나는 그런 눈치는 보이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하쓰요 여사, 잠깐 물어볼 말이 있는데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나요?"
"예, 분명히 음력 7월 13일 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봉의 영혼맞이 불을 피우고 난 뒤,
어쩐 일인지 감기가 든 것처럼 몸이 으시시 추워서 그날 밤 감기약을 먹고 밤
열 두시쯤 잤습니다. 허리가 아픈 것은 그 무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그날 밤은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었군요. "
"예, 아무 데도 아프지 않고, 다만 오슬오슬 추웠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발에서 허리에 걸쳐 몹시 오싹했었습니다.
밖의 온도는 28도나 되는 더운 날씨인데, 정말 이상했어요.
영혼맞이 불을 피우기 전까지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
"그렇습니까?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는 불을 피울때, 이 고장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금년의 오봉은 첫 오봉입니다.
돌아가신 숙부에게 있어서는 처음 겪는 오봉이므로 불단도 값진 제등으로 장식했습니다.
특히 숙부님이 살아 계실때, 헌 집을 부수고 새로 지었으나 완공된 것을 보지 못한채,
이 세상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숙부님 덕분에 이런 훌륭한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디 푹 쉬고 가십시오, 하고 진심으로 빌었던 것입니다. "
하쓰요는 틀림없이 이 세상을 떠난 그녀의 숙부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쓰요의 육체에 빙의된 것일까?
오봉이 끝났는데도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찌된 까닭일까?
하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악령은 이러는 동안에도, 하쓰요의 등에서부터 허리에 걸쳐 하쓰요와 함께 누워 있는 것이었다.
"하쓰요 여사, 13일 밤에는 잘 잤습니까?"
"글쎄요. 밤새 꿈만 꾼것 같아서 푹 잔것 같지 않군요."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이 난다면 들려 주십시오. "
"예,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수염이 텁수룩한 숙부님이 너덜너덜한 작업복을 입고, 새로 지은 집 복도에서 괴 로운 듯이 누워 계셨습니다.
흙투성이어서 깨끗한 복도를 더럽혀서는 안되겠다고 여기고, 장농 속에 있는 숙부님의 옷을 꺼내 갈아 입혀 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숙부님은 창백한 얼굴이 되어, 말도 하시지 못했습니다.
저는 숙부님의 작업복을 갈아 입힌 뒤, 숙부님을 등에 업고 집안으로 모셔다 눕혀 드렸습니다.
정말 불쌍했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잘 해드리지 못해서 꿈에 보였었나 봅니다. "
하쓰요는 독백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생전에 이 숙부는 마을의 유지였고 남의 일을 잘 봐준 것 같았다.
원래 면장을 지냈었으므로 완고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노후는 고독하였고,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를 잇도록 양자를 두었는데, 양자라서 그런지 아들 부부와는 대화도 적었다.
젊은 부부는 양부와 따로 살았기 때문에 한창 나이 때의 화려했던 생활과는 달리 늙으막의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던 모양이다.
신축중인 집이 완성되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장례식도 가매장으로 하고, 간단히 마친 모양이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이를테면 무언인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죽음이란 역시 엄숙한 사실이며, 차원이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셈이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큰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말이 없으므로 이 엄숙한 여행길을 자칫 소흘히 하기 쉽다.
대체로, 죽음이란 무서운 것이며, 따라서 죽고 싶지 않다는 집착심이 강하다.
특히 토지나 재산을 가진 사람은 미련이 많다.
이 미련이 마음의 무겁고 거친 파동이 되어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악령들을 불러 들여 죽은 자기 자신의 영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계에까지 그 파동이 전해 오는 것이다.
장례식이나 장례식이 끝난 뒤의 사고나 집안 싸움의 원인은, 이들 악령의 파동이나 빙의에 의한 것이다.
만약 뒤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다면 죽은 사람에게 강한 집착심이 있더라도 그 어두운 파동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화를 잃고 있을 경우에는 이 어두운 파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평상시의 미움이나 분노를 죽은 사람 앞에서 한꺼번에 내뿜는 형태가 되고 만다.
죽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육친이나 아는 사람들과의 의사교환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전에 지옥의 영들이 몰려와서 죽은 사람을 공포의 수렁 속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므로, 생전에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로 지내다 죽은 이의 영은, 이를테면 180도로 생활환경이 바뀌고 만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는 설령 마음이 괴로와도 약을 쓰거나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그 집착심에서 자연스럽게 떠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겠으나, 저승은 마음이 그대로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그대로 생활의 터전이 되므로 이승에서와 같은 구원은 결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집착심이 유난히 강하고 조화되지 못한 생활을 한 사람의 죽음은, 이쪽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안이한 것이 아니라 심한 고행을 하기 위한 여행길인만큼 유족들이 죽은 사람을 공양하는 일이 큰 문제가 된다.
또한 마음의 법칙은 물리적인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가 타고 있는 자동차나 전차가 급브레이크를 걸면, 우리는 가던 방향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죽음은 브레이크여서, 그때의 혼란을 결코 피할 수 없게 된다.
많은 스님들이 장례식에 참석할 경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화를 잃은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런 일들은 그와 같은 영들의 소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례식에는 으례 불경을 외우게 마련이고 또한 기독교인 경우에는 성경을 읽게 마련이다.
하지만 불경이나 성경의 뜻을 알 만한 사람이라면 지옥에 떨어지거나 죽음으로 인한 망집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관성의 법칙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생전에 노여움에 불타고 있던 사람은 죽고 나서도 노여움으로 마음이 불타고 있다.
노여움으로 불타고 있으므로 노여움의 소용돌이 속에 자기의 영체를 놓고 만다.
이승에서 는 마음 속에 분노가 타고 있어도, 분노를 드러내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노여워하는 마음을 속일 수 있다.
속이면서 기분을 전환한다는 구원의 길이 있다. 하지만 저승은 끼리끼리 모이는 그대로의 세계이므로, 도저히 속임수가 통하지 않고, 본인에게 있어서는 생활이 180도 완전히 바뀌는 셈이 된다.
하쓰요의 숙부의 경우도 생시에는 춘분, 추분이나, 오봉 같은 때에 스님을 부른 일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형식적인 행사로 끝나고 말았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죽은 사람에게는 말이 없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실제로 자기의 차례가 되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라 괴로움 속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므로 오봉의 부름에 힘입어 지옥계에서 지상의 자기 집으로 되돌아 와 하쓰요를 의지하고 붙은 것이었다.
하쓰요는 생각이 난 듯이,
"7월 1일, 우리들은 숙부의 무덤에서 잡초를 뽑아 말끔하게 하고,
'숙부님 조금만 있으면 오봉이 돌아옵니다. 오봉에는 꼭 오십시오',
하고 마음 속으로 바랐습니다.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일본 사람의 대부분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절이나 무덤, 불단에 죽은 사람들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죽은 조상들도 그 습관에 따라서 죽은 뒤, 그런 장소를 살집으로 만들고 만다.
다시 말해서 저승의 지옥계와 지상과의 접선 장소로서 이와 같은 곳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사람이 허리에 빙의되다
나는 하쓰요에게 질문을 했다.
"하쓰요씨, 당신은 오봉에 숙부님이 정말 오셨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옛부터 그렇게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어서요..."
나는 여기서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당신이 불렀을때 그 숙부님은 정말 오신 겁니다. "
"설마... 그것이 사실일까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하쓰요 여사! 14∼5일 무렵의 건강상태는 어땠습니까?"
"애들과 친척들이 와서 바빠서 혼났습니다.
하지만 하룻밤 자고 나도 오슬오슬 추운 기분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16일 밤에는 영혼을 보내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 뒤로, 오봉 준비로 인한 피로가 몰린 건지, 너무 과로한 탓인지 허리를 펼 수 없게 되었습니 다. "
"영혼을 보내는 의식을 치룬 다음에 피로가 몰려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날마다 의사가 와서 진통제를 놔 주셨지만, 곧 다시 아파옵니다.
침이 좋다는 말을 듣고 침도 맞으러 다녔고, 뜸이 좋다고 이웃에서 말하므로 뜸도 떠보았습니다. "
"의사는 뭐라고 말하던가요?"
"심한 신경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아파보기는 생전 처음입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숙부는 여전히 떠나려고 하지 않고 하쓰요의 등과 허리에 붙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쓰요 여사,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의 허리께에 숙부가 매달려 있는 겁니다.
16일에 영혼을 보낸 줄 아셨겠지만 아직 돌아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
"그런 일이... 그런 무시무시한 말씀은 하시지 마십시요."
"정말입니다. 당신 뒤에 틀림없이 죽은 숙부님이 계십니다.
그것도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고 작업복을 입은 채로 말이오..."
"이를 어쩌면 좋죠? 아이 무서워, 무서워요. "
"당신은 무서워해선 안됩니다.
마음을 평안히 가지세요.
절대로 무섭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자신이 생각한 일, 즉 행동한 일 중에서 특히 남을 원망하거나, 시기하거나, 헐뜯거나, 화 를 냈거나, 한 일들을 한 가지 한 가지 생각해 보고 반성해 보십시오.
잘못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그 죄를 용서받아야만 합니다.
특히 시집 온 다음부터 있었던 일을 말입니다. "
나는, '잠깐 올라가겠습니다' 하고는 그녀가 누워 있는 근처에까지 가서, 허리에 빙의되어 있는 숙부에게 소리내어 크게 타일렀다.
"숙부님, 하쓰요 여사에게 빙의되면 하쓰요 여사가 불쌍합니다.
몸이 말을 안 듣고 괴로워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 사람에게서 떠나셔야 합니다. "
지쳐 있는 하쓰요의 숙부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잠자코 내가 있는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수호령의 힘을 빌어서 숙부의 영에게,
"당신은 하쓰요 여사에게서 떠나십시오. "
이렇게 거듭 강력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에너지를 보냈다.
숙부는 하쓰요에게 매달린 채 숨을 헐떡이며 간신이,
"난 갈 곳이 없어.
여기 있게 해줘, 여기 있게 해줘, 이렇게 말야. "
하고, 하쓰요의 등에 얼굴을 묻고 떠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말을 계속했다.
"어째서 당신은 갈 곳이 없습니까?"
"난 오봉이 들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단 말야.
나를 불러 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무덤 속 같은 구덩이 속은 추워서 도저히 못참겠어.
이래서야, 내 몸이 말이 아니거든. 나를 살려 줘. "
숙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숙부님, 당신은 이미 돌아가신 겁니다. 부모님께서 받은 육체는 이미 없어진 겁니다. "
"난 죽지 않았어.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런 곳에 누워 있다간 내 몸이 견디지 못한단 말야.
게다가 꼴보기 싫은 놈들이 와서, 나를 귀찮게 굴잖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난 그런 곳엔 가고 싶지 않아.
절에 가보면, 절에는 옛날 사람들이 있어서 나를 들여 보내지도 않지.
그러니 제발 부탁이야, 여기 있게 해줘, 부탁이야, 부탁..."
숙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차원이 다른 사람들, 그것도 이와 같은 악령이 세상에 나온다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하쓰요 뿐만 아니라, 병자가 연달아 생기고, 땅 위는 더욱 혼란에 빠지고 만다.
영에게는 영의 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갈 길을 못 가고 방황하는 영이여!
당신은 생전에 자기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대신 진심으로 남을 위하여 애쓴 일이 있습니까?
남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남에게서 혜택을 받는다는 경우였을 뿐,
자기의 보신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나 그뿐입니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와 재산에 대해서도 집착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당신에게는 그런 건 필요없고, 그런 것이 아무 소용도 되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신도 스스로에게는 거짓말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가졌을 게 아닙니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그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당신이 생전에 생각했던 일, 행동했던 일 하나 하나를 되돌아 보고, 잘못한 게 있었거든 하느님께 사과를 드리시오. "
"조카 며느리에게 돌봐 달라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난 괴로워 못견디겠단 말야."
악령은 자기의 일만을 생각한다.
남을 살린다는 생각 따위는 염두에도 없는 탓으로, 지옥계라는 고독한 세계로 빠지고 만다.
하쓰요의 괴로움 따위는, 이 사나이에겐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대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자각하시오.
지옥에 떨어질 때는, 떨어질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요.
이 지상계의 사람들에게 빙의해 보았자, 진정한 안식은 얻을 수 없는 게요.
그대의 영은 병든 것이 아니라 그대가 자기 마음 속에서 병을 만들고 있는 거야.
자기의 몸은 아무래도 괜찮으니, 조카 며느리의 괴로움을 덜어 줘야겠다는 생각은 어째서 하지 않 는 거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떠나 보시오!
마음 속의 일체의 집착을 지금 이 자리에서 버리시오."
나는 기도를 드리고 에너지를 보냈다.
그토록 떨어지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빙의되었던 악령은 하쓰요의 몸에서 서서히 떠나갔다.
숙부는 생시의 82년 동안의 인생에 대하여 반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산 공양
저승의 영은 그것이 설령 악령이라고 할지라도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마음이 정화되어 간다.
영의 세계에서는 의식의 90퍼센트가 표면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것이다.
반대로 이 지상계는, 의식의 10퍼센트밖에 표면에 나타나 있지가 않으므로 여간해서 납득을 하려 하지 않는다.
설령 납득이 된다고 하더라도 육체라는 물리적인 물체를 지니고 생활하기 때문에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실행을 할 단계에 이르면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육체 본위로 마음이 움직이고 만다.
그곳에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함정이 있고, 그러므로 지상계를 말하여, 수행하는 곳이라는 연유도 된다.
이와 같은 방황하는 영에게 천 권의 경을 읽어 올린들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불경의 말뜻은 어렵고, 본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 경문이란, 상대방이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써 충분한 것이다.
올바른 마음과 이를 이행하는 도리만 알면 되는 것이다.
흔히 계명을 죽은 사람에게 붙여 준다.
계명은 저승의 이름으로서 쓰이고 글자의 획수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 같으나, 계명 같은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지옥계에는 생전에 대승정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계명은 그야말로 훌륭한 것이었으리라. 많은 경문을 배우고, 무엇이나 알고 있었을 테지만, 역시 지옥에 있다.
이들은 생전에 육체생활에만 급급해 자기 자신의 일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무덤은 대개 훌륭하다.
절에 가면 유달리 큰 무덤을 보는 일이 많은데 물어 보면, 그 절의 주지스님의 무덤이라고 한다.
무덤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곳에서 산다면 이미 지옥인 것이다.
무덤의 모양을 보더라도, 이상한 모양을 한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나 무덤의 모양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으로 자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조상이 지옥에 떨어져 있다는 증거이다.
그들은 항상 무덤의 모양에 구애를 받고, 무덤의 흙이라도 떨어져 나가거나 한다면,
'무덤을 소홀히 하다니! 어떻게 되려고 그래?'
하는 투로 화내기 시작할 것이다.
지옥의 영을 달래는 뜻에서는, 무덤의 모양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겠으나 조상을
공양하는 일이 이래가지고는 언제까지나 산 공양이 될 수 없다.
조상을 공양하는 것은 가정 의 조화가 으뜸이며, 가정 이 원만하면 지옥에 떨어진 영은 근접을 할 수 없다.
멀리서 이것을 바라다 보며 그 조화된 빛으로 자기가 왜 이 어둡고 괴로운 세계에 와 있는 것인지 반성할 재료가 되는 것이다.
무덤을 아무리 고쳐 보아도, 모양을 바꾸어 보아도, 이것으로는 조상의 영을 구제할 수 없다.
하쓰요는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쓰요 여사, 하쓰요 여사! "
나는 그녀를 불렀다. 내가 숙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덧 조용히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머나, 그만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
하쓰요는 요 위에서 일어나 앉아서, 눈을 부비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쓰요 여사, 허리는 어떻습니까?"
"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일어났네요.
이상도 하지, 정말 이상하네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아요 어찌 된 일일까요?"
이렇게 말하며 일어서더니, 허리를 전후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완전히 통증도 없어지고, 오슬오슬 추운 기운도 거짓말처럼 없어졌습니다. "
나는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요 위에 단정하게 앉더니,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숙부님은 16일에 돌아가시지 않으셨나요?
뭔가 여우에게 홀린 것만 같습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있을 수 있구먼요. 마치 마술에 걸린 것만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며칠 동안이나 고통을 받았고, 그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나았으니까요.
믿지 말라고 해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녀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진실로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오관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으며, 오관 이외의 것에 관해서는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관밖에 모른다는 것은 마음 속에 상념의 안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어서, 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으로 인생을 소경인 채로 보내고, 고뇌를 짊어진 채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지요."
하쓰요는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상념의 안개란 어떤 것일까요?"
"신슈우의 하늘은 어떻습니까??
"예, 구름이 없는 날은 파랗고, 밤에는 별이 반짝이며 매우 아름답습니다. "
"그렇죠? 그리고 공기도 달콤하고요. 그렇다면 도꾜에 가신 일이 있습니까?"
"예, 아이가 도꾜에 있어서 자주 갑니다. "
"도꾜의 하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기가 피부에 닿는 감촉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도꾜의 하늘을 쳐다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도꾜는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공장의 매연으로 완전히 더러워졌습니다.
어느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도꾜에는 하늘이 없다고. 인간이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면 공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만족할 줄 모르고, 욕망대로 움직이게 되면, 대기는 오염되고 태양은 보이지 않게 되고, 더러워진 공기가 우리의 육체를 위협하게 되는 셈이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났을 때의 아름다운 하느님의 마음, 그대로 살고 있으면 문제가 없으나, 오관이나 번뇌에게 지배를 받아, 욕망의 매연을 마음 속에 만들어 내고 맙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비뚤어지고 맙니다. 자기의 상념과 행동에 대해 올바른 기준을 척도로 삼고, 반성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 마음은 더욱 더 하느님의 빛으로 가득차고 우리 인생의 목적인 낙원이나 지상천국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아, 그렇습니까?"
그녀는 알아들은 듯한 눈치였다. 그리고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
하고 말하더니 차 준비를 하러 방에서 나갔다.
이윽고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저는 부엌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제게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이렇게 말하고, 나에게 차를 권했다.
지금의 하쓰요는 병이 완전히 나아서 마음도 몸도 가벼워졌고, 그 감격스러운 마음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을 터이지만, 그 감격스러운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 하는 게 문제였다.
사람은 그날 그날의 생활을 통해 자칫 자기 자신의 욕망에 지고, 병이 회복된 감격을 잊고 마는 버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뒤 보러 갈 때와 끝났을 때는 다르다. '
사람은 처음에 품은 마음을 상황이 달라졌을 때는 흔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잠깐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만, 시간이 있으신지요?"
그녀는 몸이 완전히 나았으므로,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질문을 했다.
"예, 좋습니다. 질문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진정한 뜻의 오봉이란 어떤 것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
오봉에 대해서 설명을 하게 되면 매우 길어진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가장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고, 이야기의 줄거리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하쓰요는,
"번거로운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제 몸을 고쳐 주신 것만 해도 감사드려야 할텐데.
아는 스님에게 그 일은 천천히 여쭈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나를 어려워 하고 있었다.
나를 어려워 하는 마음 속에는 내가 불교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이 질문을 취소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는 스님이라면 오봉행사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려운 경을 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나는 이렇게 말하고 오봉에 대해서 설명했다.
오봉의 참뜻
여기서 오봉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석가의 제자중에 코리이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천안이 열려 있어서, 그 천안으로 죽은 어머니를 보니 물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에게 물을 주려고 하였더니, 그 물은 불이 되고 말아 어머니에게 물을 마시게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이 일을 석가에게 묻자 석가는,
"코리이타여!
그대의 어머니는 마하 바라문(대바라문종)의 가계에 태어나 생활도 윤택한 환경이었다.
많은 중생들에게서 시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욕망대로 인생을 보냈던 것 같 다.
그대의 어머니는 불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를 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치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많은 사람들 에게 진심에서 울어나오는 시주를 해야 한다. "
이렇게 가르쳤다. 코리이타는 부처의 말씀을 지키고 어머니를 위해 날짜를 정하여,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주를 했던 것이다.
오봉의 유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의 생활습관 속에 들어온 오봉은 이것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육신의 조상을 공양하는 의식이 되고 말았다.
돌아가실 우리의 조상도 또한 이 의식을 체험하면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따라서 죽은 뒤에도 그와 같은 의식이 있으니까 오봉 때가 되면, 옛날에 살던 내 집을 찾아온다.
특히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절이나 무덤이 죽은 뒤에 자기가 살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오봉의 행사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즐거움의 하나가 된 것이다.
오봉 때가 아니고서는 지상계의 사람들이 사후의 자기들을 생각해 주지 않을 것이며, 생각해 주지 않으면 마음의 세계에서는 자손들과 접촉할 기회를 잃게 된다.
자손과 접촉할 기회는 자손들이 자기들을 생각해 주는 일이며, 또한 마음의 파장을 맞추는 것으로, 그 일을 쉽사리 이룰 수 있다는 가정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가령 자손이 조상을 생각해 준다 하더라도, 자손들의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면 자손들에게 빙의될 수 없다.
마음의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자손들의 화기애애한 생활을 바라다보고, 자신의 괴로움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반성할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런 탓으로 조상을 공양하는 길은 하나에도 조화, 둘에도 조화, 오직 조화된 생활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쓰요는 나의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오봉이란 그와 같은 뜻이 있었던 것입니까?
저는 무덤에서 조상이 온다고 하는 말을 옛날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무덤에는 영은 없는 거군요. 있다고 한다면 괴로워하는 영이군요. "
"그렇습니다. 무덤은 썩어 문드러진 육체를 버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 무덤이 자기의 살 곳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곳에다 지옥계를 전개시 키고 깨달을 때까지 고생스러운 생환을 수행하게 됩니다. "
"그렇다면 숙부님은 무덤에 계셨던 게 되는군요. "
"그렇게 되는 거죠.
누구든지 자기의 마음가짐과 행동할 바를 옳은 규칙에 맞추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불평이나 구애되는 일, 노여움, 남을 헐뜯는 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시 악령에게 빙의되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생각하는 일이 옳으면 광명의 세계에 통하지만 자기본위인 마음의 작용은 그 마음에 비례하여 조화되지 못한 세계에 통하고 맙니다.
모든 행, 불행은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의 결과이며, 그것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하쓰요는 완전히 허리의 통증도 사라지고, 얼굴빛도 완전히 건강한 빛으로 바뀌었다.
악령 - 다카하시 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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