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읽기5: 화가의 슬픈 초상 -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울림]

화가의 슬픈 초상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초상화 중에 좀 색다른 것이 있습니다.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모델

로 삼은 그림이지요. 이런 걸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 중 가

장 중요한 것은 모델료를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주머

니가 가벼운 화가에게 이건 아주 매력적이지요. 아무 때나 자신이 원

하는 시간에 원하는 표정을 그리면서 그림 실력을 쌓을 수 있으니까

요. 가난한 화가일수록 자화상을 더 많이 남긴 것은 이런 까닭일 겁

니다. 대표적인 화가 중 하나가 빈센트 반 고흐지요.

그는 살아생전 그림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가난

뱅이였어요. 그만큼 그의 그림이 당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

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그

림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밑바탕에는 그의

어둡고 불행했던 삶이 깔려 있지요. 고흐의 비극적 생애는 마치 ‘예

술가의 삶이란 이런 거다!’라는 걸 보여 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거의 전설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그 전설의 중심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이란 작품이 있답니다.

대개 자화상은 화가의 삶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화가가

걸어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으니까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

지예요. 그 유명한 ‘아를에서 귀를 자른 사건’이 이 작품의 배경이지

요. 당시 고흐는 가난한 화가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 정착했어요.

그곳의 강렬한 햇살이 단번에 고흐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이 깊어 갔지요. 그래서 파리에서 알고 지내던 고갱을

어렵사리 설득하여 아를로 불러왔답니다.

고갱을 처음 불러올 때만 해도 고흐는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같이 지내게 되자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어요.

고갱은 자기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는 독불장군이었고, 고흐 또한

불꽃처럼 날카로운 성격의 고집불통이었으니까요. 하루 이틀 지날수

록 갈등이 깊어 갔지요. 나중에는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도 사사건

건 충돌을 빚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두 사람은 작업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요.

‘도대체 뭘 그리는 거지?’

고흐는 호기심이 생겨 곁눈질로 고갱을 흘끗 쳐다보았어요. 고갱

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지요. 고흐는 모르

는 채 잠자코 있었어요. 조금 뒤 그림이 완성되자 고갱이 자랑하듯

말했답니다.

“어때? 멋진 작품이 되질 않았나?”

고흐는 아주 불쾌한 얼굴로 퉁명스레 대꾸했지요.

“흥, 꼭 미친 사람처럼 그려 놓았군!”

그림에 대해 불평하자 고갱도 몹시 언짢은 표정이었지요. 두 사람

은 기분을 풀기 위해 근처 술집으로 갔어요. 한창 술을 먹던 중 고흐

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듯 고갱에게 술잔을 집어 던졌어요. 고

갱이 용케 술잔을 피하는 바람에 다치지는 않았지요.

이튿날 저녁, 고갱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혼자 바람을 쐬

러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

지요. 뒤를 돌아보니 고흐가 면도칼을 들고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놀랐지요.

“아니, 고… 고흐,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고갱이 소리치자 고흐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 고갱을 노려보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집 쪽으로 달아났지요.

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괴로운 마음을 견디지 못했는지 스스로 한

쪽 귀를 잘랐어요. 그런 다음 그것을 종이에 잘 싸서 가끔 다니던 술

집 여자에게 선물로 주었지요. 그 바람에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졌답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고흐는 침대에 정신을 잃고 쓰러

져 있었어요.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고흐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

지요. 다행히 상처를 잘 치료하여 고흐는 얼마 후 퇴원할 수 있었어

요. 그러나 몸과 마음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지요. 이때부

터 고흐는 간혹 정신병 증세를 일으켰고, 그때마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답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이 무렵 그린 작품이에요. 두꺼운 겨

울 외투 차림의 고흐는 털모자를 쓴 채 하얀 붕대로 귀를 감싸고 있

어요. 거센 폭풍우가 한 번 지나간 뒤 찾아온 고요함이랄까, 그의 얼

굴 표정은 매우 평온해 보이지만 눈빛을 보면 왠지 모를 불안과 어둠

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어요. 고흐 특유의 거칠고 굵은 붓 자국이 이

그림에서도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그의

붓질은 더욱 굵고 거칠어지는데, 정신발작으로 인한 불안한 심리 상

태가 그림 속에 배어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평생 고독의 벽에 갇힌

채 정신병에 시달리다 37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어요. 이 작

품은 고단하고 불행했던 삶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화가의 슬픈 초상

이라 하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 |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

났어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했으며,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으

면 주위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 정열적인 성격이었지요. 한때 목사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으나 실패하자 27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를에서 고갱

과의 동거 생활이 비극적 결말로 끝난 뒤에는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그러다

가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답니다. 고흐가 남긴 대부분의 걸작들은 아를에 온 후

부터 마지막 생을 마칠 때까지 3년 동안 그린 것입니다. 아마도 그 작품 하나하나

는 절망적인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으로 얻은 결실이라 하겠습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일부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