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기 제 7탄입니다.
그동안 제 여행기가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인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7.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KkMU%26fldid%3DfIK%26dataid%3D78%26regdt%3D20050211115819%26disk%3D1%26grpcode%3Dyeongeonara%26dncnt%3DN%26.jpg)
<왕가의 계곡(King of Valley)입니다. 신왕국시대 바위를 뚫어 만든 왕들의 무덤군이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세운 피라미드가 도굴을 당하자 신왕국 시대에는 아예 바위를 뚫어서 미라와 부장품들을 숨기다시피 했다는 군요. 그러고 보면 도굴은 당대에도 있었던가 봅니다.>
제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왕가의 계곡’을 꼽을 겁니다. 앞서 여행기에서 합셋슈트 신전을 소개할 때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작품이라는 제 생각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왕가의 계곡이 자리한 자연은 이런 제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해주는 또 하나의 자연예술작품이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저 험준한 지형이 있었기에 뚫고 무덤도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사진 가운데 직사각형 모양의 통로가 보이죠? 그 하나하나가 모두 무덤입니다. 그 속에 있던 온갖 부장품들은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의 박물관과 이집트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옮겨져 있다고 합니다. 사실, 왕가의 계곡도 하나의 여행기로 독립시켜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했는데 무덤 내에서는 모두 촬영을 금지하는 통에 찍어온 사진이 없지 뭡니까! 물론 제 눈과 머리에는 모두 찍어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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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 병사가 들고 있는 창이 완전한 삼각뿔이죠?>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7.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KkMU%26fldid%3DfIK%26dataid%3D80%26regdt%3D20050211120535%26disk%3D3%26grpcode%3Dyeongeonara%26dncnt%3DN%26.jpg)
<중세 이집트 병사들입니다 … 제법 비단옷을 입었죠?>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7.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KkMU%26fldid%3DfIK%26dataid%3D81%26regdt%3D20050211120600%26disk%3D5%26grpcode%3Dyeongeonara%26dncnt%3DN%26.jpg)
<현대 이집트 군인입니다. 세계공용(?)군복을 입고 있죠? 우리나라도 사관생도들이 입잖아요?>
계곡이니 어쩌니 하더니 웬 갑자기 병사냐구요? 무관할 리가 있나요? (히히…)
제가 이집트의 역사를 짧게 소개할 때 신왕국을 끝으로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일부분이 돼버렸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이집트 역사를 나름대로는 집약해놓은 겁니다. 대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던 이집트인들! 파라오 숭배를 위해 신전을 세우며 거룩한 신성을 추구했던 이집트인들은 이제 바위 속 땅굴로 들어가 버리고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세계사의 흥망 속에서 살아남기는 했으나 그들이 목숨 걸고 숭배했던 대자연도, 파라오도 아닌 공동생산, 공동분배 사상이 신성의 중심에 우뚝 서버린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버렸답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죠… 저는 가슴이 저리고 아팠습니다.
위 사진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속의 고대, 중세, 현대 병사들이 있는 곳은 사다트대통령 기념관입니다. 사다트 대통령이 이집트인들에게 어떤 존대인지는 위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지요. 현대 군인 뒤로 벽돌을 쌓아놓은 듯한 모양이 보이죠? 피라미드를 형상화한 대형 삼각 조형물이랍니다. 사다트 대통령은 이집트인들에겐 어쩌면 현대의 파라오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 기념관에는 북한의 김일성이 보낸 그림도 있답니다. 이집트는 사회주의국가답게 우리 남한보다 북한과 더 먼저 수교를 맺었다고 하는 군요. 그리고 친분도 꽤 두터웠던가 보죠?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고 기념관이 세워질 때 김일성이 애도의 뜻으로 그림을 보내왔다는 군요. 내용은 물론 혁명적이구요.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했는데, 어두운 밤이라 찍은 사진이 모두 검게 나왔답니다. 그러니 꼭 직접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 여행정보 나갑니다!!! ***
이집트와 북한의 친분이 꽤 두터우리라는 건 상상할 수 있겠죠? 여러분들이 혹시 이집트를 여행하다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한국대사관을 찿아야겠죠? 그러데 한국대사관을 쉽게 찾지 못하겠죠? 그래서 길거리 아무에게나 “I am Korean!"을 외치면 어디로 데려다 주는지 아세요? 글쎄, 북한대사관이라고 합니다. 얼결에 북한 가는 거죠… 남한, 서울에서 왔다는 것과 대한민국대사관에 가야한다는 걸 제대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머리에서 살짝 얘기했듯, 오늘이 이집트 여행기 마지막입니다. 제가 다녀온 곳을 더욱 자세히 소개하자면 앞으로도 여러 편은 더 나올 수 있겠지만, 이쯤에서 여러분의 여행 의욕을 자극하는 선에서 멈추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제 생각, 제 느낌인데 여러분께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건 아닌가싶어 마음이 쓰이기도 하구요. 그동안 제 여행기를 애독(?)해주신 임기석 교수님을 비롯해 여러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라도 이집트에 가시면 어디에서라도 그들의 파라오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돌아오셔서 여기 이 카페에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언제고 여러분이 발견한 파라오를 맞이할 만발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파라오를 발견하러 찾아 올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여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 끝 -
첫댓글 따끈 따끈한 사진과 함께 짜임새있는 여행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분묘와 미라'의 나라.인류가 만든 최대 건축물 피라미드.그 속에서 발굴된 초고의 인류문화유산.인류최고의 中華思想 을 뿌리하는 민족적인 우월감에 빠져 장기간 안주. 외부와의 관계 소흘.이민족의 침입으로 주요 문화유산 탈취당함
지난해 대영제국박물관에 갔을때 놀랜것은 간판만 대영제국박물관 이었습니다. 보물처럼 화려하게 진열된 유물들(조각,벽화,미라등)은 이집트와 인도의 유물들이었습니다.그때 우리 문화기행단은 양분되여 격론.하나는 강대국의 횡포다.도둑질해온거다.세계문화유산이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빛이나고 가치있는
것 아니냐.나쁜 놈들이다.훔쳐온것이니 되돌려 주어야 마땅하다"였습니다.다른 한 편의 주장은 달랐습니다.천만의 말씀이다.영국때문에 이 귀한 유물을 볼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그냥 두었다면 유실되거나 파손 되었을 것이다.당시 이집트는 유물을 보존할 의식도 능력도 없었다" 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전자편에서 열을 올렸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후자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음을 솔직히 꼬리를 내립니다.일본이나 중국한테 역사외곡을 당해도 ..백두산 반쪽은 중국땅이다 해도 속수 무책아닙니가.힘이 저들보다 커져야 목아지를 비틀어서라도 되 찾아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힘이 있어야 자기 것도 지킬 수 있
다는 생각입니다......애구 이거 내가 지금 뭔소리 하는 건지 모르것습니다..ㅎㅎ~ 글로리아 고마워..^^*
넵~~~/ㅎㅎ 사진이 돌아 왔군요...반갑습니다
교수님! 사실 아이디를 바꾸려고 했었어요. 만약에 아이디를 바꿨으면 수정을 못 할 뻔 했어요... 이젠 절대 사진 만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헉~내사 혼날줄 알았어...명심 또 명심 !!! 땀 삐질~~/아디를 바꾼다구 뿌리까지 바뀌남....
네~힘이 있어야 발언권을 갖게되죠. 글로리아님 그동안 수고 많으셧군요.자주 들러 하나씩 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조심스레 한자 적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3년 정도 살았기에 감히.. 저는 80년대 후반에 그 곳에 살았습니다. 그 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이집트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기에... 지금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그때도 대통령이였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몰라도 삼성 TV는 알고들 있었습니다.
정치보다 경제가 먼저 그들에게 파고들어갔지요.^^ 그 곳에서 김일성 빼지를 달고 있는 북쪽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기도했고 그들이 해를 줄까 두렵기도 했지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고 오히려 활게치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였으니까요. 그저 정치적으로 가깝다는 거였고..
그들이 같은 우방국으로의 우정 때문에 북쪽은 대사관계에 있었고 남쪽은 영사관계로 있다 후에 대사관으로 승급되었다고 알고있습니다. / 교수님 말씀대로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선진국에서 가져 갈 수 없었던 거대한 문화 유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한번쯤은 그 곳을 여행 할 만 한 곳입니다.
시내님 말씀에 박수를 보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