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원·박세은김·김유진 등 잇달아 국제대회 입상… 외국 심사위원들 “표현력 뛰어나” 찬사 신체조건 좋아지고 연습량 많아… 외국인 강사에 배울 기회가 늘어나고 외교력도 강해져 | ||||||
4월에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주원(30)씨가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14회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했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해 1991년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에서 제정한 상으로 한 해 동안 세계 정상급 단체의 공연을 심사해 선정하는 상이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박세은(18)양은 지난해 7월에 세계 4대 콩쿠르의 하나인 미국 잭슨 콩쿠르 주니어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다. 4년마다 열리는 잭슨 콩쿠르는 1982년 창설됐고 모스크바(러시아)·바르나(불가리아)·로잔(스위스)과 함께 세계 4대 발레대회의 하나로 꼽힌다. 1998년 김지영(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원)씨가 시니어 부문에서 동상을 받았고, 2002년 한상이(현 모나코 왕립 몬테카를로 발레단원)씨가 주니어 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박세은양은 잭슨 콩쿠르 쾌거에 이어 석 달 후인 10월에는 중국 베이징 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 2위에 입상했다.
이 로잔 콩쿠르에서는 지난해에도 한국인 발레리나의 입상이 이어졌다. 1월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예비학교에 재학 중이던 홍향기(18)양이 3위에 입상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씨는 “어린 나이지만 성인 못지않은 기량과 힘을 갖췄고 특히 팔의 움직임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홍양은 현재 러시아 국립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을 모두 가르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선희 교수는 “김유진의 예술성, 한서혜의 잠재력, 홍향기의 성실함은 국제적인 발레 스타가 될 디딤돌”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한국인 무용수의 활약은 계속됐다. 지난해 5월에는 재미무용가 옹경일(35)씨가 제20회 이사도라 던컨상을 수상했다. 6월에는 세계 최고의 발레학교인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가 주최한 제6회 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신승원(20)씨와 윤전일(20)씨가 최우수 2인무상(베스트 커플상)을 받았다. 7월에는 세계 무용경연대회 중 최고(最古)의 전통을 자랑하는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이영도(21), 박슬기(21)씨 등 한국인 5명이 입상했다. 브루스 마크스(미국), 문훈숙(한국) 등 각국의 심사위원은 박슬기씨에 대해 “발레 무용수로서 최적의 몸매와 얼굴을 가졌고 성숙한 표현력과 흡인력 있는 카리스마가 놀랍다”고 밝혔다. 한국인 발레 무용수로 세계 스타 반열에 오른 이로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40)씨가 있다. 강수진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나와 1985년 동양인 최초로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3년부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고,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또 김용걸(파리 오페라 발레 솔리스트), 배주윤(볼쇼이 발레단), 유지연(키로프 발레단), 김세연(취리히 발레단), 원지연(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김나이(미국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댄스 파운데이션) 등이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동 중이다. 서양에서 출발한 발레 분야에서 한국이 어떻게 발레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먼저 한국인 무용수의 신체 조건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무용수는 서양인과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다. 한국 청소년의 발육상태가 좋아진 탓이다.
한국인 발레 무용수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한국의 발레 외교력도 강해졌다.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최태지 정동극장장, 문훈숙 UBC 단장 등 국내 발레계 지도자가 국제 무대에서 발레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 관객의 호응이 뒷받침 해주고 있다. 매니아층이 두터워지면서 캐스팅별로 여러 번 보고 토론도 한다. 발레 스타가 등장하고 팬클럽까지 결성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발레 무용수에 대한 대우는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외국의 경우 발레 스타의 연봉이 억대에 이르지만 우리나라 발레 스타의 연봉은 3000만원대이다. 이는 토슈즈 값으로 거의 사용된다. 한 켤레에 10만원 정도 하는 토슈즈는 프로 무용수의 경우 1년에 200켤레 가까이 신는다. 우리나라에 발레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31년 3월 서울 YMCA 강당에서 열린 러시아 무용수 슈하로프의 공연이다. 발레 독립단체로는 해방 후인 1946년 처음으로 ‘서울발레단’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발레를 배운 한동인씨는 서울발레단을 열정적으로 이끌면서 ‘라 실피드’ ‘장미의 정령’이라는 서양의 명작 발레를 우리나라 관객에게 선보였다. 하지만 한동인씨가 준비했던 ‘인어공주’는 1950년 한국전쟁 때문에 하루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그는 북으로 넘어갔다. 그 뒤에 임성남씨가 나타났다.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임성남씨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 중 최초로 발레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었다. 전주 사범학교를 거쳐 일본 음악학교 피아노과에서 피아노를 익히고, 일본의 발레연구소에서 발레를 배웠다. 1954년 도쿄청년발레단을 창단하여 활약하다가 이듬해 귀국하여 ‘임성남 발레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1962년 국립무용단의 단장을 맡게 됐다. 1974년 국립극장이 명동에서 장충동으로 옮길 때 ‘국립발레단’이라는 이름을 갖고 무용단에서 독립해 나왔다. 국립발레단은 1974년부터 우리나라 관객에게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등 세계의 명작 발레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1대 임성남 단장에 이어 1993년 당시 미국에서 활동 중이던 김혜식씨가 2대 단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서양 발레단의 운영 방식을 많이 적용시켰다. 3대 최태지 단장은 우리 무용계에서 처음으로 ‘발레 스타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이원국, 김용걸, 김주원, 김지영을 발레 스타로 키웠다. 국립발레단은 이때부터 우리나라 무용계 최초의 팬클럽 조직인 ‘국립발레단 동호회-정 익은 마을’까지 탄생시켰다. |
국립발레단 박인자 단장 | |
“현대발레는 표현 강해… 샹송·팝에 맞춰 공연도” -최근 관객에게 사랑받는 발레는 어떤 것인가? “고전발레보다 현대발레가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발레는 60분 단막으로 짧고 독특하다. 현대발레의 특징은 표현이 강하다는 것이다. 샹송이나 팝에 맞춰 추는 발레 공연도 있다.” -벤치마킹하는 발레단이 있나?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경우 250명의 단원이 있다. 여러 팀을 만들어서 공연할 수 있다.” -세계적인 발레 안무가는 누구인가? “국립발레단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 태생의 유리 그리가로비치(80)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노(남자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현대적인 발레를 탄생시킨 조지 발란신은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망명했고 뉴욕 시티 발레단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모리스 베자르, 지리 킬리안, 마츠 에크 등이 있다.”
|
발레리나 김주원 인터뷰 |
“발레학교 만들어야… 대학 교육 중심으로 프로 데뷔 늦어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