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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일상생활
-장애아와 어린이책
토르디스 외르야스터 글/ 김중철 옮김
도로시 버틀러는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김중철 옮김, 보림출판사)에서, 한 여자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쿠슐라는 태어나면서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운 병원 생활을 오랜 동안 보냈습니다. 신체 발달이 늦고, 눈의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고, 몸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지진아라고 생각하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쿠슐라는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 되는 아주 이른 시기에 많은 책에 둘러싸인 덕분에, 다행히도 행복한 유아기를 보냈습니다. 쿠슐라 부모는 아이를 달래고, 발작의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낮이나 밤이나 거의 쭉 아이를 품에 안아주어야만 했습니다. 쿠슐라에게 늘 노래를 불러 주고, 책을 읽어 주고, 그림을 보며 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 준다든지, 색깔을 보녀 주는 일은 쿠슐라를 안정시키고 또한 자극을 주기도 했습니다. 쿠슐라 부모는 그림책을 보여 주고, 자장가와 동요를 불러주는 게 일상 생활이 되었습니다.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의 저자인 도로시 버틀러는 쿠슐라의 외할머니인데, 그 책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쿠슐라가 읽은 책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 있을까?
사랑와 지원을 끊임없이 받는 환경에서, 풍부한 말과 그림을 만난 것은 전반적으로 인지 발달, 특히 언어 발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쿠슐라가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많은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다. 쿠슐라가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책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과 따뜻함과 멋진 색채가 쿠슐라 옆에 있었따. 혼자 힘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쿠슐라에게 세상을 보여 주려고 애쓰고, 쿠슐라를 사랑했던 어른들도 중요한 역학을 하였다. 그러나 쿠슐라만이 아는 어둡고 외로운 곳으로 쿠슐라와 함께 갔던 것은 책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쿠슐라와 함께 있을 것이다. 피터 래빗과 루시 할머니, 검피 아저씨와 제임스 제임스, 그 뒤로 고양이와 왕과 호랑이와 곰이 뒤따르고, 데이비와 엠마와 아가판투스가 맨 뒤를 따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쿠슐라는 힘을 많이 얻을 것이다.
1975년 8월 18일, 쿠슐라가 만 3년 8개월이 되었을 때 한 말에는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말을 할 때 쿠슐라는 두 팔로 인형을 안고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소파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 루비 루에게 책을 읽어 줘야 해. 그 애는 지쳤고 슬프거든. 루비 루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고, 책을 읽어 주어야 해.’
이러한 처방은 어떤 아이에게나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든 없는 아이든. (앞책, 136-137쪽에서)
이렇게 말한 뒤, ‘후기’에서는 이렇게 결말을 맺습니다.
지금부터 7년 전, 쿠슐라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책이 아이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힘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또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진 믿음과 견주어 보면 그때의 믿음은 아주 약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글자와 그림이, 이유가 무엇이든, 이 세계와 단절된 한 아이에게 무엇을 주는지 안다. 그러나 나 또한 아이에게 맞는 책을 보여 줄 사람이 있어야만, 책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그 부모가 아무리 똑똑하고 착하더라도- 아기 때부터 쿠슐라가 책에 있는 말과 그림을 만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늘 병에 시달리고, 신체 장애에 정신 장애까지 있어 보이는 아기에게 책을 큰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 주라고 할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책와 이 세상의 장애아를 연결하는 고리가 더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쿠슐라 부모는 딸의 이야기를 책으로 풀판하는 데 동의했다. 우리는 쿠슐라가 어른이 되면 이런 고리를 늘이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믿는다. 책이 징검다리가 되리라는 믿음도, 쿠슐라가 우리보다 훨씬 강하지 않을까.(앞책, 143-144쪽에서)
어떤 장애가 있든, 장애가 있는 어린이는 자신이 슬프고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스웨덴 작가인 린드그렌은 ‘어린이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은 우리들 모두의 친구입니다.’고 말했습니다. 흔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장애가 없는 아이보다 친구를 더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외롭기 때문입니다.
쿠슐라 부모는 아이가 태어난 지 4개월만에 책을 보야 주었습니다. 요즘의 대뇌 연구에 따르면, 아기는 태어난 지 16주에서 18주에 여러 가지 소리에 반응한다고 합니다. 뱃속의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어서는 안될 이유는 없습니다. 경제 발전을 이룩한 많은 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집에서 떨어져 생활하고 있어서 자장가와 동요를 배우지 못합ㅈ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어릴 때 들었던 노래를 생각해 낸다든가 배울 수 있게끔, 동요와 자장가를 모은 책이 필요합니다.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그림책의 색채에 친숙하게 하고,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게 하는 일이 중요한 것과 똑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 이러한 경험은 특히 귀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삶을 시작하는 이른 시기부터, 어른은 어린이를 위해 자장가와 동요를 불러 주고, 그림책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의사, 심리사(카운셀러), 사회사업가가 장애아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모들이 어린이를 위해 어떤 책을 사 주고,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리는 게 좋은지 상담해 주어야만 합니다. 또 장애아 부모가 적절한 책을 찾는 데 필요한 조언과 지원을 늘 바라고 있다는 걸, 도서관원은 느껴야만 합니다.
너무 복잡하거나 무서운 내용이 아니라면 말이 뒤떨어진 어린이에게도 그림책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 아주 어릴 때부터 좋은 그림책을 골라 주는 일이 특히 조용합니다. 책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를 책에 친숙하게 해 주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 책은 그 어린이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그뿐 아니라, 좋은 그림책은 실어증(발달성 실어증)이 있는 어린이, 자폐증이 있는 어린이, 지능이 떨어진 어린이가, 어릴 때부터 집중력을 키우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말이 뒤떨어진 어린이는 자기가 말을 잘 못한다고 느끼기 전에, 책에 친숙하게 해주는 편이 좋겠지요. 책이 벽이 되어 앞길을 가로 막아 버리기 전에, 책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독서는 언젠가 반드시 그러한 어린이들에게 문제가 됩니다. 글은 이야기하는 말보다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읽는 학습은 복잡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도 읽는 것도 괴로운 일이 되고 만다면, 어린이는 좌절감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뤂에 앉아, 그림책을 보는 행복한 기분을 아주 어릴 때부터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린이의 앞길에 기초를 세우는 중요한 일입니다.
말이 뒤떨어진 어린이는 누구에게 ‘책을 읽어 줘.’하고 부탁하지 않기도 합니다. 어른이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이 아주 뒤떨어져서, 읽어 주어도 그다지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린이들에게는, 먼저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친숙하지 않는 말이 나온다면, 여러 가지 다른 글 속에서 되풀이해서 말한다든다, 그림을 가리킨다든가 하면서, 조용히 이야기해 주세요.
부모만이 아니라, 어린이와 관계 있는 어른은 모두, 그림책과 자장가를 읽어 주어 어린이에게 말을 자극해 주세요. 또 유치원과 학교 선생, 사회 사업가도,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말을 늘이고, 말을 통해서 사람과 사귈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그 어린이에게 맞는 책을 손에 집어 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린이는 자기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든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든가, 또는 마땅한 말을 찾을 수 없을 때, 책을 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 하면 책은 말에서 나오는데, 말이 혼란과 좌절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책과 좋은 관계를 맺어 주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시작하면 늦지 않느냐고 생각하는데, 아직 늦지는 않습니다. 어린이가 나이가 많아도, 그림책은 계속 보여 주어야 합니다. 다만, 유아 대상의 그림책은 권하지 마십시오. 어린이가 재미를 끄는 것과 어린이의 활동을 그림 그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림책은 어린이 시대에 꼭 필요합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그림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좋고, 글은 간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린이는 점점 글이 더 많고 그림이 적은 책으로 옮겨 갑니다. 가령 내용이 단순하고 평범해도, 쓸쓸함, 노여움,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결말은 두려움과 노여움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안도의 기분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을 골라주고 싶은 것입니다.
말과 글은 함께 발달합니다. 그 때문에, 말이 뒤떨어진 어린이에게, 말을 하고 싶다는 기분을 일으킬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읽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한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서 들려 주는 경우, 훨씬 뒤에 그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글을 읽는 수준은 말하는 수준보다 4~5년 정도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읽는 기술을 익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각자의 재미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책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생각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즐겁고 쉬운 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책은 다른 어린이에게도 쓸모가 있지만, 특히 읽는 힘을 붙이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노력해서 좋았다고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내용의, 나이를 생각한, 읽기 쉬운 책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을 갖추는 한편, 우리들은 통찰력을 갖고 지식을 찾아, 어떻게 하면 책이 읽기 쉬워질까 생각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정리해 보지요. 어린이는 그림책과 자장가를 찾고 있고, 스스로 읽게 되어도, 읽어 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충분히 읽어 줄 때까지, 1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려도, 그 사이 꼭 읽기 쉬운 책을 고를 필요가 있습니다. 읽는 힘이 점차 붙으면서, 각각의 단계에 맞추어 조금씩 어렵게 되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내용의 책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과 친숙하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나온 훌륭한 책을, 늘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되도록 여러 번 책을 읽어 주고, 말을 풍부히 하고, 상상력을 높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부모와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에게는 적절한 책을 알려주기 위한 지침이 필요합니다.
걸어가다가, 브릭터는 자기의 이야기책을 끄집어 내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다음에, 모두에게 향기를 맡게 했습니다. 새 책이라는 것은 매우 좋은 향기가 나므로, 그 향기를 맡은 것만으로도, 이것을 읽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아스트린드 린드그렌<시끄러운 마을의 아이들>에서/우리 나라에서는 번역 안 됐음.)
스웨덴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바람은 모든 어린이가 이러한 경험을 해 가는 것입니다.
##이 글은 <장애아를 일상생활에 통합시키는 데 어린이책이 할 일>(The Role of children's books in intergrating handicapped children into everyday life) (Tordis Orjasaeter 글, UNESCO, 1981년)예서 뽑은 글입니다.
글쓴이 토르디스 외르야스터는 노르웨이 특수교육 연구소 조교수, IBBY(국제 아동도서평의회)의 ‘장애아와 책에 관한 두 개의 프로젝트’ 일을 했고, 장애아 독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