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디갈까?]-고성 '소담수목원 카페'

[안병섭]

[주말에 어디갈까?]-고성 '소담수목원 카페'

작고 담박한 운치 … 차 한잔의 여유

주르륵주르륵 장마철. 어릴 적 빈대떡 부쳐 먹던 기억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장마가 길고, 막걸리 한 사발 놓고 걸쭉한 농담 따먹기 할 만한 친구는 보이지 않을 때.

언제 마를지 기약할 수 없는 방안에 널린 빨랫감처럼 이 눅눅한 기분도 끝을 기약할 수 없다.이럴 땐 차라리 비 내리는 야외로 뛰쳐나가 비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비올 때 가볼만한 카페를 찾아 고성 동해면 소담수목원 카페로 향했다. '비 온다'는 지난 10일 기상청 일기예보. 거짓말쟁이가 된 TV와 라디오 때문에 비를 흠뻑 즐길만한 드라이브의 운치는 없었지만 대신 수목원 카페 구경은 실컷 했다.

	하얀 파라솔의 이국적인 데크에 앉으면 동진교 아래의 당항만을 흘러가는 물길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찻잔속에 수목원 있다?

아들은 말했다. '소담이 어떻냐'고.

'작고 담박하다'는 뜻의 이 말을 아버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지어줬고,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 헌신한 수목원의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목원에 아버지가 늘 있지만, 부산에서 의사 공부중인 아들은 자신이 이름 지은 수목원을 블로그란 이름으로 '원격관리'하고 있다.

	비올때 분위기가 더 아늑한 '소담 카페' 안의 풍경.

저 멀리 빨간 동진교조차 수목원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곳에 들어서자 처음 맞이해 준 이는 '렉스'라는 이름의 흑구였다. 이제껏 레저팀을 맞이했던 견공과는 다르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이 촐랑거리며 날뛴다.

그럼, 주인 몰래 정원 구경을 해볼까. 보랏빛 수국이 예쁘다고 그 욕심으로 한 종류로 정원을 채웠다면 꽃피는 시기만 아름다웠겠지만 이 곳은 4계절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수 있게 다양한 꽃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생태계의 전장이다.

아침부터 잔디의 잡초를 뽑느라 이마에 땀이 맺힌 노 신사는 인기척을 듣고서야 허리를 편다. 동진교 아래로 당항만을 흘러 들어가는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카페의 정원은 잠시 발걸음을 붙잡고 한동안 말문을 막는다. 이런 곳도 있다니….

성만기(62) 원장과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3억원이 넘는 수목원 설계도 그가 직접 했을 정도로 그의 수목원에 대한 열정과 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소담 카페'에서 15분 정도 더 들어가면 '만화방초'의 멋도 즐길 수 있다.

붉은 차를 내놓은 그녀는 성 원장의 부인이다. 카페주인인 그녀도 하얀 파라솔의 이국적인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고향땅에 수목원을 지을 생각을 했던 30여 년 전. 30대 젊은이였던 성 원장은 이 곳에 땅을 사들이고 주말마다 내려와 꽃도 심고 어린 묘목도 심었다. 그래서 이 곳의 꽃과 나무들은 수령이 수목원의 나이와 같은 셈이다. 젊은 시절부터 가꿔온 곳이 그가 퇴임할 무렵 울창한 수목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붉디 붉은 일몰 … 다리 그리고 수목원

이 곳의 모델은 어디일까. 똑같을 순 없지만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소피스트 로드(철학자의 거리)를 닮아 있다는 성 원장의 설명이다.

성 원장은 지난 2000년 퇴임 전까지 줄곧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기에 눈높이가 '높다'. 그래서 기자는 성 원장을 '입으로' 비행기를 태워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항공사 근무 30년간 다른 나라에서 식물이나 묘목 등 1300여 종자를 들여와 광릉수목원에 제공했다. 국내에 들여온 1300여종의 외국품종 식물과 나무를 그의 덕분에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현대판 문익점'이 아닐까.

그의 수목원에도 다양한 외국품종들이 도란도란 자리를 잡고 토종품종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져온 마로니에 나무는 이제 새끼에 새끼를 쳐서 군락을 이루었다. 영국에서 가져온 랠란디 사이프러스(랠란디 측백)는 해풍을 막아주고 아름다운 사철 상록의 싱그러움을 발산한다. 이영애가 모 CF에서 선보인 이국적인 제주 '김녕미로'의 나무가 랠란디다.

일몰 무렵이면 문을 닫는 이곳에 이제 밤손님을 받기로 했다. 캠핑용 차를 들이는데 성 원장이 들떠 있다. 아이들 마냥 신나는 모양이다.

8월쯤에 캠핑카를 들여와 목 좋은 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그래서 설치장소를 놓고 부자간 말이 오간다. 아버지는 이곳이 좋고 아들은 저곳이 좋다. 결국 캠핑카는 4인용과 2인용 두 종류를 들이기로 했다.

이 캠핑카를 이용하는 가족은 수목원 전체를 전세 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손 때 묻은 수레바퀴 모양의 의자에 앉아 소담하게 이야기 나눌 카페가 있는 곳. 이번 주말에는 사색의 길을 걷고 있는 노 신사를 만나러 가 볼까. www.sodam.org. 

'여행 가이드' 

가는길

14번 국도(통영방향)를 타고가다 창포마을 입구로 들어서서 큰 길로 가다보면 나오는 마산 진전면과 고성군 동해면을 연결하는 동진교를 건넌 뒤 좌회전 한다. 다리 아래로 난 길을 500여 미터 가다보면 왼쪽 언덕에 소담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가볼만한곳

◇만화방초 = '비밀의 정원'이란 별칭답게 입구 찾기가 어렵다. 벽방산 자락의 나무로 우거진 어두운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개인정원으로 조성했지만 봄이면 피는 야생초와 멋진 정원이 아름답다. 녹차 밭 곳곳에 핀 산벚나무가 차밭의 상상력을 키운다. 부산서 무역업을 하는 주인장의 별장치고는 그 규모가 크다. 총 10만평에 차 밭만 2만평. 녹차 5000통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지만 그는 지인들에게 나눠줄 300여 통만 거둔다.

고성 출신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만화방초(萬花芳草)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쓰레기 처리비 성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17-5(동고성 IC부근). www.bangcho.com (051) 610-1041.

먹을곳

◇백광분식(매생이 나라) = 전라도가 고향인 매생이국을 경남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매생이는 파래처럼 생겼지만 그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해초류다. 친정이 광주인 여 주인의 남도 손맛과 도내서 건져 올린 굴, 새우, 바지락, 조갯살이 어우러져 '영호남 화합국'이 되었다. 첫 숟가락질에서 받은 느낌이라면 '뜨거운 바다를 떠서 먹는' 기분이랄까.

매생이국(7000원)·매생이 칼국수(5000원)·매생이 김밥(한줄 1500원). 임곡삼거리 백광낚시 옆. (055)271-6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