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명동 집회에서 알게 된 생도분들과 전날 같이 행동하기로 약속했었다. 일단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은 춘천 시민분들과 함께 한 시 반차로 올라왔다. 한창 바쁘실 농민분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참 리더 하나 잘못 뽑았다가 온국민적으로 이 난리를 쳐야 하는구나...싶었다. 차 안에서 맥주랑 과자도 받고..^^;; 바깥 풍경은 참...평화로웠다. 옆에 분과 농담도 주고 받고 있자니 이건 뭐 그냥 놀러가는 기분.
한숨 자고 일어나니 서울. 나와 생도 분들은 시민분들과는 따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대학생 연합으로 집회중이었다. 거기서 또 여러분을 소개받고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대학생들의 모임이어서 현재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외에도 국립대 재정 자율화, 교육 시장화 반대와 같은 논제도 나오고 있었다. 꽉 찬 마로니에 공원.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각 학교의 깃발들. 관악인문, 동국한의, 충남대, 목포대, 경북대, 대구대, 울산대, 서울법대, 이화, 성균관 인문, 부산대 등등등...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아려왔다. 대학생들이, 그들의 지성이 움직인다는 사실과 저렇게 당당하게 떨치고 일어난 깃발중 우리학교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네 시 반쯤 되었을까.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왔다. 시청 공원까지 행진이다. 대학교의 깃발들이 거리로 나섰다. 행진하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 교육시장화 반대한다, 한미FTA반대한다, 언론탄압 중단한다 등의 구호도 외쳤다. 바위처럼이나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같은 민중가요도 불렀다. 민중가요를 하는 동아리이고 많이 불러왔지만 이 때 불렀던 민중가요가 진짜였다고 느꼈다. 역시 현장감이 있어야 돼!! ㅋㅋㅋ 옆차로의 운전자분들이 고시철회 협상무효 등이 쓰여진 피켓을 들고 우리에게 환호해주었고 우리도 환호로 답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행진. 민주시민 함께해요라는 구호가 효과가 있었는지 인도에 있던 어머님이 유모차를 들고 차도로 내려오셔서 합류해주셨다. 그 뒤로도 여러 시민들이 합류했다
시청에 도착하자 얼떨결에 아이스크림도 얻어먹게 되었다. 보니까 아이스크림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차가 있더라-_-; 행진한 대학생들 고생했다고 어느 고마우신 분이 쏘셨나보다. 잘먹었습니다!! 그 뒤로도 공짜로 간식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많았다..-_-;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대가 안 보이도록 일부러 배치해둔 닭장차에 사람들이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저런 센스는 어디서 나오나 몰라, 진짜. ㅋㅋㅋ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 도로에까지 사람들이 나앉을 정도였다. 하지만 촛불 들고 자리잡고 앉은지 한 두시간...? 청와대 길목쪽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강제로 연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핸드폰 시계를 보니 한..8시 10분..? 아직 해도 다 안 떨어진 시간부터 연행이 시작되었다 이거다. 그 길로 일어나서 대오를 정비했다. 그쪽으로 합류하러 가기로 했다. 그 때 춘천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연락이 왔다. 서울 와서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귀가라니. 22살 젊은 나이가 아까웠다. 같이 오신 분한테 난 계속 여기 있겠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그 분은 날 혼자 두실 수 없으셨는지 끝까지 동행해주셨다. 정말 저 때문에 고생하시고...폐만 끼쳐드려서 너무너무 죄송합니다..ㅠㅠ
그리고 또다시 행진...한쪽 차로를 내주신 운전자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연호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터널도 걸어서 지나가는 경험도 했다. ㅋㅋ 한창 잘 가다 보니 길이 막혔다. 전경들이 깔려있었다. 대치하고 있는데 같이 계시던 분이 이쪽이라고 뛰란다. 멋도 모르고 그 분 손 붙잡고 내달렸다. 거기가 사직이었는데 전경들 뒤쪽으로 사직공원 안으로 들어가 담을 넘었다. 나 고소공포증 있다.-_- 같이 계셨던 분이 내려올 수 있다고 믿음을 주시며 이 무거운 몸을 받아 내려주셨다. 감사하고 송구합니다...ㅠㅠ 담을 넘고 나니까 기가 막혔다. 내가 지금 2008년에 대학교 다니는 학생인가? 민주화가 이루어진 축복받은 년도에 태어나 또 부모님 세대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가? 나라 위해 목소리 한 번 내겠다고 전경 피해 담까지 뛰어넘어야 하나? 그때 마침 걸려온 아는 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통곡을 했다. 나중에 같이 있었던 분 말씀 들어보니 셋 다 정말 걱정하셨다고...ㅋㅋㅋ 지성함당. 같이 계셨던 분께서도 손수건 꺼내주시며 어디 다쳤냐고 걱정하셨다-_-; 후기를 쓰는데 민폐일정이구만..-_-;;
그렇게 피해서 나갔는데 또 막아서더라...결국 학생들은 차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차사이로 막 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에 기수들 깃발 보고 무작정 뛰면서 보니까 차안에서 어떤 여자분 경악에 찬 얼굴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계시더라. 기가 막히시죠? 저도 그래요. 쨌든 교통에 불편을 드려 죄송했습니다. 전경들이 거기까지 꾸역꾸역 들어와서 막던데...난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냥 일단 뛰었다. 정말 송구하다. 제발 연행되지 않으셨기를. 그렇게 피해 다시 가다보니..어떤 분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계셨다. 경악스러웠다. 나와 함께 계셨던 분은 안경다리 하나가 날아갔다. 이명박에게 청구하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 죄많은 인간. 넌 전재산을 헌납해도 이 죄 다 못 갚는다. 뭐, 헌납할 위인도 아니지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행진하다가...경복궁 쪽에서 막혔다. 아주 닭장차로 담을 쌓았더라. 촛불집회는 많이 나가봤지만 이런 식의 집회는 처음이었던 나는 조금 있으면 뚫리겠지...라는 생각으로 있었지만...그 현장에서 날밤을 새고 집으로 돌아왔다...-_- 진짜 징하더만. 중간에서 어떤 분들이 꽃을 다발로 사오셨다. 전경분들 드리려고 사오신 거 같은데...나는 전경들에게 꽃을 꽂아주던 20년 전의 광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들도 어쩔 수 없이 하시는 거겠지만 꽃 받으시고 뭔가 느껴주셨으면, 우리는 경찰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몇시간을 그 자리에 서서 폭력경찰 물러가라. 이명박이 불법이다. 이명박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들의 답은 12시가 조금 지난 뒤의 살수였다. 나는 운이 좋아 시위대 앞쪽에 있었지만 센 수압으로 맞지는 않았다. 새벽이고 해서 춥다보니 다시 살수차를 쏘려고 조준할 때 대학생들 사이에서 온수! 온수! 온수! 하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샴푸! 샴푸!!하면서 ㅋㅋㅋ 다들 웃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고등학생 한명이 실명했고 한 분은 닭장차 위에 있다가 맞고 떨어져 의식불명이 됐다고 하셨다. 그 때 당시엔 제발 헛소문이기를. 눈 조금 다쳤고, 잠시 기절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난 정말 엄청난 행운아구나 싶으면서도 치가 떨렸다.
전경들이랑 몸싸움이 있었던 과정에서 운동감각도 방향감각도 없었던 나는 여자분들은 뒤로 빠지라는 남자분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앞에 끼어 전경오빠들과 부비부비를 했다-_-; 어느순간 모자도 없어지고, 키가 작다보니 하이바에 이마가 쓸렸다. 아팠다-_ㅜ; 잠깐 뚫려서 닭장차 사이에까지 오게 되었을 때 어떤 여자분이 날 뒤에서 꼭 안고 계셨다. 내가 힘들어할 때 눈 마주쳤던 분이었다. 그 분의 머리채를...어떤 전경이,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휘어잡았다. 너무 놀라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남자분은 격분하셔서 쌍욕을 하면서 항의를 하셨는데 또 그걸 빌미로 삼아 그 남자분을 연행하려고 하셨다. 다행히 주위의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말려 연행되진 않으셨다. 개새끼. 어떤 전경분들은 여자인 내가 앞쪽에 끼어 있으니 걱정스레 쳐다보시기도 하고..자기도 그러고 싶지 않아하는듯한 기색이었는데 그 새끼는 정말 개새끼였다. 나이 좀 있어보였지만 그런 거 없다. 그 새끼는 나한테 평생 개새끼다. 얼굴도 기억해뒀다-_- 그런 몇몇 개새끼들 때문에 다른 전경분들까지 욕을 먹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 안에서도 몇 번 살수를 맞았다. 처음 맞을 땐 괜찮았는데 두 번 세 번 계속 맞으니까 진짜....추웠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날씨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물먹은 청바지가 자꾸 달라붙어서 앞으로 집회 올 땐 절대 청바지 입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쩌다보니 오마이뉴스 기자랑 인터뷰도 하게 됐다^^;; 그 때 내 위치가 살수차 바로 옆이었다. 그곳에 전경들이 몇 분 계셨는데 먹힐 거란 생각은 안했지만 정말 눈물로 호소했다. 하기 싫은 일 늦게까지 하시느라 정말 수고하셨다고. 제발 길 좀 비켜달라고. 우리 전경이랑 싸우러 온 거 아니라고. 어떤 여자분은 경찰 아저씨 제발 살려달라고 하셨다. 국민이, 경찰한테 살려달라고 눈물 흘리면서 청해야 한다. 정말 서러워서 또 울었다. 그 때 같이 오셨던 분이 나를 찾아오셨다. 정말 걱정 많이 하신 눈치였다. 그 분 손에 이끌려 뒤쪽으로 나오면서도 서럽고 기가 막혀 대성통곡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서 꼴사납게 통곡을 하는 나에게 꽂히던 사람들의 시선들이란...-_-;;;;;; 어떤 외국인 남자분께서 서툰 한국발음으로 괜찮아요. 하고 날 달래주셨다. 어떤 여자분께서도 담요 덮어주시면서 여벌 옷 드릴까요 하고 물어오셨고. 정말 감사했다-_ㅜ
뒷쪽에선 불을 때 사람들이 몸을 녹이고 있었다. 이명박 덕분에 서울대로한복판에서 전국민 캠프파이어도 한다. 국민연대엔 정말 대대적인 기여를 한다. 진짜 고맙습니다, 각하^^ 불을 쬐면서 내가 아는 쟁가들을 흥얼거렸다. 동지, 임을 위한 행진곡, 민중의 노래 등등...동아리에서 배웠던 대로 팔뚝질하면서 목에 딱딱 힘주고 특정 글자에 악센트 넣어가며 부르지 않고 조그만 목소리로 흥얼거렸지만 그 순간이 내가 진정으로 민가를 부르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웬일인지 앞부분 가사는 생각이 잘 나지 않았지만..-_-
그렇게 좀 있었을까...자꾸 먹을 게 늘어간다. 열량있는 초코바나 초콜릿 코팅된 과자, 따뜻한 캔커피...나중엔 김밥도 왔다. 디씨 음식갤러리에서 지원해 준 것이라고 한다. 김밥에는 "저희가 여러분의 배후입니다. 힘내세요."라고 쓰여있었다. 어떤 주부님께서는 수건과 옷들을 가져오셨다. 내게 덮어주신 건 겨울에 입는, 드라이클리닝 해야할법한 재질의 코트여서 너무 황송했다. 이거 입어도 되냐고 물으니 너무도 흔쾌히 그래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정말 너무 따뜻했다. 초여름 밤에 한겨울에나 입을 코트를 껴입고 덜덜 떠는 내 꼬라지라니...지원해주신 분들 감사히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동이 텄다...충분히 쉬고 합류했을 때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2002년도 유행했던 대한민국 구호 박자에 맞추어 명박퇴진~!!을 외치고 있었다. 실명됐다 책임져.를 외칠 땐 너무 섬뜩해서 도대체 누가 실명되었느냐고 물었다. 위에서 설명한 그 아이 얘기다. 너무 끔찍했다. 대치하면서 애국가도 부르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일관되는 노래도 불렀다 하지만 위생관념이 철저하신 전경분들은 살수차로 세수를 시켜주셨을 뿐이었다....고마워요, 국민세금으로 만든 살수차로 샤워에 빨래에 세수까지 시켜줘서.
6시쯤 되었을까. 전경들에게 현장에서 시민들이 불 쪼이던 곳까지 밀렸다. 남자분들이 밀어내려고 하니까 냅다 소화기를 뿌렸다. 지금 들어보니 지금 쓰는 소화기들 2003년 이후론 유해해서 못 쓰게 하는 거라던데..-_- 살수도 원래 20M인가..? 그 이상 가까이에서는 쏘면 안된다고 하던데 그건 완전 직격타였고. 불법진압은 그쪽이 하고 있다. 실제로도 심각하게 다치신 분들도 많고. 닭장차에서 방송되는 고상한 여경 언니의 불법시위라는 말에 코웃음 쳐줬다.
그렇게 밀린 쪽에서 대치를 하다가 우리 일행은 청량리에서 7시 5분 기차로 돌아왔다. 나는 운이 좋게 무사히 돌아오긴 했지만 사진을 보자니 내가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력진압이 시작된 것 같았다. 어떤 여자분이 몽둥이로 맞는 장면이었나...보고 피가 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본 그날의 새벽은 민주공화국의 메가시티가 아니었다. 그곳은 그저, 국민의 목소리를 탄압하는 폭력에 맞서 투쟁의 깃발이 휘날리던 20년 전일 뿐이었다. 1980년의 광주, 2008년의 서울. 이명박은 국민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자국민이 자신이 휘두른 공권력에, 전경의 몽둥이에, 방패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중국에 가서 대지진 맞은 아이를 감싸안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귀국해서 하는 말이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선동했냐고 한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나의 배후는 나의 양심이고, 나의 분노이고, 이명박이다. 앞으로도 기회 닿는대로 참여할 생각이다.
2008년 6월!! 2차 6월 항쟁으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
첫댓글 미안해 함께가지 못해서..
수고했어 은미야. 언젠가 승리할거야. 함께 싸우자.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