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그 거지 남매와 포구에서 만났어요.
"누나, 눈이 바다보다 넓게 내린다."
스님이 돌아보니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장님 소녀의 손목
을 잡고 나란히 서 있었어요.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스님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스님 눈썹에도 눈송이가 떨어졌는걸. 콧등에도야."
장님 소녀가 물었어요.
"누구니?"
"스님이야. 머리에 머리카락 씨만 뿌려져 있는 사람이야."
스님 입가에 초승달 같은 웃음이 물리었어요.
"누나, 오늘 하늘이 저 스님이 입은 옷 색깔하고 같아. 맞아,
맛없는 국 색깔이야."
장님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알겠다. 그러니까 때 지난 나물국 빛이다, 이거지?"
스님은 사내아이의 나무 그릇에 돈을 놓았어요.
한참 가다가 돌아보니 남매는 눈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요.
스님이 설악 자락으로 접어들었을 때였어요.
"누나, 식은 나물국 스님이 가고 있다."
스님은 가만히 길가 짚더미를 헤쳐 보았어요.
장님 소녀와 그 아이가 노랑지빠귀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었어
요.
"너희들, 왜 집에 가지 않고 여기에 있니?"
"우리는 집이 없어."
"눈이 그치면 눈보라가 칠 텐데......"
"괜찮아. 우리가 사이좋게 있으면 매운 바람도 우릴 비켜 가는
걸."
"날 따라가지 않을래? 내가 묵는 절에 가면 따뜻한 방도 있고
밥도 있단다."
"정말이야? 스님!"
사내아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손뼉을 쳤어요.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길손이야. 떠돌이라는 뜻이래. 누나 이름은 감이구. 눈
을 감았으니까. 그래서 감이야."
"이제부터 너희는 부모 잃은 내 조카가 되는 거다."
"누나, 아줌마 셋이 대웅전에서 절을 하고 있어. 복 달라고
명 달라고 비는 거야. 부처님도 참 성가시겠다, 그지?"
"내가 누나 댕기를 잡아당긴 게 아니야. 바람이었어. 바람이 어
떻게 생겼느냐고? 아유, 답답하다, 답답해. 바람은 손자국, 발자
국 흔적만 보여. 부처님도 못 보냐구? 그건 모르겠는데. 누나, 우
리 스님한테 물어보자."
스님은 우물가에서 발을 닦고 있었어요.
"스님, 부처님 눈에는 바람이 보여? 저기 저 전나무 가지를 흔
드는 손님 말이야."
"부처님 눈에는...... 그래. 바람이 보이지. 마음의 눈을 뜨고
계시니까. 지금 감이는 몸의 창문이 닫힌 거구, 길손이와 나는 마
음의 창문이 닫혀 있는 거야. 마지막 마음의 창까지 연 분이 부
처님이란다. 그땐 바람도 보이고 하늘 뒤란도 보이는 거지."
"스님, 나도 마음의 눈을 뜨고 싶어. 그래서 우리 감이 누나한
테 이 바깥 세상을 더 잘 말해 주고 싶어."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해. 길손이 너도 공부하러 갈래?"
스님이 길손이를 데리고 암자로 가기로 마음먹은 데는 까닭이
있었어요.
길손이는 장난이 심하여 절의 젊은 스님들에게 미움을 받았거
든요.
밤에 이불에 오줌 싸는 일이 사흘에 한 번꼴, 조용해야 할 선
방으로 날짐승을 몰고 와서 우당탕거리는 일이 이틀에 한 번골,
법회 때면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방귀를 뽕 소리가 나게 뀌지 않
나, 불개미를 잡아와서 스님들의 바짓가랑이 속으로 들여보내지
않나. 그런데 감이는 암자에 데리고 갈 수가 없었어요.
"산이 험하기 때문에 감이가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말없이 옷섶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감이가 입을 열었어요.
"전 여기 남아 있을게요. 우리 길손이를 데리고 가서 공부만 많
이 시켜 주세요."
겨울잠에 빠져 있던 암자는 길손이의 소리로 깨어나기 시작하
였어요.
"누나, 꽃이 피었다. 겨울인데 말이야. 바위틈 얼음 속에 발을
묻고 피었어. 누나, 병아리의 가슴털을 만져 본 적이 있지? 그래,
그처럼 꽃이 아주 보송보송해. 저기 저 돌부처님이 입김으로 키
우셨나 봐."
스님이 빨래를 널고 오는 발소리가 났어요.
"조금 전에 누구한테 말을 했느냐?"
"감이 누나한테 했어."
"감이는 아래 큰 절에 있지 않느냐?"
"아유, 답답해. 누난 내 곁에도 있어. 감이 누나가 그랬어. 내
가 있는 곳엔 어디고 감이 누나 마음이 따라와 있겠다고."
"고 녀석 참......"
스님은 뒷머리를 만지며 선방 안으로 사라졌어요.
"스님!"
우두커니 서 있던 길손이가 갑자기 선방 문을 열고 스님을 불
렀어요.
스님은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귀머거리가 되었는지 대답을 하
지 않았어요.
"스님, 나하고 좀 놀아."
그래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어요.
"앉아 있기만 하면 뭣 해! 벽에 뭐가 있어? 솜다리꽃 하나도
피우지 못하구서!"
길손이는 우물가로 가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흰구름은 산 너머로 놀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옳지, 저 마루 밑을 뒤져 보자. 밤이고 낮이고 캄캄하기만
한 저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길손이는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어요. 마루 밑에서 나온 길
손이의 손에는 깨어진 바릿대와 염주알 세 개가 들려 있었어요.
길손이가 암자의 구석진 곳을 뒤지는 일로 재미를 삼기 시작한
것은 이날부터였어요.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이었어요.
길손이가 뒤란 맨 끝 골방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어요.
"그 방은 문둥병에 걸린 스님이 묵고 있다가 죽은 곳이란다."
언젠가 길손이가 물었을 때 스님이 일러 준 말이었어요.
"누나, 방도 무섭게 생겼지? 그래도 한번 들어가 볼래? 누나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래?"
길손이는 살며시 문고리에 손가락을 걸었어요.
발로 문턱을 받치고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겼어요.
그러자 문이 와당탕탕, 떨어졌어요.
길손이가 문고리를 움켜쥔 채 마룻바닥에 넘어졌어요.
방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넓었어요.
"누나, 가만. 벽에 그림이 있다. 머리에 관을 쓴 보살님이야.
살며시 웃고 있어."
길손이는 그림을 향해서 절을 하였어요.
"안녕하세요. 전 길손이예요. 오늘 너무 떠들어서 죄송해요."
길손이는 문짝을 기대 놓고 밖으로 나오다 말고 다시 골방 안
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내일부터 놀러 와도 돼요?"
이튿날 길손이는 아침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골방으로 달려갔
어요. 그리고 그림 앞에 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였어요.
"스님은 김치를 꺼내다가 얼음 조각에 손가락을 베었어요. 보
살님도 춥지요? 가만있어요. 내가 솔가리를 긁어 와서 군불 넣어
드릴게요."
길손이는 그림 속의 보살님이 소리내어 웃게 하고 싶었어요.
토끼가 귀를 세우고 뛰어가는 깡총 걸음을 흉내내기도 하고,
목탁을 치면서 염불하는 스님 흉내도 내었어요.
슬며시 소리 안 나게 방귀도 뀌었지요.
"아유, 냄새! 보살님이 뀌었지?"
그분은 소리 없이 웃기만 하였어요. 길손이는 보살님이 마냥
좋았어요.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
르는걸요. 내 소원은... 내 소원은... 저... 엄마를... 가지
는 거예요. 저... 엄... 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흰구름이 낮잠을 자는 오후였어요.
길소이는 골방에서 놀고 있었어요.
"엄마, 삶은 밤이어요. 가장 큰 것을 남겨 왔어요. 어서 잡수세
요. 참, 맛있어요."
그때 스님이 길손이를 불렀어요.
"그 방에 드나들지 말랬지 않느냐."
"엄마가 있는데?"
"탱화를 보고 하는 말이로군. 고 녀석 참...... 그건 그렇고
내일 나는 저잣거리에 좀 다녀와야 할까 부다."
"싫어, 나 혼자 있지 않을 테야."
"금방 다녀올게. 길손아, 내가 없는 동안 무섭거나 어려운 일
이 생기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찾거라.
알았지?"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이 오셔?"
"오고말고. 네가 마음을 다하여 부르면 꼭 오시지."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러면 엄마가 온단 말이지?"
"인석아, 엄마가 아니고 관세음보살님이라니까."
스님은 부랴부랴 장터를 벗어 나오면서 또 한 번 하늘을 올려
다보았어요.
"큰눈이 오겠는걸. 설악 쪽은 벌써 어두워졌어."
대장간 노인이 풀무에서 손을 놓으며 말했어요.
스님은 걸망의 멜빵을 당기고 남이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 세
걸음을 서둘러 떼어 놓았어요.
그러나 눈은 스님이 버덩말에도 이르기 전에 쏟아졌어요.
눈은 목화 송이만 씩 해서 금방 산과 들을 하얗게 덮었어요.
눈 속에 스님의 발목이 빠지고 정강이가 빠졌어요.
"안 돼! 길손이가 혼자 있어! 먹을 것도 없는 암자에 어린아이
만 혼자 있다고!"
길조차도 눈 속으로 숨어 버렸어요. 스님은 부처님을 부르며,
길손이를 부르며 눈 위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스님이 눈을 떠 보니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 안방이었어요.
"나무를 해 오던 우리 아들이 눈 위에 쓰러져 있는 스님을 발
견해서 업고 왔지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나는 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마등령
암자에 혼자 있습니다."
"네에? 거기는 절대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쌓였는
데 거기가 어디라고 올라갑니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은 그날부터 앓았어요. 길손이를 부르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스님은 앓다 앓다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큰 절에 있는 감
이를 데리고 관음암에 올랐어요. 그날은 길손이를 혼자 남겨 두
고 떠나온 지 한 달하고 스무 날째가 되던 날이었어요.
마등령 고개쯤부터 감이의 귀가 자주 쫑긋거리었어요.
눈썹도 움찔움찔 움직이었어요.
"스님, 냄새가 나요."
"사향노루 내음 말이냐?"
"아냐요. 우리 길손이 내음이어요."
"허허, 고 녀석 참......"
스님은 감이를 업었어요. 한참을 걸었어요.
"스님,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으셔요?"
"무슨 소리? 윙윙거리는 저 소리는 전나무를 울리는 바람 소리
인데."
"아냐요. 바람 소리 말고.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
셔요, 스님?"
스님도 들었어요.
바람을 타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들려오고 있었어요.
"가만히 들어 봐요. 스님, 저 봐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
잖아요."
"저... 저... 저... 소리는......"
스님은 감이의 팔을 잡아끌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스님은 암자로 들어서
기가 바쁘게 무릎을 꿇었어요. 막 길손이를 부르려는데 소리 없
이 법당 문이 열리었어요. 살며시 걸어 나오는 발, 그것은 길손
이의 빨간 맨발이었어요.
"아니, 어떻게 된 일이냐? 길손이 네가 살아 있다니?"
"엄마가 오셨어요. 배가 고프다 하면 젖을 주고 나랑 함께 놀
아 주었어요."
그때 뒷산 관음봉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소리도 없이 내
려왔어요. 여인은 길손이를 가만히 품에 안으
며 말하였어요.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
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꽃이 피면 꽃 아이가 되어 꽃과 이
야기하였고, 바람이 불면 바람 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
다. 과연 이 어린아이보다 더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이 순간 우물 속의 흰구름이 빨갛게 변하였어요.
그때였어요.
감이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터진 것은.
"스님, 파랑새가 날아가고 있어요!"
댓돌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스님이 고개를 들었어요.
"정말 관세음보살님이 파랑새로 몸을 바꾸어 날아가고 있구나.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감이 너 눈을 떴지 않느냐?"
"네, 스님, 모든 게 보여요. 햇빛도 보이고, 스님도 보여요.
마루 위에 잠이 들어 있는 길손이도 보여요."
"아아, 부처님."
길손이는 엄마의 그윽한 품에 아주 편안히 누운 것 같았어요.
뺨에 손바닥을 괴고 모로 누운 모습이 재미있는 놀이라도 구경
하고 있는 듯하였어요.
이 시간 설악산에는 꽃비가 내렸어요.
솜다리, 금낭화, 금초롱, 철쭉꽃이 온 산을 덮었어요.
다람쥐, 오소리, 토끼, 사슴들이 꽃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
는 관음암을 향하여 달려왔어요.
사흘 후, 길손이의 장례식이 있었어요.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스님과 사람들이 몰려들
었어요.
모두들 골방으로 가서 길손이가 만나 본 탱화 속의 관세음보살
님을 향하여 자꾸자꾸 절을 하였어요.
스님들은 한때 길손이를 구박했던 마음을 깊이깊이 뉘우쳤어
요.
스님들은 이 암자의 이름을 아예 바꾸기로 하였어요.
다섯 살짜리 아이가 부처님이 된 곳이라고 해서 "오세암" 이라
고 부르기로 하였어요.
그러나 길손이를 돌보다 온 설정 스님과 감이의 슬픔은 가시지
않았어요.
설정 스님은 부처님 공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감
이는 눈을 떴지만 길손이가 들려 주던 이 세상 풍경 얘기를 더욱
더 그리워하였어요.
오후가 되어 장작불이 타올랐어요. 연기는 곧게 하늘로 올라가
서 흰구름과 함께 흘러갔어요.
스님들은 모두 염불을 하였고 사람들은 절을 올렸어요.
감이만이 울면서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