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 언급했던대로 오늘은 <베니씽 트윈>을 얘기해 볼까한다. 사실 그
전에 본 <크레이지 핸드>나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제서야 본 --;)
<데스티네이션>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베니씽 트윈>은 안 하면 잊혀질까봐
지금 해둔다.
일단 <베니씽 트윈>이라는 용어의 설명부터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사실
이 용어의 매력에 끌려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베니씽
트윈이란 의학 용어로 자궁 속의 쌍둥이 중 한 명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원래는 쌍둥이가 자라고 있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한 명이
다시 자궁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그 쌍둥이 중
남은 한 명은 쌍둥이 중 사라진 다른 한 명이 영원한 안식처(엄마의 자궁)로
자신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생각이 무의식 깊숙이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자궁에 남아있는 탓에 온갖 고통을 다 겪으면서 바깥 세상으로
나와야만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한 명은 살아가면서 대인관계 결핍이나 상실감을 동반한채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무의식 깊은 곳에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사람들과 잘 친해지지 못하고 그 사람들 마저도 언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채 살아가고..
흥미롭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이 설정 자체에 멋진 광고 카피를 봤을 때
만큼이나 전율을 느꼈다. 게다가 여기에 살인까지 얽혀있다면? 살인인지
아닌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만.. 어쨌든 여기엔 죽음이 얽혀있다. 그것도
자신의 친언니와, 형부가.
...
나는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영화를 다 즐겨보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 유독
더 관심이 간다. 이런 매혹적인 문제를 어떻게 영화로 풀어낼 것인가, 에
대하여. 그렇다면 <베니씽 트윈>은?
안타깝게도 <베니씽 트윈>은 여기에 어색한 듯한 '섹스 미스테리'라는 상품을
섞어 놓았으며 그로 인해 노출 연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열연했던 지수원을
어리벙벙한 위치로 다운시켜 놓았다. 게다가 지수원의 상대방 역할을 했던
그 신인의 카리스마는 너무나도 부족해서, 차라리 조연 격인 형부 역을 맡았던
배우의 카리스마가 더 돋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음악의 설정.
나는 언제까지나 영화에서의 음악은 보조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몇몇 특별한 장면에서는 음악이 영화를 이끌어 갈수도
있지만(그런 면에서 <화양연화>는 정말이지 기가막힌 작품이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한 보조수단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이 음악을
<베니씽 트윈>에선 재즈라는 이름으로 무지하게 남발한다. 재즈의 정신은
관능이 아니지만.. 뭐 좋다. 관능적이고 아릿아릿한 이미지로 재즈를 쓰는 건
좋은데 도대체 그걸 몇 번씩이나 우려먹느냐는 거다. 결국 극은 지루해지고
남는 건 해석도 안 되는 결말 뿐이다.
나는 정말이지 안타깝다. 이러한 독창적인 소재로 왜 멋진 시나리오를 안 쓸까.
섹스 미스테리, 라는 수식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왜 그로인해서 오히려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느냐가 내가 딴지를 걸고 싶은 부분이다. <원초적 본능>
같은 아주 멋진 섹스 미스테리를 만들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혹평이지만, 이건 정말 아쉬움이 남아서 하는 혹평이다. 과제를 열심히 해서
낸 학생의 숙제를 들추어보니 생각은 독창적인데 결론으로 다가서는 과정과
결론이 엉성해서 점수를 줄 수 없는 것 처럼 나도 이 작품에 냉정히 D0를
던진다. 부디 다음 영화에서는 지수원의 그 멋진 목소리가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면서 감동을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