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즐거움 -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IT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컴맹은 과거 문맹에 버금가는 사회 부적응자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이나 이메일 전송 정도의 기본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리지만 최소한 컴퓨터를 아는 사람은 컴퓨터가 본래 기억연산장치로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가장 중요한 두 부분, 즉 램(Ram)과 롬(Rom)이라는 핵심 부품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안다. 흔히 메모리라고 부르는 램(Ram)은 전원이 나가면 담겨있던 정보가 사라지지만, 하드디스크의 원리인 롬(Rom)은 전원이 꺼져도 이전에 기록된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디스크 표면에 기록되어 언제라도 다시 불러 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가끔 우리 신학교의 교육이 이른바 ‘램교육’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와서 신학이란 과목을 처음으로 접해 보지만, 방대한 양의 신학적 지식과 난해한 철학과 신학 사상에 지레 겁을 먹거나 사제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 정도로 생각해서 시험 전에 열심히 램장치에 시험 정보들을 넣어 두고,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전원을 꺼서 램의 데이터를 지운 뒤 새로운 정보를 램에 담아두기에 정신이 없어 보인다. 학교에서 학업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단지 램의 용량을 더 늘려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빠르게 담아두는 특별한 재능(?)을 키우기는 해도 좀처럼 신학적 지식들을 하드 디스크와 같이 조금은 느리지만 언제라도 저장과 관리가 용이한 롬(Rom)에 저장해 두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이런 점들은 학업에 동기 부여 만큼이나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급변하는 오늘날 신학생들이 미래의 사목자가 되기 위해서 이에 걸맞는 영성이나 체력, 덕성을 키워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화 시대에 정작 신학의 전문가가 되는 일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미래 한국사회에서 사제가 가져야할 권위는 단순히 서품과 동시에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다머가 오늘날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권위란 결코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이성적 확신과 지적 우위성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정신문화의 부재를 겪고 있는 한국인들을 영적으로 채워주기 위해서는 탁월한 신앙의 모범뿐만 아니라, 정체성 위기에 빠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이성적인 탁월한 해석능력을 지녀야 한다. “여러분이 간직한 희망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답변할 준비를 해두십시오(1베드 3, 15)”라는 성서 말씀은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둘 신학의 대헌장일 수 있다.
학업은 습관을 중요시한다. 호기심과 관심 없이 학업은 시작되지 않는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이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다 자극하진 않겠지만, 자신이 찾고 있는 사제직에 대한 열망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자기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학교에서 램교육이 아닌 롬교육이 활성화 되려면 신학교가 단순히 사제 양성소에 머물지 않고, 신앙의 아카데미의 산실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의나 신학 서적을 탐독하는 즐거움을 찾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술 동아리가 취미 동아리만큼 활성화되고, 공동의 스터디 그룹이 생겨나고, 서로 배우고 들은 이야기들을 토론하면서 서로의 이해력을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쁜 신학교 일정 속에서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도 신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방법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어쩌면 우리 신학생들은 교회라는 온실 속에서 자라나는 화초들과 같다. 세상에서 겪어야할 시름들을 교회가 감싸주는 대신 그 안에서 순수하고 열정을 지닌 영성적인 신학생들이 자라나야 하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진리에 목말라 하고, 이를 함께 탐구하면서 우리 시대에 빛과 소금이 될 탁월한 신학자가 태어나야할 곳이기 때문이다. 신학의 즐거움. 우리가 함께 다시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첫댓글 저처럼 일반신자들도 무척 공감되는 글입니다.
"사제가 가져야할 권위는 단순히 서품과 동시에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찾고 있는 사제직에 대한 열망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자기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램교육이 아닌 롬교육의 활성화는 신학교 뿐만 아니라 신자교육에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램(Ram)과 롬(Rom) 교육의 예화는 참 새롭고 좋습니다.
주입식 신앙교육과 체험식 신앙교육이랄까? ? ? ?
신부님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