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월요일)
숙소(찜질방)을 나오니 7시 45분이었다.
숙소에서 뚝섬한강유원지 입구까지 20분 거리였다.
워커힐에서 잠실대교까지는 도심을 걸어야 한다.
중간에 한강변으로 나가는 길이 있지만,
수돗물 취수장 때문에 둔치길이 연결 되어 있지 않다.
취수장이 있는 지역은 출입통제지역이기 때문이다.
[강변둔치길을 막고 있는 수돗물 취수장]
둔치에 나오니 아침 햇빛이 물결 위에서 부서졌다.
쾌청한 날씨였지만 차가운 바람은 코끝에 매서웠다.
멀리 강 건너 무역센터의 건물이 희뿌연 매연 속에 싸여 있었다.
[강변북로 둔치에서 바라본 강남 무역센터 건물]
청담대교를 지나 영동대교를 바라보면서 아침을 먹었다.
식전에 한 시간 정도 걸었더니 배가 출출했다.
아침이래야 미숫가루 두어 숟가락을 우유200ml에 타서 먹는 것이 전부였지만,
배고픈 나그네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
조금씩 마시면서 천천히 씹으니 미숫가루의 한알한알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강가에서 모이를 주워 먹고 있는 비둘기들, 한강이 많이 맑아졌다.]
[자전거 길이 잘 닦여 있는 강변북로 둔치길]
도보여행을 할 때에는 배고픔이나 식욕이 별로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운동과는 달리 몸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에서 모터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평소에 걷기를 계속하다보면 식욕이 없어질 때가 있다.
이것은 몸이 정상 체중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위까지 작게 줄어들어 속 쓰림이나 공복감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건강을 해치거나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몸에 과도하게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지방)를 쓰기 때문이다.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은 경우라면 이럴 때 적게 먹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나는 식욕이 없으면 거의 먹지 않는다.
그래도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다.
더구나 도보여행의 강도는 평소에 서너 시간 걷는 것보다
시간상 강도가 높기 때문에 지방이 가장 잘 분해 될 수 있는 환경이다.
동호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는 강변북로가 고가로 되어 있어
걷는 내내 다리 밑을 걸어야 했다.
여름에는 그늘이 생겨 걷기에 시원할 것 같았으나 그리 상쾌한 코스는 아니었다.
[고가밑으로 계속되는 한강 북변 둔치의 자전거 길]
좀 지루하여 mp3의 음악을 즐기며 걷다보니 동작대교가 보였다.
12시 50분이었다.
추워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야 했다.
마침 이촌동 한강 둔치길에 토끼굴이 있어 들어갔더니
동네 아파트 왼쪽에 중국집과 한정식집(미향:798-7833) 하나가 보였다.
[이촌동 토끼굴] [중국집 저~쪽으로 한정식집 간판이 보일락말락]
지금까지 도보여행의 경험으로 볼 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깨끗하고 맛깔나는 음식(13,000원)을 한상 가득 푸짐하게 먹고,
기분 좋게 한강 둔치로 나오니 바람이 시원했다.
강 건너편에는 6.3빌딩이 하늘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한국 현대판 바벨탑 같은 6.3빌딩]
원효대교에서 당산철교까지도 고가다리 밑을 걸어야 했다.
강변 북로 길은 둔치가 좁은 곳이 많아 강변북로 차도가 고가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성산대교에서 쉬었다. 4시 30분이었다.
저무는 해가 강물에 가라앉고 있었다.
[방화대교쯤에서 바라본 저녁노을]
방화대교에서 쉬었다. 6시 15분이었다.
해가 개화산에 걸렸다가 넘어가니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태양이 넘어간 개화산, 그 옆에 방화대교. 자연과 인공의 조화?]
어둠은 행주대교까지 가는 길을 험난하게 만들었다.
구행주대교에 오르니 7시 45분이었다.
20분 거리의 길을 헤매고 헤매어 1시간 30분 만에 온 것이었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구 행주대교, 그 옆에 신행주교의 불빛이 휘황하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구행주대교는 갈지자로 걸어도 넓었다.
구행주대교 위에서 신행주대교의 가로등 불빛에 화려한 고독을 즐길 수 있었다.
발산에 도착하니 9시 10분이었다.
[걸으면서 깨닫는다]
빨리 걸으면 지루하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지루하지 않으려면 시간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늘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시간을 피해 고독을 만난다.
그리고 그 고독을 통해 내면의 자아와 세계를 만난다.
시간을 물리적으로 느끼려는 순간부터 인간은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 같다.
사랑을 물리적으로 느끼려는 순간부터 마음은 미움의 싹을 키우게 되는 것 같다.
행복을 물리적으로 느끼려는 순간부터 마음은 이미 불행을 부르고 있는 것일 게다.
시간, 사랑, 행복을 늘 물리적으로 계산하면서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시간의 바닷가에서 고독의 조개를 줍고 있다.
말이 되나??????^^*
걸은 거리 : 강변역에서 행주대교를 지나 다시 거슬러 발산역까지
걸은 시간 : 7시 45분부터 9시 10분까지
식사 : 아침 - 우유한잔+미숫가루
점심 - 한정식으로 진수성찬
저녁 - 우유한잔+미숫가루
첫댓글 소진님은 길위의 철학자.. 예요. 넘 부러워요.
소진님은 봄도 멎지게 받으 시겠습니다.... 지화자....입니다.
하늘에 목 맨 63빌딩,갈지자로 걸어도 넓은 구행주대교 길, 게다가 시간의 바닷가에서 줍는 고독의 조개..... 저두 아들들과 꼭 한 번 한강 일주를 해야겠어요. 혹 알아요?소진님의 한강을 그대로 느끼게 될 행운이 올지?
4월달에 한강울트라도보 항생각이거든여~소진님 존경해요^^
저도 같이 시간의 바닷가에서 고독의 조개를 줍고 싶습니다.. 행주대교에서 발산까지 역으로 또 거슬러 오신거예요? 우와!~ 제가 아는 명칭이 나오니 저도 함께 걷는 느낌입니다.. 정말...
소진님 너무 부럽고 멋지시네요. 언젠가 저도 아이들과 함께 걷고싶습니다.
혼자서 그 먼길을 걸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셨겠지여.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늘 소신 있게 지내심을 부러워 합니다. 다음에는 울 카페 식구님들 하고 함께 걸어 보는 계획도 짜보세여. 서울 일주..말로만 들어도 너무 가슴 뛰는 여행입니다. 완주 축하 드립니다.
10년후에 내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먼것 같지만 어짜피 닥쳐올 10년후, 내부모님 나이엔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구요 그때도 지금처럼 쭉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 하고 즐거워 할지 모르겠네요 천천히 걷는것에 맛을 느끼지 못하고 쫒기듯 걷는건 내속에 또다른 나일테지요 저도 달인이 되어볼랍니다~ㅎ
뒤에서 뭐가 따라오나. 난 왜 여유없이 빨리 가려구만 하지. 급하면 하루 먼저 가면 될것을.... 많은것을 배웟읍니다..
지난 2월에 소진님의 제주도 기행을 메모해 친구랑 둘이서 8박 9일동안 제주도 해안가를 걸었답니다. 그 때 도보여행내내 소진님의 일정을 비교해 보며 걸으니 훌륭한 지표가 되었답니다. 뒤늦게나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진님의 한강걷기를 보며 또 걸었답니다. 넘 자세하여 지도가 필요 없었지요.
이번에는 저 혼자 걸었는데 생각보다 심심하거나 어색하거나 그렇진 않더군요. 계절이 봄이다보니 꽃도 많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심심치 않게 잘 걸었답니다. 광나루부터 팔당까지는 매점이 없어 식수 때문에 조금 힘들었는데 다행이 경찰 아저씨들이 부탁도 안드렸는데 물도 채워주고 먹여주고 그랬지요.
전 팔당대교를 건너 성산대교까지 밖에 못 걸었는데 다음에 시간을 내서 행주대교를 건너 일산까지 가볼랍니다. 매번 도움을 많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 잘 하셨습니다. 아마 저도 그렇지만, 제주도 도보여행이나 한강 일주 도보여행의 시간들은 님의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들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님의 도보여행에 찬사를 보냅니다.
강변.. 광장동족에서 한강산책로로 내려가는 길은 어떻게 가나요.. 님 말씀은 잠실대교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뜻으로..읽히는데.. 장실대교에서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요. 광장동에서 아직 한번도 한강을 내려가 보질 못해서요..
가슴이 숙연해집니다. 길 위의 철학자 같으세요...
대단하십니다 존경과 함께 점점 나이가 들수록 같이도 중요하지만 혼자서 자신과의 대화가 반성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며
마치 정신수양 하는 분위기. 사진과 글솜씨가 평범하지 않으시고 완전 펜클럽 만드셔야할듯 걷기한번 제안하시죠
서울시내에서 이렇게 걷기 싶지 않을듯 얻는것은 더욱더 많을듯하네요 걷기의 고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