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일순
본관 진주(晋州). 호 증산(甑山). 전북 정읍(井邑) 출생.
24세에 동학(東學) 교도가 되었으나,
1894년(고종 31) 동학혁명 때 봉기를 반대하고,
백성의 구제책을 찾는다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점(占)과 의술을 익혔다.
1900년(광무 4) 고향에 돌아와 유(儒)·불(佛)·선(仙)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신화일심(神化一心)·
의인상생(義仁相生)·
거병해원(去病解怨)·
수천선경(修天仙境)의
4대 강령 아래 포교를 시작하여 크게 교세를 떨쳤으나,
39세에 병사하였다.
처음에 그의 종교는 흠치교(度琇敎)라고 하였으나,
그의 사후 증산교라 하였다.
그의 제자 차경석(車京石)·김형렬(金亨烈) 등이
각각 보천교(普天敎)·태을교(太乙敎)를 창시, 독립하면서 분파를 거듭하여
여러 파로 나누어졌다.
그때에 경상도 함안 출신의 조철제(趙哲濟;일명 鼎山)를 중심으로 하여
파생된 태극도(太極道)의 도주(道主)가 죽고 그 유명(遺命)대로
박한경이 제2세 도주가 되었는데, 조철제의 아들인 영래(永來)와의 사이에
알력이 심해졌다.
그 갈등이 노골화하자 박한경이 추종자들과 상경하여
성동구 중곡동(中谷洞)에 자리를 마련하고
‘대순진리회’라는 간판 아래 포교를 시작하였다.
분파된 여러 갈래의 증산교 교파들 중에
가장 조직성을 갖춘 종교단체로서 능동적으로 현대화를 지향하며
활발하게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로 옮겨와 사회봉사 활동도 병행하며 교세가 급성장하자
1971년 종단 본부 건물인 도장을 짓고,
1987년에는 여주에 대규모의 수도장을 건립하였다.
교육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파주시에 대진대학을 설립, 운영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교단의 운영은 ‘도헌(道憲)’에 따라 운영되며
의결기관인 중앙종의회(中央宗議會)와 주요 집행기관인
종무원(宗務院)이 있는데,
종의회는 전국에 산재하는 교당·회관·회실·포덕소 등을 관리하는 자들 중
선감(宣監)·교감(敎監)·포정(布正)으로 구성되고,
종무원에는 기획·총무·교육·수도·교수부 등을 두어
각각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그밖에 대순종교문화연구소·대순출판부 등의 사업기관을 두고 있다.
중심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이고,
종지(宗旨)로는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造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 등의
실천목표와 윤리요강을 내세우고 있으며,
또 성(誠)·경(敬)·신(信)을 수도의 3대 요체(要諦)로,
안심(安心)·안신(安身)·경천(敬天)·수도(修道)를 4대 강령(綱領)으로
삼고 있다.
주요 경전은 교주 강일순의 언행과 행적들을 적어 놓은
《대순전경》으로서 이것이 곧 그 신자들의 신앙지침이자
생활의 표준이 된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자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