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무한정으로 넓어진 이 장르를 너무 자세하게
세분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적으로 구분되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이나 야니(Yanni),
반젤리스(Vangelis)같은
'일렉트로닉/프로그레시브'가 있 는가 하면,
멜로딕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추구하는 안드레 아스
폴렌바이더(Andreas Vollenweider)나 장
륑퐁티(Jean -Luc Ponty), 장 미셀자르 (Jean
Michel Jarre), 윌리엄 오비트(William Orbit)등의
'크로스오버팝', 그리고 '크 로스오버 클래시컬'에
일본의 도미타(Tomita), '명상/스 페이스'음악에
일본의 기타로, 소지로 등이 있다.
ⅰ) 반젤리스(Vangelis)
아프로디테즈 차일드는 곧 반젤리스가 파헬벨의 '캐 논D장조'를 편곡하여 만든 로 유럽
차트 를 석권하기 시작했는데, 이 곡은 데미스 루소스의 휠세 토 창법과 애상적인 선율을
지닌 비슷한 스타일의 g, Summer, Winter And Fall>과 함께 국내에서도 크게 인 기를 얻어
발매된지 20년이 가까와오는 지금 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은 위의 곡들 외에도
nyNight>, , clock>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많이 남겨놓고 70년대 초 에 해산하였다.
솔로로 나선 반젤리스는 1973년에 영화 프랑스 localypse Des Animax>의 음악을
담당하며 사운드트랙 앨 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Rick Wakeman의 탈퇴로
키보드 주자를 구하고 있던 프로그래시브 록 그룹 Yes의 요청으 로 잠시 어울리기도
했으나 워낙 재능꾼인데다 개성이 강 한 탓인지 정식 멤버로의 가입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대 신 그룹 Refugee 출신의 Moraz가 Yes에 가담했다.) 하지 만 이때의 인연으로
반젤리스는 Yes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Jon Anclerson과 지속적인 교류를 가지면서
공동앨범을 만드는 등 서로의 음악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반젤리스는 , ,
ragon> 그리고 대중적인 성공의 표본이 된 사운드트랙 hariots of Fire>등의 솔로 앨범을
비롯 존 앤더슨과 합 작앨범 등을 발표하면서 뛰어난 감각과 연 주기교를 마음껏
펼쳐보였다. 이러한 음반등을 통해 반젤 리스 음악의 특성을 꼽아본다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방 불케하는 장중함과 신서사이저라는 전자음향 합성장치가 내는 기계적인 소리를
주로 사용하지만 진한 감정이 배어 있는 듯한 호소력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추구하 는 실험정신으로 집약 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 영화 <불의 전차>가 개봉되자
사람들은 감동 적인 휴먼드라마를 담은 영화와 함께 주제가를 화제에 올 리며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 부었다. 결국 이듬해 봄에 거 행된 제5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이 영화는
작품상을, 주제가인 는 오리지널 작곡상을 따냈 다. 영화음악을 작곡.연주한 반젤리스도
당연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riots of Fire>가
반젤리스의 이름을 대중화시킨, 그의 출세작인 셈이다.
ⅱ) 장 미셀자르(Jean Michel Jarre)
반젤리스가 주로 인간의 내면적 정서를 작곡했다면 장
미셀자르는 물체나 기계의 내면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장 미셀자르는 70~80년대 음악시대 의
중요인물이었다. "나는 모든 귀족주의에 저항한다. 음악인의
유일한 기능은 청중들과의 대화에 있다. 나는 모든
창조물들은 오직 한가지 목적을 가진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나의 유 일한 의무는 나의 음악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여정을 자유롭게 떠나도록 해 주는 것이다." 라고
그는 이야기 한다.
이처럼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그는 현대 음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기계음의 냉정함과, 따스한 인간적 감성의 창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신서사이저에 기초를 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을
깨우쳤다. 그는 2900만장의 앨 범판매고가 가져온 대성공이 자신의
아마추어적인 장인기 질을 내맡기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영역의 탐구 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1948년 8월 24일 프랑스의
리옹에서 태어난 장 미셀 자르는 음악적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다섯
살 때부터 정 규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 십대 초반 파리음악 학교의
쟈 닌 리프(Jeauine Rueff)와 함께 화성법, 대위법, 푸가 등 의
공부를 마친 그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로서 여러 밴 드를 전전하기
시작한 것은 문학 학사과정을 이수 한 후 피에르 쉐페가 이끌던 파리의 음악연구 그룹에 참 여한 그는,
전통적인 음계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새로운 계 명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일반적 음향세계의
헛점을 보충 해주는 소리의 앙상블에 기초를 두었던 이 계명법을 통해, 장 미셀자르는
클래식의 전통과 실험주의의 집착을 배제 함으로써, 자신만의 유일한 스타일을 확고히 하게
된다. 1976년에 발표된 데뷔앨범 은 전자음악으 로 차트정상을 차지했다는 것과 오늘날의
음악형태를 확 정지어 주었다는 점 이외에도, 수많은 비평가들과 연주자 들이 지적했듯이
분명한 혁명이었다. 정감과 꿈과 친근함 이 깃들어있는 그의 음악은 극적으로 계획된
이지적인 영 상을 청중들에게 보여 주었고, 이러한 매력이 (2집)로 이어졌을 때 그의 재능은
앨범 판매고의 수치로 다시한번 증명되었다. 또한 유럽의 1억 인구가 텔레비젼 을 통해 시청한
1979년 7월 14일 꽁꼬르드 극장에서의 공 연은 무대예술의 극치로 인정받기도 했다. 1981년
발표된 는 마치 초현실주 의 회화처럼 또 다른 음향 세계로의 여로를 보여준다. 의 외적인
요소와 기성적 대상물에 기반을 두고 색채와 음색 의 변화에 따라 흐름을 이루는 이 앨범으로
장 미셀자르 는 중공에 소개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현대음악을 가장 꾸준히 실험하는
연주인'이라는 빌보드지의 논평처럼 끊임없는 창작욕으로 80년대를 풍미 하기 시작한 장
미셀자르는 이후 (84), Vous>(86)등의 실험작들을 계속 발표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ⅲ) 쿠스코(Cusco)
독일의 5인조 연주 그룹 쿠스코(cusco)는 일렉트릭 사운드에
서정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특히 이들에게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의 음악적 토대가 남미 안데스 산맥을 둘러싼 잉카
문명의 민속적 리듬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쿠스코는 현재
독일에서 가수겸 작곡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그룹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는 키보디스트 마이 클 홈(Michael Holm)과 보니 엠,
실버 컨벤션등 많은 아 티스트들에게 작,편곡을 해주고 있으며
신서사이저 프로 그래머로 활약하는등 뛰어난 신서사이저
테크닉을 자랑하 고 있는 크리스챤 슐츠(Kristian Schultz)가 만나
결성된 5인조 연주 그룹이다.
마이클은 이 그룹 결성 당시 그룹 의 독특한 이미지를 찾고자 자신이 어렸을 때 여행중에
느꼈던 감흥의 도시인 잉카지방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하는데, 그래서 발견된 음악이
쿠스코의 독특한 잉카 사 운드가 된 것이다. 이들은 1979년 'Desert-Island'를 데뷔
앨범으로 발 표하면서 현재까지 모두 10매의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이미
TV광고 프로그램이나 방송의 효과음악및 시그널 등으로 널리 사용된 7집 'A Purimac'과
클래식 명 곡등을 신시사이저의 새로운 편곡으로 들려주었던 8집 'C- oncierto De
Aranjuez'를 발매하여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