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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전체에게 주는 상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받겠습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로부터 ‘훌륭한
아버지상(像)’으로 선정되어 지난 6일 시상식을 가진 허참 회장(61세)의 소감 첫마디였다. 사실 허참 회장은 ‘훌륭한 아버지상(像)’ 선정
소식을 듣고 받기를 망설였다고 한다. ‘장인을 26년간 모시면서 5녀1남을 훌륭히 키우고 청소년 선도와 예술가 지원활동을 활발히 벌인 점이
모범이 된다’라고 해서 수여한다는데 자신이 혼자 해낸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가족이나 타인을 위해 희생이나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좋아서 한 일이고 나 스스로가 그것을 즐겼는데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의아심이 들더라고. 상아제약
설립자인 허참 회장은 ‘허트리오’를 비롯하여 딸들을 모두 예술가로 키운 아버지로 유명하다. 사실 첫째 진선은 하프시코드(16~18세기의 건반
악기로 피아노의 전신이 되는 악기), 둘째 승연은 피아노, 셋째 희정은 바이올린, 넷째 윤정은 첼로, 다섯째 인정은 발레를 시키겠다고 처음부터
작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가 딸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또 다른 삶 속에 있었을지도 몰라요. 아내와 여자애니까 음악을 가르치자고 했는데
계속해서 딸이라…. 다행스러운 일이죠. 딸을 낳고 음악가로 키우면서 우리 가족의 삶이 가꾸어졌으니까요”라며 허참 회장은 40대에 접어들면서
아내 홍애자(수필가) 씨와 했던 약속을 들려주었다. “그 당시가 제일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나씩 유학을 떠나가는데
한둘도 아니고 우리 부부가 감내하기가 버겁더군요. 그러다 보니 서로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그때 와인인가를 함께 마시면서
약속했죠. ‘아이들을 향해서 살자’고 말이죠.” 이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부부가 한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정열과 애정을 쏟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그 뒤로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도 부부가 함께 이겨 나갔다. 유학 가 있는 아이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에는 함께 편지도 쓰고
목소리를 녹음해서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온가족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 오늘을 이루어 낸 듯하단다. 딸들을 음악가로 키우는
부모로서 그리움보다 더 큰 어려움은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점이었다. 셋째 희정 씨가 모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콩쿠르를
준비할 때였다. 하루는 연습실 앞을 지나가는데 음정이 늘어지더라고. 그래서 가만히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선 채로 졸면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한참 재미나게 보내야 할 시기인데 아무것도 못 하고 음악에만 매여 있는 것을 보니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더란다.
하지만 그렇게 연습해서 결과가 좋으면 그래도 위안이 되는데 기대 밖의 결과를 얻고 품안에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에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다만 그때마다 허참 회장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고.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면 된다. 항상 깨끗한 냇가로만
흐르면 되지 꼭 바위를 뚫고 흐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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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주부클럽연합회 김천주 회장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허참 회장은 생각할수록 상의 의미가 크게 느껴진다고. | |
| 허참 회장은 금년 1월 103세로 세상을 떠난 장인을
떠올리며 이제는 20년 전의 약속을 수정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제는 아이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부부간에 서로를 향해서 살아갈 때라고
말이다. 아이들도 각기 가정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했으므로 부모에게 주었던 사랑의 감정을 이제 그들의 배우자와 자식에게 옮겨가는 것이 당연하단다.
부모에게는 자식된 도리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관계에서 효의 관계로의 전이라고 하면 될까? 옛말에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자리에 누워 있는 자식을 보고 불효자의 부모는 버릇없이 어른이 눕기도 전에 누워 있다고 야단을 치고 효자의 부모는 먼저
누워서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 놓는다고 칭찬을 한다고 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불협화음 없이 좋은 하모니를 이루도록 지휘한 가정의 지휘자 허참
회장. 가정에서도 나아가고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이 시대의 진정으로 훌륭한 아버지상(像)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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